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을 손에 꼭 쥐고 종이 위에 올려놓은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갔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겉모습 이면에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글을 씀으로써 존재하며 사랑하고 싶은 마음 vs. 글로 드러나는 나 자신을 대면하기 싫은 두려움
후자가 연속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볼펜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서 있었다. 전자가 승리했다면 볼펜이 마침내 종이에 잉크를 흘려대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전자 또한 상당히 강한 마음이기 때문에 팽팽한 전투가 일어나는 내내 전쟁터인 나의 내면은 엄청나게 파괴되고 소모되어 갔다. 장기전이었다.
전자의 마음이 이렇게 매일같이 지다보면 언젠가 이 마음은 와해되어 없어져서 결국엔 후자의 마음이 내 마음의 영토를 지배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기나긴 전쟁에 지쳐버린 나는 누가 이기는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승패가 확실하게 결정나는 순간 내 마음의 세계는 평화를 되찾게 될 테니까. 그러니 아무나 이겨라. 대신 어서 이겨라..
이상하게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두려움에 아무리 짓밟혀도 도무지 죽지를 않았다. 오히려 짓밟히고 외면당할수록 자신의 존재가 되새김되는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중간중간 작은 전투에서 이길 때 내 손에 들린 볼펜은 한 걸음씩 움직였다. 몇 일 못가서 다시 멈춰 세워졌지만.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 진짜로 산다는 게 뭘까.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뭘까.
너무 근본적이고 막연해서 나의 일상과는 상관없다고 느껴 되도록 피해왔던 굵직한 질문들을, 유방암이 재발하여 수술을 기다리며 병실에 누워있던 시점에서야, 비로소 대면하게 되었다. 더이상은 진지함 없이 나 자신을 대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무 오래 전쟁터가 되다 보면 어느 날 몸이 환자복을 입게 되는지도 모른다.
경도의 아스퍼거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나에게 있어, 이 거대한 세 가지의 질문들은 글을 씀으로서 존재하며 사랑하고 싶은 내 안의 존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위대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온 신앙같은 관념이 드디어 금이 가고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이 형편 없더라도, 그걸로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또다시 펜을 들 용기도 생겨났다. 내 글을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고,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더라도 나는 행복할 것이라는 데에 드디어 마음이 yes 를 하자, 그 뒤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세상 어딘가에 살아가는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안의 수많은 상처들을 뒤로하고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사랑할 수 있었고, 혹시라도 그 글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위로가 된다면 그것도 사랑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생명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나의 몸에서 심장이 매 순간 새로운 생명의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글쓰기는 나의 내면을 진동하게 하는 마음의 심장 박동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어떤 거대한 두려움이 해일처럼 덮쳐오거나 독극물처럼 퍼져온다 해도, 전쟁이 아무리 길어진다고 해도, 나의 내면은 글을 쓰는 것을 도저히 놓아버릴 수 없었다는 게 이해 되었다. '아무나 이겨라'가 아니고,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이기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