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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Nov 06. 2023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우유와의 거리두기

우유는 나의 사랑이었다.

아주 어릴 때 밥을 잘 먹지 못했던 나는 밥 대신 우유를 달고 살았다.

조금 더 자라 밥을 잘 먹게 된 이후에도 우유는 항상 나와 함께했다.

미숫가루를 타 먹고, 빵 먹을 때 곁들이고, 빵을 찍어 먹기도 하고, 공부하다가도 우유 한 잔,

초코 가루를 더해서 핫 초코를 만들어 먹고, 스프를 만들 때에도 넣어주었다.

그러다 십대 때는 우유를 만드는 회사에서 설립한 고등학교도 다녔다. 저녁마다 막 만든 빵과 우유를 주는 학교였다. 그 때 주는 우유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겨울에는 우유 몇 통을 기숙사 방으로 가져와서 이겹 창문 사이에 차갑게 놓아두고 수시로 홀짝홀짝 마셨다.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우유의 달콤함은 나의 오랜 벗이었으면서도,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 나의 사랑이다.


"수술해 보니.. 암 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0기 였지만, 앞으로 5년 동안 약을 복용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이후, 우유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두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우유가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말을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진료 후 집에 돌아온 나는 사 놓은지 얼마 안 되었던 멸균 우유 한 박스를 통째로 갖다 버렸다.

카페에 갈 때마다 나의 내면 세계를 따스히 안아주던 라떼도 끊었다.

슈퍼에 갈 때마다 쏠쏠한 재미가 좋아 하나씩 사먹던 요거트도 더 이상 사먹지 않았다.


하지만, 우유가 들어간 모든 것들과 그냥 그렇게 헤어지기엔 우리의 사랑이 너무 깊었고, 내 안에서 우유라는 존재의 무게감이 너무 묵직했다. 우유를... 완전히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의 규칙은 있어야 되겠다.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마주보고 앉아서 유제품과 관련한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었다.


일, 우유는 사먹지 않는다.

이, 우유가 들어간 라떼도 사먹지 않는다.

삼, 치즈는 먹는다. 되도록이면 잘 발효된 좋은 치즈.

사, 버터도 먹는다. 단, 주말에만 먹는다.

오, 외식을 할 때는 유제품이 들어갔는지를 신경쓰지 않고 뭐든 맛있고 즐겁게 먹는다.


우리의 유제품 규칙을 칼같이 지키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지키려고 한다.


오늘은 남편이 점심 때 비즈니스 미팅이 있는 날이라 외출을 했다. 오랜만에 혼자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늘 같은 날 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자면...

식빵을 달걀을 풀어놓은 우유에 푸욱 적셔서 버터 듬뿍 녹인 프라이펜에 구운 프렌치 토스트를 먹고 싶다.

치즈도 갈아서 수북히 얹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마음이.


대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이 샌드위치는 내가 직접 만든 마요네즈가 포인트다.


< 마요네즈 >

달걀 노른자 2개, 레몬즙, 레몬 갈은 것 조금,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금, 후추, 그리고 올리브유 아주아주 조금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

갈리는 동안, 크리미하게 되면서 원래의 달걀 노른자의 샛노랑에서 조금씩 흰빛을 띄어가면, 믹서기 뚜껑을 열고 올리브유를 살짝씩 따라가며 계속 간다. 올리브유를 한꺼번에 많이 넣으면 크리미하게 되지 않는다.

사먹는 마요네즈 같은 크리미한 질감이 되면 오케이다.

마지막으로 설탕을 좀 넣고 섞어준다.


마요네즈가 잘 만들어지면 샌드위치는 이미 거의 다 만들어진 거나 다름이 없다.


< 오늘의 샌드위치 >

노릇노릇하게 구운 식빵에 마요네즈를 듬뿍 바르고 로메인을 깔아준 후,

살짝 익힌 달걀 후라이를 얹고 루꼴라를 좀 얹어준다.

그 위에 남은 마요네즈를 또 좀 얹어준다.


* 마요네즈 레시피는 유튜브 <recipe30> 의 '60second mayo' 편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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