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로키 여행 첫날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다려온 캠핑카 로키여행 첫날이다.
저 무거운 트레일러를 끌고서 가는데만 10시간 넘게 걸리는 곳을 과연 가는 게 맞는 걸까, 그냥 포기할까를 출발 전날까지 고민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장거리 여행을 가라고 만들어진 게 캠핑카 아니겠어 싶다가, 그래도 끌고 다니기 너무 무겁고 기름값 기절하게 많이 나오는 거 아닌가 바깥 풍경이 거기서 거긴데 싶고. 작년에 한번 빌려서 끌고 갔다가 우리 트럭 엔진에 무리가 갔는지 엄청 고생했던 기억도 있고.
또 한 가지 출발을 망설이게 한건 날씨와 산불 때문이다.
열 돔 현상 때문에 북미 서부 지역 날씨가 기록적으로 올라가서 밴쿠버가 36도, 우리가 지나가야 하는 캠룹스는 45도를 넘고 있다. 완전 이상기온이다. 원래 밴쿠버는 25도 이상은 잘 넘지 않아 에어컨이 별로 필요 없는 곳이다.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는 바람에 에어컨과 선풍기는 동이 나서 구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됐다.
게다가 캠룹스 지역의 큰 산불이 잡히지 않아 뉴스에서는 속보로 이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고, 밴쿠버가 속한 BC 주는 10월까지 전부 캠프파이어 금지 명령이 떨어진 상태이다.
우리 일정을 보면 첫날만 BC 주에 해당하는 곳이고, 둘째 날부터 앨버타 주로 넘어가긴 하는데...
아. 과연 이 어수선한 상황에 출발을 하는 것이 옳은지 영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래 준비해왔고, 그 힘들게 예약한 캠프 사이트를 취소하기도 너무 아깝고, 아이스박스에 음식 준비도 다 해놨고, 남편도 옆에서 괜찮다고 하고...
그래서 걱정은 싹 지우고 기분 좋게 출발하기로 했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장기 주차해놓는 스토리지로 가서 우리 트럭과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나의 역할은 양 옆에 부딪히지 않고 잘 나오나 봐주고, 트레일러의 브레이크 등도 잘 작동하는지 출발 전 뒤에서 한번 봐주는 것이다.
트레일러 후진은 차와 반대 방향이라고 한다. 처음엔 주차할 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남편이 이젠 들어가고 나오고 제법 능숙하게 잘한다. 옆 차를 건드리지 않고 잘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 어떻게... 트레일러 바퀴 하나가 바람이 완전히 빠져있다. 이거 출발하지 말라는 거 아닌가?
순간 멘붕이 왔지만 운전병 출신인 남편은 침착하게 코너에 다시 주차를 하고 뒤에 있던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적응 안 되는 살인적 더위에 주차장 콘크리트 열기까지 더해서 타이어 교체하는 5분 정도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타이어를 바꿔 끼긴 했는데, 여분의 스페어타이어 없이 긴 로드트립을 떠난다는 게 좀 불안했다. 문제의 타이어를 아무리 살펴봐도 찢어지거나 못이 박힌 걸 찾을 수는 없었다. 중간에 타이어 수리점을 들러서 해결하고 가는 게 맞는 순서이긴 한데, 여기는 한국과 달라서 어디든 바로바로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다. 미장원도 그렇고 예약을 안 하면 일이 없어 보여도 절대 안 해준다. 남편 일 끝나고 출발하느라 이미 출발 시간도 오후 1시가 넘었고, 트레일러를 끌고 기약 없이 여기저기 가능한 수리점을 찾아다니기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냥 출발했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뭐. 보험은 다 들어놨으니 여차하면 토잉 하던지 하고.
밴프 가기 전 중간 지점으로 정한 Mt. Revelstoke 까지는 6시간 정도가 걸린다. 아무래도 첫날 너무 긴 운전으로 무리하게 잡은 것 같다. 3시간 정도로 끊었어야 했는데... 예전에 그냥 차로만 갈 때는 하루에 10시간 밴프까지 바로 가기도 했지만, 이번엔 3000kg 정도의 트레일러를 끌고 가려니 운전하는 남편은 계속 괜찮다 하지만 모든 일정을 짠 나는 후회가 밀려온다.
중간에 기름을 넣을 겸 아이스커피 한잔이 너무나 간절해서 캠룹스 근처 주유소에 잠시 들렀다. 트레일러를 끌고 다닐 때 또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맥도널드 같은 곳을 drive-through로 지나가면서 사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로드트립 하면서 이 사실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굉장한 단점이긴 하다.
남편은 주유를 하고 멀리 큰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기로 하고, 나는 그 시간에 옆에 있는 맥도널드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문 밖에까지 줄이 길었다. 난 아이스커피 두 잔만 사면 되는데 땡볕에 이렇게 긴 줄을 서야 하다니.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열과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까지 합하니 어마어마하게 뜨거웠다. 온도를 확인해보고자 휴대폰의 날씨를 눌러봤더니, 현재 기온 46도! 태어나서 처음이다.
한참을 걸려 시원한 아이스커피 두 잔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차로 돌아왔는데 운전석에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를 둘러보니 저쪽 구석에서 땀을 정말로 비 오듯 흘리며 바람 빠진 타이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돌려본 후 작은 못이 박힌 것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다행히 차 안에 타이어 수리 키트가 있었고, 그것으로 바람을 때우고 있는 중이었다. 너무 잘했다고 물개 박수를 연신 쳐주며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내밀었다. 이런 사건 사고도 여행의 일부지. 이제 멀쩡해진 스페어타이어도 있으니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이다.
그렇게 6시간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첫 번째 캠프그라운드 도착이다. Mt. Revelstoke 국립공원의 Snowforest campground. 새로 생겨서 깨끗하긴 한데, 생각보다 아주 작았다.
8시가 넘어서 도착했기에 별로 주위를 둘러보지도 못하고 얼른 저녁을 챙겨 먹었다. 캠프 파이어가 금지되어서 모닥불을 피우진 못했지만, 어차피 이 더위에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았다.
정신없는 첫날을 보내고 피곤함에 아주 꿀잠을 잤다.
내일부터 정식으로 로키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