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다 (6)

나지도 않는 차(茶)를 공물(貢物)로 올린단 말인가

by 두류산

6장


김종직이 지리산 아래의 작은 고을인 함양에 수령으로 부임하니, 고향을 떠나 거처 없이 떠도는 유민(流民)이 된 백성들이 많이 보였다. 경상도 지역에 지난 몇 해 동안 가뭄과 기근이 겹친 탓이었다.

김종직은 고을의 재정을 담당하는 호방(戶房)으로부터 나라에 바치는 세금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함양군에서 대궐에 바치는 지방 특산물인 공납품(貢納品) 가운데 차(茶)가 들어 있었다.

공납은 왕실이나 중앙 관청에서 필요한 특산물을 공물(貢物)로 지정하여 전국 각 군현이 납부하게 하는 것이었다. 공물은 토지에서 거두어들이는 조세와 함께 나라의 주요 재원으로, 백성들에게는 가장 무거운 부담이었다.


김종직이 물었다.

"함양에서 차는 얼마나 수확되는가?”

호방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본 고을에서 차는 한 홉도 구할 수 없습니다.”

김종직은 놀라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차가 나는 전라도에 가서 차 한 홉에 쌀 한 말의 값으로 비싸게 차를 사들여서, 대궐에 올리고 있습니다.”


김종직은 충격을 받았다. 차를 얻기 위해 엄청난 쌀이 필요하고 이것을 모두 함양의 백성들에게 해마다 부과한다는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김종직은 목소리를 높였다.

"나지도 않는 차를 특산물이라 하여 공물로 올리다니! 조정에 사실을 아뢰어서 왜 바로잡지 않았는가?”

"왜 아니 그랬겠습니까? 예전의 원님들도 관찰사를 통해 이를 고쳐줄 것을 사정하였으나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전들이 일제히 함양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며, 다른 고을의 사정을 말했다.

"어떤 고을은 왕골로 돗자리를 짜서 공납품으로 한양에 올리는데, 그 지역 왕골만으로는 부과된 수량을 맞출 수 없으니 다른 고을에서 왕골을 비싼 값으로 사야 했다고 합니다.”

"이웃 고을은 호랑이 가죽 수십 장을 공물로 바쳐야 하니, 포수를 동원해 온 산을 뒤졌지만 그 많은 호랑이를 찾지 못해, 강원도나 함길도에서 비싸게 사 와야 했습니다. 나라가 한번 정한 법이니 쉽게 고칠 수 없나 봅니다.”

김종직은 아전들의 말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함양에서 나지도 않는 차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렵게 사는 백성들이 안 내도 될 세금까지 내야 하다니......’


김종직은 비싼 차를 사기 위해 많은 곡식을 내놓아야 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니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예 나지도 않는 차가 어떤 연유로 이 고을의 특산품으로 지정된 것일까?’

김종직은 나이가 많고 명망이 있는 고을의 어른들을 만나 함양에서 차를 생산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신라 때 당(唐) 나라에서 차의 종자를 얻어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재배가 끊어졌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김종직은 그 말을 듣고 희망을 보았다.

‘함양이 지리산 아래에 있는데, 어찌 신라시기에 남긴 차나무가 없으리오.’


김종직은 실지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구해 읽고 고을 어른들의 말을 확인했다. 김종직은 기뻐하며, 기대를 가지고 관내 지리산 근처에 사는 거주민들을 찾아 차나무를 탐문하였다.

"이 근처에 차를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니, 틀림없이 어딘가에 차나무가 남아 있을 것이네.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봐주시게.”

백성들도 고을 원님의 성의에 감동하여 차나무를 찾아 열심히 지리산 잡목 더미와 대나무밭을 수색하였다. 김종직은 좋은 소식이 날아들기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아전이 달려와 기쁜 소식을 전달했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지리산 기슭에 있는 사찰인 엄천사의 북쪽 대나무 숲 속에서 두 그루의 차나무를 발견하였다는 것이었다.


김종직은 매우 기뻐하며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김종직이 살펴보니 과연 대나무 숲 가운데 두 그루의 차나무가 몸을 감추고 있었다. 차나무를 발견한 부근은 모두 백성들이 소유한 토지였다. 김종직은 대밭과 주변 밭을 모두 사들여 차를 재배하는 밭으로 만들었다.

수년 뒤에는 차나무가 제법 번식하여 대궐에 바칠 수량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김종직은 푸르게 자란 차밭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붓을 들었다.


'신령한 차 모종 받들어 성군(聖君)께 드리려고

신라시대에 살던 종자 오래 찾지 못하다가

드디어 지리산 아래에서 캐어 얻었기에

우리 백성 부담 한 푼이나마 덜어 기쁘네.'


김종직이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한 적극적인 민생대책은 백성들을 감동시켰다. 이 일은 지방수령들이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일로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렸다.


김종직은 그동안 가슴에 품었던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힘을 다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쳐, 함양을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잘 살아가는 고을로 가꾸고자 했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고을 백성들의 삶을 기쁘게 해 준다면 고향을 떠난 유민들도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김종직이 함양에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성들은 입을 모아 고을 원을 칭송했다.

"어질고 현명한 원님 덕에 사는 형편이 좋아졌다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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