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Jul 29. 2021

일주일 만에 우리를 떠난 드론 카메라

25미터 나무 위에 걸려버리다


둘째 딸이 얼마 전 취직을 했다.   대학 졸업반이라 불분명한 미래를 불안해하며 몇 달 전부터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있었다.  자기를 원하는 곳이 하나도 없다며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을 때, 딱 한 군데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코로나 시국이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생각보다는 빨리 연락이 온 편이다.  두 번의 화상 면접을 통해 합격하였고, 토론토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첫 월급을 받으면 우리한테 무슨 선물을 할지 엄청 고민하더니 아빠 선물로 드론 카메라를 결정했다.  우리 부부의 로키 여행 출발 전에 Father's day 선물과 합해서 큰 맘먹고 보낸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 순간을 보고 싶다고 박스 오픈하는 순간은 영상통화를 원했다.  그동안 이걸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투자해서 검색하고 리뷰 보고 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뿌듯해했다.  이것 때문에 우리의 로키 여행이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고 장담하면서 뿌듯해하는 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우리는 다소 과장된 리엑션으로 감탄을 반복했다.  


그동안 30불 주고 산 장난감 드론으로 집 안에서 즐기는 아빠 모습이 좀 안쓰러웠나 보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니 큰돈을 들여 살 수는 없고, 갖고 놀고는 싶어 하는 아빠에게 딱 맞는 선물이다. 아무튼 통 큰 딸 덕분에 남편은 아주 기분이 좋아졌고 작동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해당 앱을 깔고, 컴퓨터랑 뭐 어떻게 연결하고 등등등...  엄청 복잡해 보였다.   동영상을 봐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더니 아파트 옆 공원으로 가서 테스트를 했다.  그런데 사생활 보호 차원으로 그런지 아파트 근처에서는 촬영이 금지된다고 안내가 뜬단다.  연습 부족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단 여행 출발해서 자유롭게 띄우고 찍기로 했다.  




로키 가는 내내 남편은 드론 띄울 기회를 찾았지만 그게 또 쉽지만은 않았다.  일단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은 우리나라와 달리 매우 협소하고 달랑 차 몇 대 세울 공간과 화장실만 있다.  그 주차장에 세워놓고 화장실 가는 사람들 옆에서 드론을 날리기도 민망하고 40도가 넘어가는 7월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는 전혀 즐길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가는 길에서도 포기.  일단 캠핑장 도착해서 해보자 했다.  


캠핑장 도착해서 자리 세팅이 다 끝난 후 남편은 다시 한번 시도를 했다.  한데 영 뭔가가 찜찜하다.  사생활 보호 차원으로 아파트에서 드론을 띄울 수 없다면 캠핑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옆 사이트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데 싶어서 급하게 검색을 해봤다. 역시 캠핑장도 안된다고 나온다. 그래서 또 포기. 다른 사람들은 멋진 동영상을 많이도 찍었던데 도대체 다들 어디서 어떻게 찍은 건지 모르겠다.  


중간중간 이동하면서 인적이 뜸하고 나무 없이 넓은 평야 같은 곳이 나오면 잠깐씩 세우고 도전을 해봤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도 흐리고...  원하는 그림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충전한 배터리로 30분 정도밖에 작동을 안 하기 때문에 길게 연습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제스퍼 가는 길에 93A 우회도로로 빠져서 Athabasca 폭포를 구경하고, 제스퍼 캠핑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지나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바람도 적당하고 빛도 적당하고.  다리 위에서 찍으면 나무에 걸릴 위험도 없고.  처음으로 제대로 멋지게 찍어봤다.  남들 하듯이 카메라 쳐다보며 손도 어색하게 한번 흔들어보고.  영상을 기다리고 있을 딸한테 보내줘야 해서 가족 카톡창에 얼른 이 영상을 올렸다. 와우, 멋지다. 아빠 엄청 잘 찍는다...  이런저런 감탄사를 들으며 우리 둘 다 안심했다.  휴 ~~  우리가 덕분에 잘 즐기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근사한 영상 하나는 꼭 필요했다.  자식한테서 받는 선물은 받아도 부담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Athanasca Falls, Alberta


이렇게 일단 숙제를 해결하고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껏 드론을 뛰우지 못한 남편이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캠핑장에서 살짝 다시 꺼냈다.  낮 시간이라 근처 캠프 사이트가 거의 비어있어서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저녁에는 또다시 불가능해진다.  문제는 나무가 너무 많다는 것인데 몇 번의 완벽한 작동으로 그 정도는 운전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일단 똑바로 하늘 높이 띄운 다음 옆으로 이동시킨다 라는 나름 철저한 계산하에 드론을 출발시켰다.    


"앗, 큰일 났다!!"  왜?  하고 남편을 쳐다본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나무가 높아도 너무 높아서 그 끝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꽤 높이 올라갔다 싶어서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는데 바로 걸려버렸다.  날개가 파닥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드론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돌멩이를 던져봐도 그 높이까지 올라갈 리가 없다.  하필 오늘은 바람도 한점 없다.  25미터는 돼 보이는 소나무 끝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아.  로키의 소나무는 왜 이리 키가 큰 것일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딸한테 미안해서 어떻게 말하지?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 토론토에 있으니 일단 말하지 말자, 너무 실망할 거야.  이렇게 의견을 모으고 또다시 고개를 젖히고 나무를 쳐다봤다.  바람이 좀 세게 불어서 떨어뜨려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  밤에 자는 동안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줄 것을 기대하며 약 오른 상태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밖으로 나가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닥을 살폈으나, 바람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없이 아주 깨끗했다.  이제는 깨끗이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다.  결국 딸이 열심히 일해서 사준 그 소중한 드론 카메라는 일주일 만에 우리 품을 떠났다.  다행히 그동안 찍은 동영상 몇 개는 핸드폰에 저장이 되어있어서 건질 수 있었다.   


아직 우리 딸은 모른다.  속상해할 텐데...   최대한 늦게 알아차리면 좋겠다.



Athabasca river, Alberta, Canada


이전 02화 눈 딱 감고 질렀습니다 캠핑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