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5)

임사홍은 말투와 표정에서 나오는 임금의 마음속 생각을 더듬었다

by 두류산

5장


종 3품 사헌부 집의가 된 임사홍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관리를 규찰하는 사헌부에서 대사헌 다음으로 높은 직위가 아닌가.

“이왕이면 대사간도 거치고, 이어서 대사헌의 자리에 올라 조정에 이름을 떨치고, 장차 판서와 정승이 되어 풍천 임씨가 낳은 최고의 인물이 되리라!”

임사홍은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주상에게 원상제의 폐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너에게 덕이 될 것이다.’


임사홍은 임금이 원상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임사홍은 이번에 새로 임명된 지평 남윤종을 불렀다. 남윤종은 사간원 정언 출신으로 기개 있는 관리로 평판이 높았다.

임사홍은 남윤종을 부추겼다.

"남 지평이 원상제 폐지의 불씨를 다시 붙여보시오. 원상들을 조석으로 승정원에서 근무하게 하는 것은 원로대신을 공경하는 바가 아니오.”

"옳은 생각입니다. 일전에 박시형이 원상제 폐지를 청한 것을 김지경이 나무란 것은 큰 잘못입니다.”


1472년 성종 3년 7월, 남윤종은 어전에 나아가 원상제 폐지를 은근히 지지하면서, 김지경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임금에게 청했다.

“원상제는 원로대신들을 공경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박시형이 폐지하기를 청한 것인데, 김지경이 억지로 피혐하게 하였으니, 청컨대 죄를 주소서.”

성종은 남윤종의 주장을 나무라지도, 수용하지도 않았다. 성종이 판단하기에 원상제 폐지 논의가 아무런 진전도 없이 훈구대신들의 반발만 불러오게 되면 공연히 정국만 어지러울 뿐이었다.


임사홍은 남윤종에게 임금의 반응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임금의 뜻을 짐작했다. 임사홍은 원상제 폐지를 조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폐지의 불씨를 살려야 할 방법을 찾았다.

‘동쪽을 치려고 마음먹으면 서쪽에서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했다.’


임사홍은 대사헌과 사헌부 관리들과 의논하여, 사헌부 전체의 이름으로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전 대사헌 김지경 등은 박시형이 원상제를 폐지할 것을 아뢰었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단독으로 고(告)한 죄를 아뢰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권세를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원상들이 도대체 어떠한 대신들이기에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박시형만 홀로 그 허물을 짊어지게 하려고 하였습니까? 전 집의 김계창은 박시형의 곧고 바른 생각을 돕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말을 꾸짖고, ‘나는 말을 하지 않은지 오래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간의 뜻이 이와 같으니, 전하의 덕에 무슨 도움이 되며 국가의 일에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임금은 승지가 받쳐 들고 온 사헌부의 상소를 펼쳤다.

"대간이 되어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하지는 않고, 대신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며 오직 몸을 편안하게 할 꾀만 부리는 자가 과연 전하의 어진 정치에 부합하는 신하입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그들의 관작을 거둔다면,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이 전하의 지극히 밝음을 우러러볼 것입니다.”

성종은 사헌부 대간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임금은 승지에게 상소를 내려주며 명했다.

"김계창은 직책이 언관(言官)에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옳지 않다. 국문하여 아뢰라.”


임사홍은 연명으로 올린 상소에 대한 임금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주상께서 비록 김지경에게 죄를 묻지는 않았지만, 김계창을 심문하라고 의금부에 지시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원상제 폐지에 대해 ‘곧고 바른 생각’이라고 한 것도 문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사홍은 임금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임사홍은 경연에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대간은 임금의 이목이니, 정치가 잘되고 있는지, 백성의 고충은 무엇인지를 대간이 아니면 어디에서 듣겠습니까? 종친과 대신에 이르기까지 감히 그른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대간의 탄핵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김계창은 물론 김지경 등도 죄를 물어 기강을 엄하게 하소서.”

"박시형이 대사헌과 의논하지 않고 홀로 원상을 폐지할 것을 아뢰었으니, 김지경이 그를 피혐시킨 것은 큰 과실이라 할 수 없다.”

임사홍은 말투와 표정에서 나오는 임금의 마음속 생각을 더듬었다.


임사홍은 경연을 마치고 궁궐을 나와 육조거리에 있는 사헌부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원상제 폐지를 본격적으로 꺼낼 때가 되었다!’

임사홍은 대사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서 허락을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임사홍은 정문 앞에 있는 사자 머리에 뿔을 달고 눈을 부릅뜬 해태(獬豸) 상을 보며 사헌부에 들어서려고 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대사헌은 원상들과 가깝게 지내는 처지이니 원상제 폐지에 대해 반발할 것이다.’


임사홍은 대사헌 권감이 선왕의 도승지였다가 주상이 즉위한 후에도 도승지로서 원상들과 승정원에서 함께 근무한 사실을 떠올렸다.

