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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ul 22. 2021

장기요양등급 받記

치매도 육아처럼 16


 요즘 같아선 국가에 세금 내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국가의 노인복지예산을 어머니도 많이 나누어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어머니는 치매 4등급을 받아 주간보호센터 비용의 15퍼센트 정도만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기초노령연금도 받고 있으니 주간보호센터에는 거의 무료나 다름없이 다니고 있는 셈이다. 주간보호센터의 존재도, 이용비 지원도 너무너무너무너무~~ 고맙다.


 치매진단받은 지 3년째 되던 해에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처음 신청했다. 전부터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직 어머니가 혼자 사실만 하다고 생각하던 때였고 제도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어머니가 원하지 않기도 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문화센터에도 나가지 못하게 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자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로 더욱 우울해하고 식생활도 형편없어지는 것을 보니 더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등급을 받으면 일정 시간 요양사가 집으로 와서 말벗뿐 아니라 인지훈련도 해 준다고 하니 그렇게만 되면 치매 진행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신청을 서둘렀다. 당시에 어머니가 경기도에 사실 때인데 지역도 넓고 인구도 많아서인지 이미 심사를 신청하고 대기 중인 분들이 너무 많아 한참 후에(내 기억으론 족히 두 달은 걸린 것 같다) 심사 약속이 잡혔다. 


 심사 당일, 일찌감치 어머니댁으로 갔다. 오후인데 아직 커튼을 걷어놓지 않아 차르륵 커튼부터 걷고 문도 활짝 열어젖혔다. 가까이 산이 있어 청량한 바람이 앞다투어 들어왔다. 마치면 아이들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해서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실 때처럼 자연스레 정리정돈 모드가 되어 한참을 바삐 움직였다.

 시간이 되자 심사를 위해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 한 분이 오셨다.

 어머니에게는 정부에서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러 온다고 말씀드렸더니 갸웃하면서도 낯 선 손님을 극진히 맞이했다.

 나는 조금 멀찍이 앉아 두 사람의 면담을 지켜보았다.


 심사관은 기초 심사 문항에 체크를 마치고 온화하게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르신 제가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뭐든 물어보세요 호호호."

"생년월일이 언제인가요?"

"아 12월... 며칠이지? 갑자기 말하려니까 참 호호호."

"그렇죠, 갑자기 대답하시려니 당황해서 그럴 수 있어요... 그러면 오늘이 몇 월 며칠인가요?."

"(테이블 위의 신문을 집어 들며) 이렇게 아침에 신문을 보고도 날짜는 확인도 안 했네요. 호호호."

"아, 매일 이렇게 신문을 보십니까?"

"그럼요 제가 아주 샅샅이 훑어보지요. 아침에 눈 뜨면 나가서 신문 가져오는 게 제일 먼저 하는 일인걸요. 호호호."

"대단하십니다! 어르신 요즘 식사는 어떻게 하십니까?"

"아 네~ 제가 섭식을 영양가 있게 고루 하려고 해요. 생선이나 두부는 꼭꼭 챙겨 먹고 과일 야채도 즐겨 먹고요."

 아... 신문 읽기... 고른 섭식...

 어머니는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고급 한자어까지 구사하며 상냥한 웃음과 조신한 태도로 심사관의 질문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대답했고 심사관은 응당 사실로 여기는 듯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기록했다.

호호호호 해맑은 웃음으로 심란한 내 마음을 "일시 정지" 시켜 버린 어머니

 

 그렇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마치고는 거실에 앉아 한 바퀴 휘~ 둘러보며

 "어르신이 아주 깔끔하게 해 놓고 사시네요!"

 "아유 예전에 비하면 너무 엉터리죠. 나도 나이가 드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늘어놓고 살아요. 호호호."

 입을 가리고 수줍은 듯 명랑하게 웃는 백만 불짜리 어머니의 웃음이 칙칙하고 우울한 날들을 말끔히 걷어낼 기세로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이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응답하는,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상냥한 할머니에게 요양등급이라니... 내가 봐도 가당치 않을 일.

 그래도 설마 이렇게 심사가 끝?


"그럼 어르신 실례 많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심사결과는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끝.이었다.ㅜㅜ

 처음이라 몰랐다. 보호자로서 구구절절 현실의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국가의 지원이 절실함을 어필할 수 있었다는 것을. 평소처럼 커튼을 걷지 않고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 그대로, 초파리들을 들러리 삼아 어수선하고 비위생적인 상태를 더욱 비극적으로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것을...

 결국 첫 심사에서는 '등급외' 판정을 받았다. 아직은 어머니가 다른 분들에게 양보해도 될만한 상태라고 국가차원의 공인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국가지원은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누군가 말벗이 되어주고 식사도 챙겨 줄 수 있는 분을 도우미로 고용하면 어떻겠냐고 여쭤보니 어머니는 타인이 집에 드나드는 것이 싫다고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래서 주말에 찾아뵙고 케어하는 것으로 어머니도 우리도 겨우겨우 버티며 그 정도에서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 후 3년 정도 어머니의 병세가 서서히 나빠지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다시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추진하면서 이번에는 서울에서 두 번째 심사를 신청하게 되었다. 서울에는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 비교적 적게 사시는지, 우리 구가 특히 그런지 생각보다 속전속결로 심사를 받게 되었다.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만삭의 사회복지사가 심사를 하러 왔다. 아이코 얼마나 힘드실까... 그런데 준비해놓은 음료 한 모금, 과일 한 조각도 먹을 수 없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하니 나도 더 권하기 난처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바로 어머니를 면담하며 1차 때와 같은 단계를 거친 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수시로 드나들며 청소하기도 했고 살림살이를 대거 정리해서 집안의 청결상태는 양호했다. (등급을 받겠다고 일부러 더럽힐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여기저기 꽂혀 있는 칫솔을 유심히 보시곤 모두 어머니의 것이냐고 물었다. 우와 예리하셔라!

 "네! 모두 어머니 칫솔이긴 한데 양치질은 잘 안 하셔요 ㅜㅜ." 이 때다 싶어 콕 집어 말씀드렸다.

 여기저기 메모를 붙여놓은 것도 꼼꼼하게 확인하고 냉장고도 열어서 살펴보았다. 냉장고엔 간단한 음료수와 과일 정도가 있었고 빈 공간엔 온갖 그릇에 맹물을 담아 놓은 것들이 가득했다.(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어머니의 냉장고 편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자) 심사관은 말없이 진지하고 세심한 눈길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어머니께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 안녕히 계세요. 건강하시고요!" 

 이번에는 나도 함께 따라나서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면담을 이어갔다.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소상히 알려드리고 주간보호가 어렵다는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심사결과가 나와야 확실한 것이지만 아마 치매 5등급은 받을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을 갖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 사이 치매환자를 위한 새로운 등급체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게는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복지 전문가로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려고 애쓰는 심사관에게, 크게는 국민의 짐을 덜어주려고 시스템을 만들고 실행하는 국가에게 진심을 담은 고백을 마구마구 날렸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요양등급 5등급을 받았고, 드디어 국가가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0^


치매도 육아처럼 16 가족 돌봄만으로 24시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일단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 노인의 건강상태는 점차 악화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바로 등급을 받지 못해도 다음 심사과정에서는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신청 과정에서 전문가의 친절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몰랐던 정보를 알 수 있어 그 자체로도 도움이 된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장기중 선생님의 브런치에 마침 좋은 길잡이 글이 있어 소개한다. 치매환자에 대한 전문적이고 인간적인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따뜻한 그의 시선과 마음을 배우고 있다. 

 https://brunch.co.kr/@kom2k/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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