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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17. 2021

둘이 함께할 뭔가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캠핑에 빠지다

늘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결혼 생활 25년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고, 우리는 어중간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는 몸과 괜스레 우울해지는 갱년기라 불리는 쉽지 않은 나이를 지나고 있다.    한기가 느껴져서 옷을 껴입었다가도 열이 확 올라 다시 벗어던지고를 반복하며, 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한 성격인 줄 알았던 내가 엄청 과격하고 다혈질이 되었다.   누가 봐도 상남자인 감정 따위는 키우지 않는 것 같던 남편은 슬금슬금 눈물이 많아지고, 가끔은 내 눈치를 보기도 한다.  50대.  사람이 바뀌기도 하는구나 싶다.


밴쿠버 이민 와서 산지 20년이 되어간다.

딸 둘이 모두 대학생이 되어 토론토로 떠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방학이면 집으로 오고, 맛난 거 먹을 때면 사진을 찍어 소통하며 가끔은 영상 통화도 하고 해서 그런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남편과 둘이 보내는 시간이 어마 무지하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다면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만남이 당연히 많을 테니 이 정도는 아닐 테지만 이곳 밴쿠버에서는 진짜 딱 우리 둘 뿐이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그나마 만남을 가졌던 사람들과도 왕래가 없다.  

우리끼리 둘이 남은 인생 함께할 뭔가를 찾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운동선수 출신인 남편은 무슨 운동을 해도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가기 직전으로 과하게 하고, 나는 뭘 해도 체력 딸리고 잘 못하니 싫어하고.   스포츠를 같이 즐기긴 글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캠핑이 떠올랐다.   나는 예전부터 막연히 캠핑을 좋아했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이 싫어했었다.  겉으로 보기엔 완전 정반대 이미지 건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딱 한번 도전해봤지만 남편의 호응이 별로라 바로 포기하고 그 후론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하긴 그동안 먹고살기도 바빴고 애들 공부시키랴 운동시키랴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  


캠핑은 장비빨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아마존을 통해 캠핑 장비를 하나하나 주문하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남편이 쇼핑카트에 마구마구 담아놓은 것들을 질겁하며 못사게 했겠지만 이번엔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일단 제법 뭔가가 갖춰지니 남편도 슬슬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나의 큰 그림 성공!!


그쪽으론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관련 영상부터 보기 시작했다.  고수들의 조언도 듣고, 필요한 게 하나 둘이 아니네..   이렇게 둘이 같이 의논해가며 장비를 하나씩 갖춰갔고 이 재미가 진짜 쏠쏠했다.   택배가 도착하면 살짝 설레고, 둘 중 하나 없을 때 도착하면 같이 이 기쁨을 만끽하려 기다렸다가 같이 박스를 풀었다.  소꿉장난하는 기분.   맘에 안 들면 또 리턴하고를 반복하면서 이것들을 사용해볼 첫 캠핑장을 예약했다.   


일단 밴쿠버에서 한 시간 정도로 가깝고 태평양을 바로 눈앞에 두고 하루를 지낼 수 있는 Porteau Cove라는 인기 많은 캠핑장 예약에 어렵게 성공을 했다. 1월 말, 아직 엄청 춥지만 초보가 용감하게 겨울 캠핑으로 시작한다. 어쩔 수 없지.  필이 꽂힌 게 지금 겨울이니, 그냥 지금 시작한다.  


Porteau Cove Provincial Park Campground, BC, Canada


두둥......   너무 멋지다.    


가끔 휘슬러 가는 길에 들러서 경치를 둘러보긴 했지만 이렇게 내 주말 별장 마당으로 태평양을 마주하다니. 나무, 하늘, 바다, 돌멩이...  이런 자연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분명 30대, 40대에도 이런 풍경을 마주했던 적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이런 감격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이것 또한 50 이 넘으면서 변하는 것 중 하나다.


모닥불 피워놓고 스테이크 구워 먹고 따뜻한 차 한잔, 꼬치에 마시멜로, 불멍...   남들 하는 거 다 해보고 텐트 안에서의 첫날밤.  

그. 런. 데.  정말 추웠다.   나름 철저히 준비했지만 텐트를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 몇 시간 간격으로 지나가는 기차의 경적 소리는 자고 있는 내 귀에 최대치 볼륨으로 바로 꽂힌다.  화들짝 ~~  얼마나 놀랐는지...   겨우 진정시키고 힘들게 잠들었는데 이번엔 너구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자꾸 우리 텐트를 건드린다.  남편을 깨웠더니 용감하게 나가서 사태를 해결했다.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이젠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참으로 긴 밤을 지새우고 동은 텄는데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너무 추워서 슬리핑 백 위로 얼굴만 나온 둘이서 눈이 마주치니 그냥 웃음이 터진다. 참으로 어이없다. 사서 고생이란 말이 딱 이거지. 아, 골병든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그래도 용기를 내서 텐트 지퍼를 열고 찬 공기 속으로 빼꼼히 몸을 내밀어본다. 상쾌한 공기, 나무 냄새,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 초록 초록한 나무들이 날 반겨준다. 그래 이거지. 아무리 추워도 이 맛에 캠핑 오는 거지.


힘을 합해 해결해야할 일이 많으니 부부간 전우애가 절로 생긴다.  그런데 살짝 성취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첫날치곤 괜찮았어.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야. 다음 주는 좀 더 공부하고 더 철저히 준비해서 가자!  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싫증 나기 전까진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아주 자주 가려고 한다.  아직은 어설프기에 준비할 것도 많고 몇 대 맞은 것처럼 몸도 쑤시지만 그래도 즐겁다.  이 아이러니를 말로 설명할 재주는 없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다음 주는 어디로 갈까 준비하는 한 주가 설렌다.  둘이 힘을 합쳐 뭔가에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너무 좋다.  더 나이 들어 둘 중 하나가 거동이 힘들어지기 전에 죽기 살기로 한번 놀러 다녀 봐야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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