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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Oct 05. 2021

캐나다에서 하루 세끼 밥 해 먹기

이제 여기도 한식 밀키트가 있어요.   FLEX !!

캐나다로 이민 와서 정착한 지 벌써 18년이다.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했고, 애기 때부터 키웠던 우리 강아지는 이제 할아버지 뻘이 되어서 관절약을 먹고 있다.  물론 우리 부부는 어느덧 5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세월 동안 나에게 제일 힘든 일은 하루 세끼 밥을 해 먹는 일이었다.

그다지 요리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맛있게 잘하지도 못하고, 정말로 생존을 위해서 자식 둘과 남편의 입에 뭔가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힘들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는, 한국과 달리 학교에서 급식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점심과 간식을 매일 싸야 했다.  간식도 절대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다.  간식 시간이 정해져 모두가 건물 밖 놀이터로 나가서 놀면서 간식을 먹기 때문에 이것도 은근히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괜히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모양이 이상하면 우리 아이들이 놀림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름 최선을 다해 메뉴 선택을 한다.  그래서 늘 과일과 적절한 달달이 디저트까지 맛도 모양도 꽤나 신경 썼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카페테리아가 있기는 하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사 먹기가 힘들다고 했다. 줄 서다가 점심시간이 다 지나간다고 또 굶어버린다.   그러니 엄마 입장에서 도시락을 또 안 쌀 수가 없다.   이  때는 사춘기 여자 아이의 감성에 맞춰서 심플하며 쿨하게 싸야 한다.  


아침에 꼭 국과 밥이 있어야 하는 남편 입맛도 맞춰야 한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냄새난다고 한식으로 차려진 밥상은 거부한다.   그러니 나 혼자 아침마다 전쟁이다.   남편 먹을 한식 밥상, 아이들 먹을 호텔 조식 느낌의 컨티넨탈 브렉퍼스트, 애들 점심 도시락과 간식 패키지...    


남편 일의 특성상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평생 세끼를 집에서 먹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한인식당과 마트들이 모여있는 지역에서 꽤 멀기 때문에 특별히 볼일 보러 나가지 않는 한 외식도 잘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양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속도 편하고 기분도 좋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가면 제일 부러운 게 배달 문화, 급식 제도였다.  애들 학교 도시락을 쌀 필요도 없고, 언제 어디서든 30분이면 맛난 짜장면과 짬뽕을 받아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매력적이고 행복한 일인지 쉽게 누릴 수 있는 자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밀 키트.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 이제 너무나 보편화돼서 간단히 집에서 만들어먹을 수 있게 반조리 상태로 배달이 온다.  우리 언니의 경우도 일주일에 두 번씩 반찬 배달이 온다고 한다.  아파트 문 앞에 두고 가면 나중에 들고 들어오면 끝...   정말 환상이다.


미국의 LA 나 뉴욕, 캐나다의 토론토 같은 정말 큰 대도시는 한국과 많이 다르지 않게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는 아직 시골이라 모든 게 좀 느리다.  


그런 밴쿠버에 이제 한국처럼 밀키트 배달이 생겼다.  사실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나 다운타운에서는 이전부터 조금씩 반찬 배달 같은 것들이 있긴 했지만 내가 사는 곳은 배달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 전혀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점점 수요가 늘어났는지 얼마 전부터 우리 집 쪽으로도 배달이 된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 우리 동네에 냉동 상태로 배달이 온다.  일주일 식단을 미리 생각해서 적당히 시키면 된다.  밀키트 종류도 좀 늘어났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던 반찬과 밀키트 주문이 가능해졌는데....  생각처럼 신나게 시켜먹지를 못하고 있다. 

몇십 년 차 주부가 가성비 계산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ㅜㅜ  

작정하고 주문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자꾸 가격이 비교가 된다.   아..  이거 마트에서 재료 사서 하면 얼마 정도면 되는데 이돈 주고 사 먹어 말어?   이 반찬도 마트에서 직접 사면 얼마면 되는데 배달해주는 건 좀 더 비싸긴 하구나.    나중에 배달비가 $7 정도 드는데 그냥 내가 가서 살까?     $60 이상 사면 배달비는 공짜로 되지만 팁을 안 줄 수가 없잖아.   여기까지 들고 오시는데 15% 정도 팁을 계산한다면 결국 너무 비싸지는데...    이렇게 망설이다가 결국은 그냥 접는다.   


그러다가 드디어 사치를 부릴 날이 왔다.

얼마 전부터 손목과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칼질도 못하겠고, 냄비도 못 들겠고 어깨까지 욱신거려 며칠간 시장도 못 보고 제대로 밥도 못해먹었다.  그때 미리 알아뒀던 반찬 가게에 당당히 주문을 했다.   감자탕 설렁탕 등 국 종류와 김치, 각종 밑반찬을 고루고루 시켜서 먹었다.   누가 주문 못하게 한 것도 아니고, 남편도 맨날 시켜먹자고 하는데 나 혼자 손이 오그라들어서 그동안 참았던 것을 처음 실행에 옮긴 것이다.  


모든 게 처음이 어렵지, 한번 주문을 트니 재미가 들린다.   

당연히 맛도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좋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몸이 편하다.  또, 주말마다 가는 캠핑에 딱 들고 가기 좋게 포장되어 있으니 만족도가 꽤 높다.  그래도 괜히 게으름을 피우는 느낌이라 양심상 자주는 시켜먹지 못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가 적당하겠다고 나 혼자 정했다.  


이제는 아이들 도시락 쌀 일도 없고, 몸이 점점 편해진다.   

편해지는 만큼 나를 위한 일에 시간을 써야겠다.  




이번 생일에 딸이 직접 만들어준 고구마 케잌.     나도 이제 베이킹을 좀 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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