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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08. 2023

할머니가 나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것

잡채 덮밥

허연 가루가 된 할머니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불편하고 답답했던 육체를 벗어나 이제 얼마나 자유로우실까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왠지 할머니가 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드셨던 걸까..


많은 잘난 남매들 중에서 비교적 특징 없는 딸로 자라나 사랑을 듬뿍 받고 크기 어려우셨을 테고,

(내가 봤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대를 너무 사랑하오' 하는 사이도 아니셨던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곰살갑게 표현하신 적이 드무셨다. 말씀도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셨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타인들을 아끼는 마음이 많았다는 걸 주변 사람들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따뜻한 진심이 있으셨다.


94세까지 사는 동안 할머니는 많은 슬픔을 겪으셨다. 사위와 손자 두 명과 남편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보아야 했고, 의사로서 성공한 듯했던 큰아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해 가는 모습에 가슴아파 하다가, 결국에는 그 아들의 죽음까지 받아들여야 하셨다. 몸이 허약해서 평생토록 고랑고랑 하셨고, 80세 넘어서는 시력을 거의 잃어서 답답해 하셨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어떤 일을 대하든 비관적이고 부정적이셨던 것 같다.

"그게 되겄냐..."

"그게 그렇게 쉽게 될라디..."

"그래 그거라도 해라." (내가 과외 수업을 하며 살고 있다고 말씀 드렸을 때)

"할 수 없지 어쩌겄냐"


슬픔의 파도만 계속해서 맞다 보면 누구라도 긍정적이기 힘들지 않을까. 할머니의 비관적인 관점이 할머니의 한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할머니가 제정신이셨을 때 했던 마지막 통화에서 할머니가 힘주어 말씀하셨다.


"남편과 행복하다니 됐다. 더 좋을 거이 없다. 정말... 남편과 함께 힘차게 훨훨 날아봐라."


갑작스런 할머니의 힘찬 축복에 잠시 놀랐다가 이내 목이 메였다. 할머니가 자신을 채우고 있던 슬픔과 한을 나를 위해 잠시 접어놓고, 가슴 아주 깊은 곳 어딘가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희망 한 덩어리를 나에게 내민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한마디는 할머니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었고 최고의 것이었다.


"할머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잘 살게요."


======


며칠 전부터 남편이 잡채 덮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당면을 두 시간 정도 물에 먼저 불려 놓았다.


잘게 썬 양파와 당근을 같이 볶아준 후 그릇에 덜어 놓는다.

소금과 후추를 뿌려놓은 다진 소고기에 생강 조금, 간장, 설탕을 넣어주면서 볶는다.

소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적당한 굵기로 찢은 느타리 버섯을 같이 볶는다.

익힌 양파와 당근을 부어서 다같이 볶아준다.


당면을 간장 한 스푼 넣은 물에 익힌 후, 프라이펜에 같이 섞어서 볶아준다.

덮밥이므로 밥과 섞일 것을 감안해서 간장과 설탕을 여유있게 더한다. 간을 봤을 때 단짠이 원하는 간보다 살짝 더 있도록.

시금치를 살짝 데쳐서 같이 섞어준다.


마지막에 참기름과 다진 깨를 얹어준다.


그 위에 노른자만 덜 익은 달걀 후라이를 얹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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