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준이의 사람 구별법
4화 준이는 사람을 이렇게 기억한다
준이의 사람 구별법은 독특하다
엄마는 가끔 “준아, 너 그 사람 기억나지?” 하고 묻는데,
준이는 솔직히 기억 안 난다.
머릿속에 그 사람 얼굴이 텅 비어 있다.
그냥 그날 먹었던 반찬이나 준이가 앉았던 의자의 감촉 같은 것만 떠오른다.
근데 그렇다고 준이가 사람을 못 알아보는 건 아니다.
준이는 준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 키가 엄청 큰 아저씨,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할머니,
아주 많이 뚱뚱한 사람,
눈썹이 왕눈이만큼 진한 친구.
이런 사람들은 준이한테 'VIP'로 바로 저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보통사람' 폴더로 저장되는데 그 폴더는 비밀번호가 있다
그 사람이 특유의 웃음, 냄새, 목소리를 내야 열린다.
준이는 눈썹이 진한 사람이 너무 좋다.
눈썹이 진하면 화났을 때 더 화나 보이고,
웃으면 더 웃긴 것 같고,
그냥 있어도 뭔가 만화 속 주인공 같다.
그래서 준이는 눈썹이 진한 사람을 한참 본다.
가끔 너무 오래 봐서 그 사람이 준이에게 “왜?” 하고 물을 때도 있다
그럼 준이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고개를 휙 돌린다.
준이는 사람을 얼굴로 기억하지 않는 대신, 표정과 말투 그때의 감정 느낌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이 준이에게 다정했는지 어떤 냄새가 났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그런 걸 다 본다.
누가 준이한테 “그 사람 키가 몇이야?” 하고 물으면 모른다.
근데 “그 사람이 뭐라고 했어?” 하고 물으면 바로 대답한다.
준이는 엄마를 정말 잘 찾아낸다.
왜냐하면 준이 엄마는 어디서나 눈에 띄기 때문이다.
준이 엄마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머리스타일도 매번 비슷하다.
사람들이 다 검정, 회색 입고 있을 때
준이 엄마 혼자 빨강, 파랑, 초록을 입는다.
그래서 시장에서도, 마트에서도, 학교 운동회에서도 준이는 제일 먼저 엄마를 찾는다.
“아, 저기 무지개 같은 사람. 우리 엄마다!”
근데 가끔 엄마가 준이를 헷갈리게 한다.
엄마가 파격적으로 꾸민 날 말이다.
‘엄마 같은데… 아닌데? 우리 엄마는 이렇게 빤짝이지 않는데…’
그때 엄마가 준이를 보고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다가가 엄마 냄새를 맡아본다.
그제야 준이는 확신한다.
“아, 맞다. 우리 엄마다.”
엄마는 그럴 때 꼭 묻는다.
“오늘 엄마 못 알아봤지?”
준이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맞아, 새엄마인 줄 알았어.”
그러면 엄마도 웃는다.
둘 다 배꼽 빠질 만큼 웃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은 학교에서 좀 난감할 때도 있다.
어제 만난 선생님을 오늘 못 알아본 적이 있다.
“준아, 어제 우리 만났잖아.”
준이는 속으로 ‘맞나? 아닌가?’ 하다가 겨우 “아… 네…” 하고 대답한다.
그때 친구들이 준이를 보고 웃는다.
그럼 준이는 조금 부끄럽다.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항상
“준아, 너는 다르게 기억하는 거야. 그게 잘못된 게 아니야.”라고 말해 준다.
그 말을 들으면 준이는 마음이 편해진다.
엄마 말이 맞다.
‘나는 그냥 다르게 기억할 뿐이다.’
사람들은 얼굴을 보고 기억하지만,
준이는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떤 말을 했는지,
웃었는지,
화냈는지,
그날의 공기까지 기억한다.
그래서 나쁜 말을 한 사람은 얼굴은 기억 안 나는데 기분만은 정확하게 기억난다.
좋은 말을 해준 사람은 얼굴은 가물가물한데 따뜻한 기분이 오래 남는다.
준이는 이런 준이가 좋다.
남들과 다르지만 준이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준이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아마 언젠가 준이 머릿속에는 준이만의 사람 지도 같은 게 생길 것 같다.
그 지도에는 키 큰 아저씨,
눈썹 진한 친구,
알록달록한 엄마가 다 들어 있다.
그 지도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따뜻한 지도일 거다.
왜냐면 준이는 사람 얼굴보다 마음을 먼저 기억하는 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