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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pr 22. 2022

환갑이 코앞인 언니의 파리 일 년 살기를 지지합니다

진짜 실행에 옮길 줄이야...


몇 달 전 큰언니가 폭탄선언을 했다.  파리에 가서 일 년 정도 살다가 오기로 했다고.  형부도 본인이 은퇴하기 전에 언니가 가야 서포트해줄 수 있다고 적극 찬성했다 한다.  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 갈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현실이라는 게 늘 발목 잡기 마련이니까.


장녀라는 이유로 엄마의 코치(?)를 제일 많이 받아온 큰언니는 자기주장이 제일 강한 듯했으나 번번이 본인이 원하는 길로 가지 못했던 것 같다.  대학을 정할 때도 본인은 남녀공학을 원했지만 부모님의 주장으로 여자대학교를 가게 됐고,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결혼 전에 여자 혼자 유학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대에 부딪혀 또 포기했었다. 자존심도 아주 강한 사람인데 유학 가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기에 더 부러웠을 것이다.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키우고, 얼마 전 퇴직하기 전까지 좋은 직장에서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 과정에서 사춘기 딸들과 전쟁도 겪었고, 융통성도 별로 없는 성격인데 좋은 장녀 역할을 하느라 애도 많이 썼다.  우리 모두에게 오는 갱년기가 당연히 언니에게도 왔고 몇 년을 시도 때도 없이 머리로 올라오는 열감과 싸우며 넘어갔다. 평생을 종교 없이 살았었는데 갑자기 몇 년 전부터 성당에 나가더니 세례도 받고 성경공부도 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었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니 갑자기 자기 발로 성당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늘 옆에서 무조건적으로 편들어주고 잘해주는 형부 덕분에 아직도 앳된 얼굴 뽀송뽀송한 피부로 잘 살아가고 있다.  


똘똘한 두 딸은 독립해서 각자 자기의 삶을 잘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 없어졌고, 형부는 회사에서 삼시 세끼 다 해결하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니 언니가 혼자 파리에서 일 년을 살아보기로 마음먹기 딱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그 세부적인 준비는 2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제2 외국어로 불어를 했던 언니는 전공도 아니면서 대학교 시절 불어 과외로 돈을 벌 정도로 실력이 꽤 좋았다.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는 상태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파리 어느 대학 부설 어학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공부를 하니 너무 재미있다고 좋아한다. 장기 체류여서 비자도 받아야 했고, 에어비엔비로 집도 미리 구해놓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것이 좀 미뤄지기도 했지만 백신 여권 받아서 드디어 떠났다.  참으로 용감하다.  솔직히 나는 자신 없다.  혼자서 일주일 이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웃으며 보내준 형부도 대단하다.   


언니도 이제 50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언니는 한국에 나는 캐나다에 살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얼굴 보는 게 다였기에 그 지나온 삶을 잘은 모른다.  하지만 꼭 말로 들어야 아는 건 아니다.  우리네 집을 각각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고, 평탄하기만 한 인생이 또 어디 있을까.  저마다 중년의 허무함을 넘기는 법이 있을 터이다.  우리 언니는 이것을 선택한 것 같다. 


그 인생의 굴곡을 넘기며 환갑이 다 돼가는 지금이지만 막연히 꿈꿔왔던 일을 실행에 옮긴 언니의 용기를 진심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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