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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Dec 02. 2022

[아마추어 일기]

인세로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



이북으로 인세 2만 얼마, 들어왔다. 종이책으로 7만 얼마 들어왔고.

절판되지는 않았나보다.ㅎㅎ

그래도 그 책을 통해 연결된 일들이 많았고

배운 것이 많았다. 강연도 했고, 다른 출판 제의도 받았으니, 튼튼한 씨앗이 되어 준 셈이다.


그 책을 만들 때가 생각난다. 책을 내기로 하고서는 편집자가 반 년 동안 아무 연락을 주지 않았다. 

출판이 취소된 걸까.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내 글에 문제가 있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했다. 

단순히 편집자가 바빠서 그런 거였다.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출간 계획에 따라 연락을 주는 거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참 불안한 기다림이었다. 


출간하기로 하고 원고가 오고가는 과정에서는, 대개 처음에는 편집자가 글 전체의 방향이나 구조, 캐릭터 등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이때는 메일이나 한글 파일 등으로 비교적 러프하게 봐준다. 내 경우에는 사건의 순서가 바뀌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이 있어 뜯어 고친 뒤 원고를 보냈다.

그 후에는 원고 자체는 고칠 곳이 별로 없다고 하셔서 교정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한글 파일로 주고받다가 피디에프 파일로 수정을 반복하고, 삽화나 디자인이 얹어지면 다시 보고, 인쇄 들어가기 전에 최종 점검을 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다. 

작가의 말이나 프로필 등도 준비해야 한다. 


글이란 게 참 신기해서, 죽어도 안 보이던 오탈자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고, 이젠 없겠지 하고 돌아서면 다시 보인다. 편집자가 끝끝내 못 보는 오류도 있다. 오히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더욱 스르르~물 흐르듯 읽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글을 음절 단위로 받아들이기보다, 뭉텅이, 덩어리 단위로 읽어 버리면 글자 하나쯤 틀려도 전체 맥락이 맞으니까 그냥 넘어가게 된다.


나는 그림과 내용의 오류를 찾아내서 수정을 요청한 적이 있다. 편집자도, 그림작가도 놓쳐버린 부분이다. 

예를 들어 글에서는 세모 무늬의 옷을 입고 있다고 적었는데 그림에서는 네모로 그려진 경우 같은. 그런데 그 무늬가 글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수정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글 작가로서는 그림작가의 그림에 간섭하기가 참 어렵다. 

내가 생각했던 캐릭터가 전혀 아닌데, 편집자가 중간에 끼어있으니 입장이 곤란할까봐 말을 꺼내기 주저하는 것도 있고,

내가 신인인데 까다롭고 예민하게 트집 잡는 듯한 인상을 주고싶지 않은 탓도 있다.


편집자가 끝까지 괜찮으니까 이 부분은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그림 한 부분은 

볼 때마다 마음에 걸린다. 편집자는 중간에서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하고 온갖 요구를 중재해야 하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림작가의 입장에서도, 글을 수정하게 요청할 수는 없으니 글에 맞춰 주문식 그림을 그리는 것에 회의가 들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과 기본적인 방식이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혹은 광고 전략을 스토리보드로 만드는 것과도 유사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쓸 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캐릭터를 그림작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다는 건데?하고 그림작가가 되묻는다면,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돌아본다. 

그래서 그 공간에는 뭐가 있는데? 그 '무엇'이 왜 거기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생긴 세계라는 건데?


내 머릿속에서도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지 않은 것을, 그림작가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들어온 인세로, 열흘쯤 맛있는 커피를 사먹어야겠다. 하루에 두 잔의 커피를 마시다 보니, 

차라리 담배를 피우는 게 더 싸겠다 싶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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