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박경주 Oct 12. 2021

이제부터 어머니는 손님이 아니에요

치매도 육아처럼 17

 어머니가 옆라인에 살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아침은 떡이나 약밥, 고구마 같은 간편한 음식과 함께 과일 서너 조각에 우유나 주스를 곁들여 혼자 챙겨 드셨다. 점심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서 함께 먹거나 어쩌다 사정이 있을 때는 일품 음식을 준비해드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간보호센터에 잘 적응하셔서 영양이 고른 점심을 드실 수 있게 되었다.  저녁은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드셨는데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전화를 하면 혼자 찾아오시다가 어느 날부터 길을 잃기 시작해 모시러 가야 했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이사를 한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저녁을 드시러 오실 때마다 항상 손님처럼 선물을 들고 오셨다.

 전날 갖다 드린 과일, 떡, 음료수뿐 아니라 잘 쓰지 않는 그릇이나 장식품 같은 것까지 다양하게 비닐봉지에 고이 담아 오셨다.

 "뭘 이렇게 갖고 오셨어요?"

 "어~빈 손으로 오기가 미안해서~호호호."

 "그냥 오셔도 돼요 어머니~ 집만 다를 뿐이지 이제 한 식구가 됐는데 손님처럼 이러시기예요?"

 "에이, 그래도~."

 

 처음엔 그 마음이 고맙고 귀하게 느껴졌지만 도로 챙겨드려야 하는 '일거리'만 생기니 점점 귀찮아지더니 급기야 얄궂은 해석으로 치달았다. 측량할 수 없는 내 수고에 옛다! 하고 값을 치러 주시는 건가? 내 수고에 과도한 점수를 주는 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마음을 왜곡하고 날조하기를 서슴지 않다니... 다시 생각해도 얼마나 고약한 마음인지...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어머니는 한결같이 교양과 체면을 삶의 기치로 삼고 매일 드나드는 아들네에 갖가지 잡동사니를 싸서 나르실 뿐 아니라 온몸의 세포를 호령하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셨다.


 "난 조금만, 조금만! 어휴, 이거 너무 많아, 좀 덜어내면 안 될까?"

 저녁식사를 차리면 어김없이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고봉밥을 드렸느냐, 아니다. 밥을 많이 푸건 적게 푸건 항상 하시는 말씀이다.

 당신은 소식하는 교양인이며 양식을 축내는 사람이 아님을 만인에게 선포하는 의식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식사를 끝내고도 아쉬워서 쉽게 수저를 놓지 못하는 빛이 역력한데, 더 먹고 싶다는 말씀을 끝내 하지 못하고 꿀꺽 삼키신다.


 "어머니, 한 숟가락만 더 드실래요? 반찬이 좀 짜죠?"


 "아이코 밥이 어중간하게 남았네요? 조금씩만 나눠먹고 '끝'합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리 덜어낸 양만큼 더 드시게 해 보지만 그릇을 손으로 덮으며 강력하게 거절하실 때도 있다.

 그럴 땐 어서 저녁을 먹고 학원을 가야 하는 딸과 합동작전에 들어간다.

 딸에게 눈 찡긋 신호를 보내면

 "할머니, 저 나무이름이 뭐예요?"

 "어디? 무슨 나무?"

 "저기 저기 창밖에 보이는 나무요."

 뭐든지 다 알려주고 싶은 어머니는 식사하다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쪽으로 관찰하러 가신다.

 이때다!

 딸은 계속 궁금하다는 듯 교란작전을 펴고 나는 후다닥 어머니 밥공기에 밥을 더 담는다.

 불과 30초면 작전 성공!

 "아, 저 나무~ 알았는데 언뜻 생각이 안 나네. 뭐였더라?"

 골똘한 표정으로 답을 생각하는 어머니를 향해 딸이 태연하게

 "할머니, 식사 마저 하시고 알려주세요!"  

 "응응 그래! 아 뭐였더라?(냠냠냠)"

 

 다행히 같은 작전을 무한 반복해도 밥이 더 많아진 것을 알아챈 적은 없었다.

 에효~~ 밥 먹을 때마다 이 무슨 쇼란 말인가!

 쇼..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쇼는 시작되었다.

 

 두 아이 모두 밥 먹이기가 어려웠다.(날 때부터 미식 가였나 보다. 끙...)

 애가 타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밥을 먹였는데 그중에 자주 쓰던 방법이 있다.

 눈을 감고 밥숟가락을 아이 쪽으로 들고 "안 먹었다 안 먹었다.."라고 계속 주문처럼 외고 있으면 아이가 살금살금 와서 샥~ 먹고 내 반응을 기다린다.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같은 주문을 외우다가 짐짓 "아이~언제 먹을 거야?" 하며 실눈을 뜨고 보고는 "우왓! 언제 먹었어? 어?" 하며 격하게 놀래 준다. 이때 타이밍도 중요하다. 너무 빨리 알은 체하면 아이가 웃느라 입안에 겨우 넣었던 밥알이 다 튀어나올 수 있으므로.^^

 

버릇 잘 못 들까 염려하던 손녀가 이젠 당신의 식사를 챙길 만큼 다 자랐는데 누구인지 알아보지를 못하신다 ㅜㅜ

 아 벌써 20년이 넘은 일이라니... 나도 모르는 사이 생긴 탄탄한 쇼맨십을 기본기로 연기에 도전해 볼까? 그러다 만약 윤여정 배우처럼 큰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할 기회가 있다면 "엄마가 너희를 그렇게 키웠단다."라고 말할 만하지 않은가! 하하하


 그나저나, 진심에서 우러나는 표정과 말투와 몸짓이 아니라 쇼맨십으로라도

 "어머니 뭘 이렇게 또 가지고 오셨어요? 아유 고마워서 어째요~~ 그런데 이젠 손님처럼 그러지 마세요,  예?  아셨죠?" 하고 다정하게 어머니와 눈 맞춤할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나는 왜 더욱 격렬하게 고약해지려 한 것일까.ㅜㅜ

작가의 이전글 짜증이 슬픔을 밀어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