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다 (3)

스승님의 제자가 지난번 과거에 이어 연이어 장원으로 급제했습니다

by 두류산

3장


예종은 김종직의 학문과 문장을 높게 평가하여 정 4품 예문관 응교(應敎)겸 지제교(知製敎)에 임명하였다.

지제교는 왕이 내리는 교서의 글을 짓는 일을 맡아보며, 예문관 응교는 사관(史官)들의 실직적인 장(長)으로서 역할과 임금의 국정을 보좌하는 경연관이 되는 직책이었다.

사관들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자리는 영예스러운 일이나 사화(史禍)를 겪은 터라 사관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사관의 붓끝을 무디게 하여 춘추필법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 없다면, 거울처럼 지난 시대를 비추어야 하는 사관의 직책은 오히려 욕된 자리가 되리라.’


김종직은 민수의 옥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새 임금이 들어서서 새로운 정치가 펼치질 것이라는 기대가 줄어들었다. 등극하자마자 선비들을 무참히 죽이니, 세조의 분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조가 세상을 떠났어도, 도(道)를 행할 만한 조건을 갖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김종직은 70세가 된 어머니도 마음에 걸렸다. 김종직은 마음을 정했다.

‘벼슬을 던지고 낙향하여 연로한 어머니를 돌보며 제자를 기르자.’


김종직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나이가 이미 70세가 되어, 부득이 사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상소를 임금에게 올렸다.

예종은 세자 시절 세자빈이 돌아갔을 때 김종직이 애책문을 지어 자신은 물론 부왕과 장인을 모두 눈물짓게 한 일을 생각하며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종직은 두 차례 더 사직 상소를 올렸으나 예종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김종직은 임금이 내린 상소에 대한 답을 받아 들고 탄식했다.

"벼슬길에 들어서니, 조정을 벗어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연로한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고 사직서를 올리면 사직을 허락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대개 임금은 부모가 사는 고향에서 가까운 고을의 수령을 제수하였다. 김종직은 일말의 기대를 하였으나 임금이 세 번이나 사직을 허락하지 않고 가까이 두고 쓰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김종직의 울적한 기분을 전환시킨 것은 제자인 채수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것이었다. 특별히 이번 과거는 새 국왕이 즉위한 새 시대에 처음 치러진 시험으로 장원을 한 채수는 조정의 기대를 모았다. 채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스승인 김종직의 집을 찾았다.

"스승님의 제자가 지난번 과거에 이어 연이어 장원으로 급제했습니다. 장안의 선비들이 스승님에게 배우고 싶어서 제자들에게 줄을 대고 야단이 났습니다.”

김종직이 채수가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있는데, 건장한 체구에 씩씩해 보이는 젊은 선비가 눈에 들어왔다. 채수와 함께 온 선비였다. 나이는 열여덟 살쯤 되었을까, 아직 소년티가 나는 얼굴인데 훌쩍 큰 키에 어깨가 벌어져 단단해 보였다. 부리부리하게 큰 눈에서 비치는 맑은 눈빛에 용맹함과 지혜가 깃들어 보였다.


채수는 김종직의 시선을 의식하고, 같이 온 젊은 선비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서 인사를 드리게.”

채수의 뒤에 있던 젊은 선비는 얼른 앞으로 나서서, 공손히 절을 올리고 말했다.

"저는 이심원(李深源)입니다. 여쭙기 외람되오나 제자로 받아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채수가 절을 올리는 이심원을 지켜보다가 스승에게 말했다.

"조카인 주계부정(朱溪副正) 이심원입니다. 저의 누님이 효령대군의 손자이며 내금위장이었던 평성도정 이위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주계부정은 효령대군의 증손자이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보성군의 손자입니다.”

주계부정은 종친인 이심원에게 나라에서 내려준 봉작명이다. 종친 봉작명은 대개 연고지 지명을 붙였다. 부정(副正)은 대군의 직계 자손인 종친에게 주는 종 3품의 칭호였다.


외삼촌 채수가 남이의 역모에 관련되었던 조부를 언급하니, 이심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럼을 타는 듯이 멋쩍어하는 젊은 선비의 모습이 꾸밈이 없어 보여, 김종직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김종직의 제자가 된 이심원은 세종대왕이 명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아 만든 '삼강행실도'를 훗날 속편을 만들며 개정할 때 충신 편에 추가된 인물이었다. 가까운 친척의 사사로운 정을 돌아보지 않고 의를 행하였으며,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충절이 지극하여 선공후사(先公後私)로 충신의 모범이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종은 재위 1년 3개월 만에 뜻밖에 병환으로 승하하였다.

갑작스러운 임금의 죽음은 조정의 신하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이렇게 일찍 승하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 했기에 더욱 그랬다.

유자광은 어제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집무를 보던 임금이 갑자기 승하하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세조가 승하하였을 때 부모를 잃은 듯한 비통한 충격이었다면, 예종이 승하했다는 소식은 충격에 더하여 불안감마저 엄습해왔다.

‘나의 힘이 되어주셨던 임금이 돌아가셨다. 이제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나?’


조정의 신하들은 대행 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과연 누가 왕위를 이을 것인가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예종의 원자인 제안대군이 네 살 어린 나이에 보위를 이을 수 있을지가 최고의 관심이었다.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희대비가 요절한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13세의 자산군(者山君)을 왕으로 지명하자, 조정은 깜짝 놀랐다. 대행 왕의 적자(嫡子)가 왕위를 잇지 않는 것도 어색하지만, 형인 월산군을 제치고 자산군이 왕이 되는 것은 순리에도 맞지 않았다.


조정의 신하들은 수군거렸다.

"자산군이 상당군 한명회의 사위이니 그렇게 된 건가?”

"상당군의 셋째 따님인가?”

"넷째 따님이지. 셋째는 대행 왕의 세자 시절에 세상을 떠난 세자빈이셨잖아.”

성종은 11세에 한명회의 막내딸과 결혼했다. 성종이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로서 장남인 월산군과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을 제치고 왕위를 잇게 된 상황은 당시 예종과 성종의 장인으로 권신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한명회의 존재감이 큰 역할을 하였다.


한명회는 조정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신숙주를 찾아가 새 임금의 즉위를 서둘러야 함을 의논하였다.

"자산군으로 정해졌으니 즉위식을 하루라도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신숙주와 훈구대신들이 정희대비를 찾아가 뵈었다.

"사군(嗣君, 왕위를 이은 임금)이 성복(成服)한 후에 즉위하는 것이 전례(前例)이지만, 먼저 즉위하여 인심을 안정시켜야 마땅할 것입니다.”

성복(成服)은 입관이 끝나고 신위(神位)를 모시면 상주들이 정식으로 상복을 입는 것을 말한다.


대왕대비가 신숙주와 훈구대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산군이 면류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하니, 문무백관들이 하례를 올렸다.

어린 임금 성종은 즉위 후 대왕대비인 정희대비의 섭정을 받으면서, 중요한 일은 원상(院相)인 한명회와 신숙주 등 9명의 훈구대신과 의논하여 결정하였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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