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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Dec 06. 2023

고구마를 구우니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고구마 맛탕

작년 이맘때 쯤 유방암 수술을 받은 후 6개월마다 유방 검진을 받는다.

어제가 그 날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내가 이토록 쫄보인 줄 몰랐다.


괜히 수술 받았던 가슴 어딘가가 쎄에하니 찌릿한 느낌이 드는 것 같고,

목에 가래가 낀 것 같은 이 느낌 이거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고,

혹시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건 아닐까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고,

머리 감을 때 평소보다 몇 카락 더 빠지면 마음이 철렁하고... 하다가 검사 당일이 되었다.

30분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유방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받았을 뿐인데 나는 다크써클 여왕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나 자신이 정말로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받은 후 지금까지 약 일년동안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열심히 정리해 왔다. 이와 관련한 생각의 방이라는 게 있다면, 내 방은 나름대로 정갈하게 정돈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 육체가 없어지더라도 나는 영의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 그래서 죽음 이후에도 나는 남편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죽음은 헤어짐이 아니다.


   * 병은 주로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된다. 병이 났다는 건, 나의 마음이 나에게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메세지를 보낸 것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해 주자.


   *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병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 병은 변화의 기회다.


   * 얼만큼 살지가 정해져 있다면, 나는 그 시간 동안 점점 다가오는 죽음만 바라보며 두려워하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최대한 행복해하다가 후회 없이 죽을 것인가.


   * 어차피 우리 모두 죽는다.



정리한 내용 하나하나에 깊이 수긍하면서도, 막상 검사를 하려고 하자 왜 이토록 두려운 걸까.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암이 생기고 있는지 없어지고 있는지 또한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또 생각과 따로 놀고 있다.

이런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검사 결과는 5일 후에나 들을 수 있는데... 그 때까지 이렇게 계속 무서워 하며 살건가.


일단 고구마를 굽자.


고구마를 깍두기처럼 잘라서 올리브유를 발라 180도로 맞춘 오븐에 넣고 약 50분간 구웠다. 중간에 한 번 뒤집어 주고. 고구마가 노릿노릿해지고 군데군데 갈색빛을 띄면 다 익은 것이다.

프라이펜에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비정제 갈색 설탕을 한큰술 정도 뿌려서 약불에 가만히 두어 좀 녹인 다음, 오븐에서 꼬들하게 익은 고구마 조각들을 부어 잘 섞어준다.

고구마에 비정제 갈색설탕을 두세큰술 부어서 섞어준다. 설탕이 다 녹아 없어지지 않은 채로 고구마 표면에 들러붙도록 적당히 익힌다.


집안에 퍼지는 고구마 냄새가 마음에 포근함을 주었다.


오도독

크리미한 고구마가 입안을 채우는 중에 크런치한 설탕이 어금니 사이에서 상쾌하게 씹혔다.

설탕의 스윗함과 고구마의 달달함이 어우러져 극강의 풍미를 주었다.

아아 이 고구마 맛탕을 먹는 동안 그 어떤 다른 일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인생은 이런 스윗함이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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