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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17. 2021

엄마와 캐나다 횡단 기차 여행

친정 엄마 아빠의 오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캐나다 횡단 기차 여행.


가끔씩 막내딸이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 밴쿠버에 들르실 때마다 두 분이서 부지런히 많이도 다니셨다.  엄마는 독학으로 영어 공부도 하셨는데, 영어 소설책도 문제없이 읽으실 정도로 외국어 쪽은 소질이 있으시다.  아빠는 외국어보다는 숫자 쪽에 강하신 편이라 외국 나오시면 엄마가 모든 걸 리드하셨다.  두 분이 유럽 여행을 가도 배낭여행 비슷하게, 현지에서 모든 걸 해결하면서 무계획으로 한 달씩 다녀오시곤 했다.  젊은 사람도 그렇게 하기 쉽지는 않을 텐데 용감하기도 하지.   여행은 중독이라며 계속 그다음 여행을 준비하시곤 했었다.


몇 년 전 아빠는 '캐나다 횡단 기차여행', 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다.  조금 더 나이 들면 하신다고 남겨놓으신 건데...   엄마는 혼자된 이후 제일 아쉬운 것이 함께 여행할 동반자가 없어졌다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내가 엄마와 함께 하기로 했다.  나도 이제 애들이 다 커서 내 손이 꼭 필요한 시기는 아니니, 남편 혼자 알아서 챙겨 먹을 곰국만 잔뜩 해놓으면 언제든 출발이다.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토론토에서 엄마와 만나 기차 타고 밴쿠버로 가기로 했다.  엄마는 한국에서 직접 토론토로 오시고 나는 밴쿠버에서 토론토로 먼저 가서 기다렸다.  이런 기차 여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엄청나게 인기 있는 루트이기 때문에 우리도 몇 달 전부터 온라인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캐나다의 동쪽 토론토에서 출발해서 서쪽 끝 밴쿠버까지 가는 4,500km의 기차 여행이다.   

일단 이 거리를 기차로 달리기 위해선 4박 5일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식사가 포함된 침대칸의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라 젊은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이 긴 시간을 인터넷 와이파이도 안 되는 기차 안에 있어야 하는 지루한 여행에 비행기 가격의 4-5배를 들여 갈 젊은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나도 걱정이 하나도 안 된 건 아니다.  과연 엄마와 한 공간에서 4박 5일을 아무 문제없이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창밖 풍경을 보는 것도 책을 보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그 많은 시간을 인터넷도 안되는데 도대체 뭘 하면서 보내지.  엄마도 나도 각자 잠자리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침대가 있는 케빈 두 개를 따로 예약해 놓았기에 어느 정도 혼자 시간은 보장되어 있었다.  혼자 쓰는 케빈 두 개를 예약하는 것과 두 명이 같이 쓰는 케빈 한 개의 가격이 같았다.  하루 세끼 식사도 다 포함되어있으니 준비할 것은 옷과 세면도구 뿐이었다.



토론토 공항에서 엄마를 만나 일단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같이 며칠 머물다가 기차역으로 향했다.  팔십 넘은 할머니가 용감하기도 하고 씩씩하기도 하다.  자기주장이 좀 강하긴 하지만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사교적이고, 건강하고, 지혜롭고...  따라가기 벅찬 멋쟁이 할머니다.  


처음 하는 기차 여행이라 모든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각자의 침대칸에 짐을 풀어놓고 라운지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기차 내부를 둘러봤다.  저쪽으로 가면 식당칸이고, 간단한 간식과 커피는 늘 이쪽 코너에 놓여있고.  라운지 테이블에는 보드게임, 퍼즐, 신문, 잡지 등 즐길만한 거리가 조금씩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파노라마 뷰를 보며 갈 수 있는 전망칸도 있었다.  물론 이곳은 인기가 많아 부지런을 떨어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처음에 나눠준 식사 스케줄에 맞춰서 몇 그룹이 돌아가며 식사를 한다.  한 테이블에 4명이 앉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합석을 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가 조금 불편했다.  사교성이 많은 엄마는 처음 본 사람에게도 말을 잘 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질문도 많다. 하지만 엄마도 그렇게 유창한 영어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니 화제만 던져놓고 마무리는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즉흥적인 대화가 그다지 즐겁지 않다. 같이 앉아있어서 어색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 말 저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하는 영어도 단순한 생활 영어이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시간 이상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정도는 아니다. 이쯤 되니 매 식사 시간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린 것, 즐기기로 했다.  울 엄마가 얼마나 벼르고 벼르던 여행인데 망칠 순 없지.  사이사이 시간에 엄마와 대화도 많이 나누고, 같이 퍼즐도 하고, 이쪽저쪽 칸을 옮겨 다니며 사람 구경도 하고, 각자 방에서 책을 보다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몇 군데 역에서는 한두 시간쯤 자유 시간이 있었다.  근처 공원에서 짧은 산책도 하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맑은 공기를 마시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억지로라도 4박 5일간 식사시간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중에는 제법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인사하기도 바빴다.  뜨개질 많이 하던 혼자 오신 할머니가 있었는데 또 다른 혼자 오신 할아버지와 썸 타는 것을 목격하고 얼마나 재미있어했는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게 여행의 맛이지 싶다. 

엄마도 몇십 년 여행해보니 기억에 남는 건 어떤 나라나 도시가 아닌, 만났던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들과 나누었던 인생 이야기,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들의 표정, 이런 게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엄마와 함께한 이 기차 여행이, 중간중간에 식당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낯선 사람들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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