‘대사헌은 심지어 원상들과 더불어 좌리 일등공신으로 책봉되지 않았는가.’

임사홍은 사헌부에 들어서자마자 대사헌을 만나기 전에 먼저 본부의 젊은 관리들을 소집했다. 임사홍은 경연에서 임금에게 고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자신의 생각을 꺼내었다.

“김지경과 김계창 등을 벌주기를 청하면서, 아예 원상제 폐지를 조정의 공론(公論)으로 만드는 게 어떻겠소?”


사헌부 젊은 관리들은 임사홍의 제안을 환영하며 지지하였다.

“원상제 폐지를 거론도 못하게 하고, 심지어 원상을 탄핵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끝내야 합니다.”

“만약 대신의 권세를 두려워하는 김지경이나 김계창 같은 대간들을 전하께서 죄를 묻지 아니하고 다시 쓰신다면, 나라꼴이 어찌 되겠습니까?”

임사홍은 사헌부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의 의견이 모아졌으니, 이제 대사헌 영감의 허락을 받읍시다.”


임사홍이 사헌부 관리들의 전체 의견을 모아 대사헌에게 보고하니 권감은 망설였다.

‘원상제 폐지를 거론하면 원상들이 또다시 사직 소동을 벌일 것이고, 이것은 주상이나 대왕대비를 곤란하게 할 것이야.’

대사헌은 고개를 저었다.

“본부가 이미 상소를 올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는데, 또다시 상소를 올리는 것은 실익이 없네. 오로지 주상을 번거롭게만 하는 것이오.”


임사홍은 권감의 반응을 예상한 터라, 곧바로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사헌부 전체 이름으로 연명 상소가 어렵다면, 서너 사람이 연명하여 상소를 올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권감은 사헌부 관리들이 실망하는 기색을 알아채고, 임사홍의 제안을 허락하였다.

“임 집의가 주관하여 몇 사람이 함께 상소를 올리도록 하시오. 다만 원상들을 자극하는 일은 없도록 하시오. 상소가 접수되면 승정원에서 승지와 함께 원상들이 먼저 검토할 것이니, 원상제 폐지를 직접 언급하면 그들이 미리 대책을 세울 것이네.”


임사홍은 지평 김이정에게 상소의 초안을 잡게 하였다.

김이정은 상소의 초안이 완성되자 임사홍에게 보여주었다.

"전하께서 김계창을 대간으로 삼은 것은 그의 곧은 간쟁을 들어 시대의 폐단을 바로 잡고자 한 것입니다. 박시형이 대신의 과실을 아뢰어 꾸짖고자 할 때, 김계창은 ‘나는 느긋한 것은 뒤에 하고자 한다.’고 말하였으니, 신들은 김계창이 이보다 더 급히 먼저 간(諫)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김지경은 말하기를, ‘원상들이 알고 스스로 사직을 청하면 반드시 일이 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배맹후도 ‘원상은 반드시 우리들이 함께 의논하여 고(告)하였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가 죽었습니다. 신들은 생각하건대 김지경과 배맹후가 대신들을 두려워하고 화를 당할까 무서워하였으니, 그들이 자신들을 위함에는 마음을 쓰나, 국가의 일에는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임사홍은 김이정이 쓴 글을 칭찬하였다.

“빼고 더할 것이 없는 문장이오.”

임사홍이 먼저 서명하고, 김이정, 남윤종이 차례로 연명하여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성종은 승지가 들고 온 사헌부의 상소를 펼쳐 읽었다.

“만약 전하를 섬기는 사람이 모두 김계창과 같이 간사하고, 김지경과 배맹후와 같이 승진을 도모하고 대신을 두려워하는데도 전하께서 죄를 묻지 아니하고 도리어 총애하여 쓰신다면, 모든 신하들이 이것을 모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하께서 비록 이제 삼왕(二帝三王)이 펼친 성군(聖君)의 정치를 일으키고자 하여도 결코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김계창은 곤장을 때려 먼 변방에 유배를 보내 전하를 저버린 죄를 묻게 하고, 김지경과 배맹후의 관직을 거두어주소서.”

고대 중국의 요(堯)·순(舜)을 2제(二帝)라 하고, 하(夏)의 우왕과 은(殷)의 탕왕, 그리고 주(周)의 문왕을 3왕(三王)이라 하였다. 공자와 유학자들은 이들을 모두 성군으로 존경을 하였다.


임사홍을 중심으로 한 사헌부 관리들의 공격은 비록 원상제를 폐지하지도, 김지경과 김계창 등 전 대간들을 엄벌에 처하지는 못했지만 조정의 관리들에게 통쾌한 청량감을 주었다.

“오랜만에 사헌부가 목소리를 내었네 그려.”

“임사홍이 종친이 되어 권세를 탐하는 자라고 생각했는데, 대단한 강골이야.”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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