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만년설산이 바로 눈앞에
우연히 만난 최고의 전망을 가진 캠핑장
일정에 없던 곳이다. 밴프와 제스퍼 중간에 있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드라이브를 하다가 우연히 들러본 곳이다. 이 환상의 드라이브 길인 93번 도로에는 예약 없이 선착순으로 갈 수 있는 캠핑장이 꽤 많이 있다.
언젠가 또 오게 되면 참고하자 라는 생각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캠핑장을 하나하나 들어가 봤다.
이 길은 어찌 된 게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멋지지 않은 풍경이 없다. 분명히 예전에도 몇 번 와봤던 길인데 그때는 이런 감동이 없었다. 이렇게 하늘, 구름, 산, 나무 … 자연을 보고 감탄하는 현상도 나이를 들어간다는 뜻이다. 목석같던 남편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우리끼리만 보는 게 세상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하다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순간 또 하나의 캠핑장 사인이 나타났다.
Wilcox campground
미리 예약을 받지 않는 이런 곳은 시설이 좀 부족하거나 오래된 경우가 많다. 들어가는 초입도 비포장도로라서 속도를 아주 줄이고 천천히 들어갔다. 여기도 self-registration 하고 들어가는 곳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일단 한 바퀴 도는데 생각보다 빈자리가 많다. 밴프나 제스퍼같이 큰 곳은 예약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었는데 이런 선착순 사이트는 빈 곳이 꽤 많았다. 다들 우리와 같은 심정이겠지. 짐을 바리바리 싸서 식구들 끌고 장시간 운전해서 왔는데 막상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완전 낭패지. 하루에 11불 정도 추가로 내야 하는 사이트 예약비가 아까와서 우리도 예약 없이 그냥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 힘든 예약을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다음번에는 용감하게 예약 없이 오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아보는 것이다.
별 기대 없이 한 바퀴 돌고 있는데 갑자기 환상적인 뷰를 가진 자리가 하나 딱 나타났다. 6번 자리!!
사이트 크기는 별로 크진 않지만 산 중턱에서 저 멋진 광경을 내려다보는 끝내주는 자리다. 멀리는 눈 덮인 산과 나무로 뒤덮인 산, 깎아지른 돌산이 주위를 빙 돌며 감싸고 있다. 그동안 다녔던 캠핑장 중 단연 으뜸이다.
마음에 쏙 드는 자리가 나오긴 했는데 이걸 그냥 보고 가자니 너무 아까왔다. 나도 나지만 남편이 특히 너무 좋아한다.
결국은 차에 있던 의자 두 개를 내려놓고 이 자리를 찜하기로 했다. 이런 명당자리는 우리가 떠나는 순간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다시 입구로 내려가서 안내판을 읽어보니 하루에 25불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모닥불 피우는 장작 값이 다 포함된 가격이다. 선착순이니 물론 예약비는 없다.
이제 남편과 의논을 해야지. 미리 예약해서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버릴 것인가. 그렇다면 여기서는 며칠을 머무를 것인가. 미리 돈 다 지불한 캠핑장을 포기하는 게 좀 아깝긴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제스퍼의 캠핑장도 여기보다 마음에 들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결국 이곳에서 3박 4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안내소에는 사람이 없고, 박스 안에 보니 우리 이름과 날짜를 적고 돈을 넣는 봉투와 연필이 들어있었다. 각자 알아서 체크인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꼼꼼히 적고 3일 치 75불을 봉투에 넣어서 통에 넣었다. 크레디트 카드도 가능했다. 이런 self-registration 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시스템이 잘 돼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한번 관계자가 사이트를 돌면서 정리를 하는 것 같다. 다시 6번 자리로 와서 예약 종이를 앞에 걸어놓고 의자를 남겨둔 채로 얼른 그전 장소로 돌아와서 이사 준비를 했다. 어차피 드라이브 길도 좋고, 왔다 갔다 하면서 경치 감상이나 더 하자 싶었다.
밴프나 제스퍼같이 인기 있는 지역의 큰 캠핑장들은 공공시설은 좋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해야 하기에 사이트 간의 간격도 좁고, 나무도 많지 않다. 우리끼리의 아늑한 맛을 느낄 수 없다. 이곳은 우리 마당 앞에 멋진 로키 설산의 풍경을 품고, 옆 사이트와의 간격도 넓어서 정말 이 산속에 우리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 멋지다. 한 달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날, 근처를 돌아보려고 차로 나와서 몇 미터 가니 바로 설상차가 있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가 나온다. 우리가 바라보고 감탄했던 산이 바로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였던 것이다. 감격 두배!!
이곳을 바라보고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스타벅스, 설상차와 스카이워크 등의 관광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인포센터, 기념품점도 있었다. 오랜만에 캠핑장 즉석밥이 아닌 앨버타 비프버거를 사 먹으며 경치를 감상했다. 이렇게 가슴 뚫리는 시원한 설산을 보다 보니 진짜 인생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힘든 일도 있었지만 잘 살아왔다는 셀프 칭찬과, 앞으로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천천히 잘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