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다 (4)

어린 성종이 훈구대신에게 둘러싸인 상황이 아프게 느껴졌다

by 두류산

4장


김종직은 학문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을 받아 선왕의 덕행을 칭송하는 글인 예종대왕 시책문(諡冊文)을 지었고, 성종의 어머니가 인수왕비로 책봉될 때 공덕을 기리고 축하하는 글인 인수왕비 옥책문(玉冊文)을 지어 임금에게 올렸다. 대비들과 임금은 물론 신숙주와 한명회 등 여러 대신들도 김종직이 지어 올린 글을 보며 유려한 문장에 감탄하였다.

유자광도 김종직이 쓴 세상을 떠난 예종대왕을 위한 글을 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시렸다.

‘즉위한 지 겨우 1년을 넘었는데, 하늘은 어찌하여 왕의 수명을 탐했던가? 옥궤(玉几, 궁궐에서 사용하는 작은 탁자)에 기대실 때 나는 소리 갑자기 들리는 듯한데, 활시위가 울부짖는 애통이라도 어찌 이 슬픔을 다하겠는가?’

유자광은 김종직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지지하던 젊은 임금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새삼 와 닫고 마음이 텅 빈 듯 허허로웠다.


조정은 어린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경연에 참여할 학문 높은 선비를 선발하였다. 김종직의 이름은 선발 명단의 첫머리에 올려졌다. 성종은 어린 나이에도 성군(聖君)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학문에 힘쓰고, 조강, 주강, 석강 하루 세 차례의 경연을 거르지 않았다.

김종직은 경연에서《논어(論語)》를 강의했다.

"공자께서는 정사(政事)라는 것은 바로잡는다는 뜻이라고 하시며, 바르게 하여 이끈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되지 않겠는가 하셨습니다.”


임금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과인이 어떻게 하면 바르게 이끄는 어진 임금이 될 수 있겠소?”

김종직이 입을 열어 말하려는데, 호조판서 서거정이 먼저 나서서 아뢰었다.

"성군(聖君)이 되시려면 우선 정심(正心)으로 수신(修身)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천하의 일이 따라서 바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바로잡는 요체는 오직 학문에 있으니, 경연에 임하여 성현의 학문을 배우고, 위로는 하늘을 경외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보살펴서 베풀어 행하는 바가 바른 데에서 나오도록 힘써서 세상이 잘 다스려져 평안하게 하소서.”

임금은 서거정의 말이 구름 잡는 것처럼 마음에 와닿지 않아, 김종직을 쳐다보았다.


임금이 눈길을 주자, 김종직이 천천히 아뢰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하면 성군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경전과 사책(史冊)에 답이 있습니다. 공자도 ‘몸가짐이 바르면 정사(政事)를 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하셨습니다. 부지런히 학문에 힘쓰고,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자연히 어질고 뛰어난 임금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부지런히 학문에 힘쓰고, 가르침대로 실천만 하면 된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학문하는 선비의 마음가짐은 수기치인(修己治人)입니다. 공자는 수기(修己)함으로써 공경하고, 수기함으로써 사람을 편안히 하고, 수기함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자신을 갈고닦아 스스로 수양을 이루고, 백성을 다스리면 어진 임금이 되는 것입니다.”


성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과인도 선비의 마음으로 학문에 임하겠소. 학문을 하는 데 있어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은 무엇이오?”

임금의 진지한 물음에 경연관들이 모두 김종직을 입을 주시하였다.

"학문의 도(道)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와 같아서 날로 갈고닦지 않으면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옛날의 성군들은 학문에 힘쓰고 날로 진취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어린 임금은 몸을 기울여 김종직의 말을 경청하였다.


어린 성종은 하루라도 배우지 않으면 학문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게 된다는 김종직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대행 왕의 시신을 하관 하는 날이 되어 제사를 지낸 후, 원상 한명회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제사를 행한 뒤에 경연에 나아가면 옥체가 피로하실까 두렵습니다.”

"과인은 하루라도 배우지 못하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오. 제사를 행하였다고 경연을 정지할 수 없소.”


여름이 되자 원상 김질이 아뢰었다.

"때가 바야흐로 매우 무더워서 하루에 세 번 경연에 나아가는 것은 피로로 옥체를 상하시게 할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당분간 주강을 정지하고 또 저녁에도 더운 기운이 남아있느니 석강에도 간편복으로 경연을 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린 성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촌음(寸陰)을 아껴야 하는 상황인데, 어찌 덥다는 이유로 주강을 정지할 수가 있겠소? 또 조정의 신하들을 간편복으로 접견할 수는 없는 일이오.”


젊은 신하들은 어린 임금이 보이는 학문에 대한 자세에 탄복했다.

"성군이 되실 분은 떡잎부터 달라. 주상은 공부를 좋아하는 천성을 갖고 있기에, 하늘이 이 나라에 내려주신 복이야.”

"훈구대신들은 어리신 주상에게 안일하고 게으름부터 가르치며 환심을 얻으려고 하니, 저들을 어이할꼬.”

성종은 남다른 성실과 끈기로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경연에 많이 참석한 임금이었다. 성종은 재위 25년 동안 연평균 369회 경연을 열어, 일만 번에 가깝게 경연에 참여하였다. 성종은 매일 경연에 참석하여 학문을 닦고 현안 문제를 협의하였으므로, 경연이 자연스럽게 교육과 정치의 장이 되었다.


김종직이 경연에서 《논어(論語)》를 강의하며 임금에게 아뢰었다.

"성인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학행일치(學行一致)하여, 이 세상을 태평성대로 만드는 것은 군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며,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는 가르침을 따라 백성을 하늘로 아는 임금만이 왕도정치를 실현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 임금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맹자가 말한 왕도정치에 대해 소상히 말해주시오.”

"맹자는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면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게 되고,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따르게 되므로, 덕에 의한 왕도 정치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강제적인 힘으로 다스리는 패도정치와 대비되는 것으로서, 도덕적 교화를 통해서 정치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김종직은 어린 임금이 성군의 자질을 보이자 기쁜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군주가 먼저 자신을 갈고닦아 스스로 수양을 이루고, 백성을 교화하여 다스려나간다면 정치는 자연스럽게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대리자인 국왕도 선비입니다. 선비로서 옛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바른 정치를 해야 하는 책무가......”

원상 김질이 사나운 눈빛으로 김종직의 말을 자르고 나무랐다.

"무엄하고 경망한 말이오. 어찌 주상전하를 일개 선비라고 칭할 수 있겠소?”

김질의 갑작스러운 질책에 경연장의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신숙주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 나서서 아뢰었다.

"종직이 말한 것은 성상(聖上)도 유학을 공부하는 유자(儒者)라는 뜻입니다. 어찌 성상을 낮추어 말했겠습니까?”

김종직은 김질의 나무람을 듣고 질끈 눈을 감았다. 김종직은 더 이상 말하기를 멈추었다.

김질은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상왕 복위 거사에 참여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장인인 정창손에게 고변하여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을 모두 죽게 한 대신으로 김종직은 그를 마음속으로 멸시하던 터였다.

김종직은 어린 임금이 세조 때의 훈구대신에게 둘러싸인 상황이 아프게 느껴졌다.


당시 선비는 유학을 공부하는 유생(儒生)에 한정하거나, 벼슬에 오르더라도 문관 4품 이하까지를 선비라 불렀다. 3품 이상의 고관들은 물론, 임금은 선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선비의 개념이 정승을 포함한 고위 관리와 임금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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