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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ug 27. 2021

픽업트럭의 배신

로키여행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다


경치 보러 로키 여행을 갔는데, 몇 주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건 고생한 것뿐이다.  


멋진 호수도 보고, 설산도 보고, 사슴도 보고, 폭포도 보고, 하이킹도 하고, 캠핑도 즐기고... 중간중간에 예기치 못한 사건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룰루 랄라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너무 짧은 일정을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밴쿠버를 4시간 정도 남긴 캠룹스 근처를 지나갈 때 갑자기 차의 엔진 소리가 이상해졌다.   힘이 급격히 없어지는 느낌도 들고 아무튼 뭔가가 이상했다.   그래도 마침 도시를 지나가는 중이어서 얼른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근처 쇼핑 몰 주차장에 세워놓고 열을 식혔다.


나는 속으로 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이번 여행 내내 남편의 운전은 거의 스포츠카를 모는 듯했었다.  

캠핑 트레일러와 픽업트럭을 합해서 5천 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를 끌고 가면서 남들 추월할 거 다 하고 고속도로 최고 속도로 무리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갈 때는 당연히 느려져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RPM 6000을 넘길 때는 엔진이 터질 것 같은 소리가 나곤 했었다.  RPM 게이지에 6000부터는 빨간색으로 표시되어있다.  이 뜻은 무리가 가고 위험하니 그 위로는 올라가지 말라는 것 아니겠냐고 몇 번 얘기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내가 천천히 가라고 잔소리를 할 때마다 괜찮다고, 이 차는 이런 무거운 거 끌고 가라고 만들어진 차라고 자신 만만하게 얘기를 했다.  이미 5년이나 탔고 13만 킬로나 뛰었고, 얼마 전 정비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이 든 트럭이라 살살 다뤄야 한다고 계속 옆에서 말했지만 내 잔소리는 듣기 싫어할 뿐이었다. 모르겠다. 차에 대해서는 웬만한 정비가 가능할 정도로 잘 아는 사람이니 뭐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즐거운 여행을 망칠라 잔소리를 접었었다.  차에 문제가 생긴 게 맞긴 맞는데 남편은 주장한다.  너무 오래 타서 고장 날 때가 돼서 고장 난 것이라고.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난 지금까지도 이 모든 게 울 남편의 운전 습관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도 잠깐 엔진을 쉬게 하고 다시 출발했더니 이전 상태로 돌아온 듯했다.  남편은 거봐라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  안심하고 고속도로를 진입했는데...  아 큰일이다.  상황은 아까보다 더 안 좋아졌다.  이번엔 차가 다 분해돼서 부서져버리기 직전 같은 소리가 나고 있다.  지금부터는 비상 상황이니 어느 누구를 탓해서도 안되고 힘을 합해서 위기를 넘겨야 한다.  일단 에어컨부터 끄고 비상등을 켰다.  기어가는 속도로 가면서 제일 가까운 출구를 찾았다.  다행히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다.  여차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가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차를 견인해야 하니 BCAA에 전화를 걸었다.  포드 픽업트럭이 십만 킬로가 넘어가면 자동차 회사에서 제공하는 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고 하기에 얼마 전 추가 보험을 들었었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인다.   40도가 넘는 땡볕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 드디어 견인 트럭이 왔고 뒤에 트레일러까지 한꺼번에 끌고 다시 캠룹스 시내로 들어왔다.  


문제는 이 날이 토요일이라 일하는 자동차 정비소가 없다.  확인하는 곳마다 차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 집이 있는 밴쿠버까지는 4시간이나 걸리니 암담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주말이라고 렌터카 회사도 전부 문을 닫아서 밴쿠버로 돌아갈 차를 빌릴 수도 없다. 혹 차를 맡겨놔도 언제 고쳐질지 알 수도 없고 뒤에 달린 캠핑 트레일러를 놔둘 곳도 없다.  이럴 때는 한국 생각이 간절하다.  한국이라면 얼마나 친절하게 빨리 문제를 해결해줄까.  물론 주말도 일을 하는 곳이 많겠지. 여기는 뭐가 하나 고장 나면 고쳐지기까지 비용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결국은 근처 캠핑장으로 가서 빈자리 하나를 예약했다.  월요일부터는 남편이 일을 해야 하니 언제 수리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계속 여기서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견인차 아저씨가 여러 군데 전화한 끝에 한 곳에서 차를 놓고 가라는 허락을 받았다. 이것만도 너무 감사한 상황이었다. 견인차로 먼저 캠핑 트레일러를 캠핑장에 세워놓고, 우리 픽업트럭은 아까 전화로 미리 얘기해놓은 곳에 내려놓았다.  


차 수리하는 곳에서는 언제 고쳐질지 모르니 그냥 밴쿠버로 가라고 한다. 캠핑장 주인 할머니는 착하게도 트레일러의 일주일 주차비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드디어 우리는 복잡한 상황을 정리했다. 트레일러는 이곳 캠핑장 주차장에 일주일 정도 세워두기로 하고 고장 난 픽업트럭은 정비소에 놔두고, 밴쿠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으니 캠핑장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 출발해서 일단 집으로 가자.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쌌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캠프 사이트에 일주일을 세워둘 수는 없고 트레일러를 주차장까지 끌고 가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끌고 갈 트럭이 없다.  다행히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것을 본 우리 옆 사이트에 장기 체류 중인 백인 부부가 도와주겠다고 먼저 제의를 해왔다.  얼마나 고마운지.  그 아저씨가 자기 트럭으로 우리 트레일러를 오피스 옆 주차장으로 끌고 가서 안전하게 주차를 해줬다.  일주일 후에 가지러 와서 과일 바구니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꼭 다시 해야겠다 마음먹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밴쿠버로 왔다.   


수리를 마무리하고 찾아서 우리 집으로 오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엄청난 비용이 나왔다.  멀리 밴쿠버에서 온 이방인인 우리는 그들에게 호구였다.  중간에 화가 나서 확 팔아버리고 새로 사버릴까 한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래도 우리와 수많은 기쁨을 함께한 트럭인데 우리가 너를 배신할 수는 없지.  전기 트럭이 나올 때까지 제발 튼튼하게 우리와 함께 있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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