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勢)가 약하니 먼저 선수(先手)를 쳐야 합니다
1468년 예종 즉위년 9월, 밤하늘에 돌연히 혜성이 나타나 한양의 백성들이 모이면 수군거렸다.
"새 임금이 즉위하자마자 하늘에서 징조를 보이니, 무슨 난이라도 있으려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혜성이 처음 나타난 것은 세조가 예종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준 당일인 9월 7일이었다. 다음날,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새 임금이 된 그날 밤하늘에도 다시 혜성이 나타났다. 이후 9월 26일까지 이틀 동안만 혜성이 관측되지 않고 18일간 연속해서 혜성이 나타났다.
9월 27일, 예종은 천지신명과 부처에게 제사를 지내 혜성이 재앙을 가져오지 않도록 빌었다. 당시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이와 강순은 혜성의 출현이 반란과 같은 재앙을 몰고 오는 예사롭지 않은 조짐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실록의 기록에 의해 잘 드러나고 있다. 실록에 의하면, 남이는 국문 장에서 역모 혐의로 문초를 받다가 대신들과 함께 임금의 곁에 있는 우의정 강순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이(강순)는 바로 신과 반역을 모의한 한패입니다. 지난 9월에 대행 왕께서 승하한 뒤에 마침 혜성이 나타나는 성변(星變)이 있었고 강순이 궁궐의 도총부에서 숙직하였는데, 신이 가서 보았더니 강순이 신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이제 어린 임금이 왕위를 이었는데 바야흐로 성변이 이와 같으니 간신이 반드시 때를 타서 난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먼저 화(禍)를 입을 것이니,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응답하기를, ‘우리의 세(勢)가 약하니 먼저 선수(先手)를 쳐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강순이 옳게 여기며 말하기를 '내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네.'라고 하였습니다.”
남이와 강순은 혜성의 출현은 한명회가 주도하는 구 공신들이 이시애의 난으로 조정에서 부상한 신 공신들을 제압하기 위해 난을 일으키려는 징조로 보았다.
남이와 강순이 그렇게 의심할 만한 사건의 발단은 역사 속에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세조가 승하할 즈음에 조정은 구 공신과 신 공신으로 나뉘었다. 구 공신은 한명회를 중심으로 김종서, 황보 인을 제거한 계유정난을 일으켜 세조가 왕으로 등극한 데 공을 세운 신하들이고, 신 공신은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남이와 강순 등 무인들을 중심으로 한 공신들이다. 세조 말년에 신 공신들은 조정에서 약진이 두드러졌다. 영의정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총대장 귀성군 이준이 올랐고, 우의정에 토벌대장 강순, 병조판서에 토벌대장 남이가 차지하였다.
세조는 남이를 사랑하고 아꼈다.
남이의 할머니는 세종대왕의 누이인 정선 공주이니, 남이는 세조의 조카였다.
남이는 1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일찌감치 소년 장수로 이름을 떨쳤다.
한명회와 함께 세조 즉위의 1등 공신인 좌의정 권람이 남이를 점찍어 사위로 삼을 정도였다.
구공신들은 세조가 승하하자, 남이를 비롯한 급부상한 신(新) 공신들과 무장 세력들이 병권을 장악한 것이 불안하였다. 실록에 의하면 새 임금인 예종이 즉위한 다음날, 구 공신들은 임금에게 나아가 병조판서 남이를 배척하였다.
"남이의 사람됨이 병권을 맡기기에는 마땅치 못합니다.”
"군사를 지휘하는 병조의 장관으로 남이는 성질이 경망하여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예종은 구 공신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곧바로 남이를 정 2품 병조판서에서 종 2품 겸사복장(兼司僕將)으로 좌천시켰다. 겸사복장은 왕의 신변보호를 맡은 경호 군사를 통솔하던 오늘날 대통령 경호실장과 같은 무관 벼슬이었다.
남이는 하루아침에 병조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분노와 함께 불안감에 휩싸였다. 구 공신들이 결국 자신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뜻이 있다고 믿었다. 하늘에 혜성이 등장한 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자, 이러한 불안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이러한 남이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남이의 역모에 동조한 무장 민서는 예종이 남이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친국을 하자, 임금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남이가 어제 신의 집을 찾아와서 지난해 역적 이시애와의 싸움을 말하고 또 북방의 형편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이어서 말하기를 요즈음 하늘에서 혜성이 나타났으니, 간신이 반드시 일어날 것인데, 그러면 내가 먼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듣고 놀라 말하기를, 간신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니, 남이는 곧바로 한명회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어찌하여 이를 임금에게 아뢰지 아니하는가 하고 물으니, 남이는 그들이 도모하는 짓을 자세히 살핀 뒤에 아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남이는 ‘지금 한 말은 내가 홀로 너와 더불어 의논했다. 이 같은 말은 세 사람이 모여도 발설할 수 없다.’ 하고서 술을 마시고 집을 떠났습니다.”
남이가 거사를 위해 포섭한 겸사복 문효량의 진술도 당시 남이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신(臣)은 지난 10월 초에 겸사복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남이도 겸사복장으로서 숙직하였습니다. 밤에 신이 남이의 침소에 들어가니, 남이가 《고려사》를 읽다가 신에게 이르기를, 혜성이 지금도 있느냐 하기에 신이 아직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남이가 말하기를, 천변(天變)은 헛되지 아니하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없어지지 아니하는가 하면서, 신에게 이르기를, 이제 천변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난(亂)을 꾀하는 간신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놀라서, 간신이 누구냐고 물으니 남이가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계속해서 물어보니, 남이가 말하기를, 한명회가 어린 임금을 끼고 권세를 전횡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탄식하였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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