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들은 어린 임금을 보필하는 구실로 권세를 누렸다
임사홍은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열리는 조회에 참여하였다. 정 4품 품계석에 서서 임금이 납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쪽의 정 3품 품계석에 서있던 대사헌이 인사를 건넸다.
“임공은 학문도 높은 수준이고 문장도 좋다고 하던데, 금상첨화로 풍채도 번듯하니 장래의 재상 감일세. 사헌부에서도 임공을 눈여겨보고 있네.”
임사홍이 공손히 예를 올리며 말했다.
“저야 사헌부로 불러주시면 영광입니다.”
조회가 끝나고 높은 품계별로 차례차례 신하들이 인정전에서 퇴장할 때 뒤쪽 정 5품 품계석에 서있던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이는 관리가 앞서 나오며 임사홍에게 인사했다.
“과거 급제는 제가 먼저 했는데 품계는 더 높으시니 부럽습니다.”
공조 정랑이라 밝힌 그 관리의 인사에 임사홍은 불쾌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자신을 무슨 술수라도 써서 자리에 오르는 것처럼 비난하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임사홍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먼저 급제했다고 품계가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더구나 과거에 급제했다고 모두 당상관이 되고 판서와 재상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오십이 넘은 그 관리는 자신의 의례적인 인사에 임사홍이 정색하며 차갑게 대하자 무안해져 헛기침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성종은 원상인 최항이 추천한 박시형을 기억하였다가 사헌부 대관(臺官)으로 임명하였다. 박시형은 세조 때 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벼슬길에 올라 동료들과 혼탁한 시국에 대해 논하면서 ‘도(道)가 있는 세상이면 나아가서 벼슬을 해야 하지만, 도가 없는 세상이라 생각되면 숨어서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하였다가, 임금과 조정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다.
박시형은 옥중에서 임금에게 글을 지어 방면을 호소하였다.
세조는 박시형의 글을 읽고 글재주에 감탄하였다. 세조는 박시형의 글을 대신들에게 보여주니, 신숙주도 그 글을 칭찬하며 아뢰었다.
"이 글은 목숨을 구하려 한 것이나 아첨하지 아니하였고, 말이 막히지 않고 거리낌이 없으니, 어찌 이와 같은 인재를 쉽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세조는 즉시 명하여 박시형을 석방하게 하고 곧이어 예조정랑에 임명하였다. 박시형은 이 일로 조정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472년 성종 3년 5월, 화공(畵工) 최경과 안귀생이 선왕의 초상화가 완성되자, 임금에게 보여주었다. 임금과 원상들은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을 보고 경탄하였다.
“살아계시어 뵙는 것 같구나!”
임금은 최경과 안귀생을 치하하며 상으로 정 3품의 당상관 벼슬에 임명하였다.
사헌부 지평 박시형은 이 소식을 듣고 놀랐다.
‘세종 때 화공 안견이 4품직을 얻었을 때도 세종께서 한번 시행으로 장차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질까 걱정하셨다고 들었다. 벼슬과 상을 헤프게 주면 조정의 권위가 낮아진다. 전하께서 화공을 당상관으로 발탁하시니, 누가 놀라지 아니하겠는가?’
박시형은 임금이 화공에게 전례가 없는 당상관을 제수할 때 원상들 중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옛적부터 화공을 당상관으로 삼은 일이 없으니, 후세에 이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사관이 쓰기를, ‘화공을 당상관으로 삼은 것은 지금의 임금으로부터 시작하였다’라고 할 것이다. 도대체 원상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이런 일도 간하여 바로잡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사람들 아닌가.”
박시형은 경연에 나아가 임금에게 이를 바로잡기를 청했다.
임금은 이미 준 벼슬을 되돌릴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시형은 물러서지 않고 거듭 아뢰었다
"《주역》에 이르기를, 잘못을 했어도 후회에 이르기 전에 고치면 크게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명을 거두어주소서.”
임금은 대간의 말을 의젓하게 받아들였다.
"과인이 다시 생각해 보겠다.”
박시형은 16세가 된 임금이 대간의 말을 수용하는 명철함에 탄복하였다.
‘주상전하가 이제 성인이 되셨으니, 원상제가 더 이상 필요하겠는가?’
이즈음 원상들은 어린 임금을 보필하는 구실로 권세를 누려 그들에게 빌붙는 자들이 많았고, 집을 찾는 사람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관직을 얻으려고 권력자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드는 것을 막는 분경(奔競)을 금지한 제도마저 없어졌으니 원상들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분경은 관직을 얻으려고 권력자의 집에 드나듦을 이르는 말이었다. 예종은 즉위 초에 기강을 잡기 위해 선전관들을 종친과 재상의 집에 보내어 감시하고 적발하여 분경을 강력하게 금지하였다. 하지만 예종이 갑자기 승하하고 어린 왕 성종이 즉위하자 원상들은 분경 금지령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였고, 임금은 허락하였다.
대왕대비와 어린 임금으로선 중앙과 지방의 크고 작은 관직에 사람을 배치할 때 적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조와 병조에서 사람을 추천하면 임금은 원상들과 의논하여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조와 병조는 원상들이 판서를 겸임하고 있어, 결국 원상들이 실질적인 인사권자인 셈이었다. 관리들은 더 나은 관직을 얻으려고 원상들의 집을 분주히 찾았다.
사관은 이런 상황에 대해 한탄하며 기록을 남겼다. 한명회가 숨졌을 때 졸기를 쓰면서 ‘조정의 관리들 중에는 한명회가 말을 타고 행차할 때 채찍을 잡는 자까지 있었다'라고 비난하고, ‘한명회는 재물을 탐하여, 토지와 노비, 보화 등의 뇌물이 잇달았고, 크게 집을 짓고 첩을 많이 두어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지낸다는 더러운 명성이 일시(一時)에 떨쳤다’고 평하였다. (성종실록, 재위 18년 11월 14일, 한명회의 졸기)
박시형은 지방수령 중에 탐관오리가 많은 것도 원상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원상들이 자질이 없는 자들을 수령에 천거하거나 임명하여 백성들이 고생하는 것이다. 뇌물을 주고 고을 수령이 된 자들이 어찌 어진 정치로 백성을 편히 다스리겠는가. 재물을 쓴 것을 충당하려고 당연히 백성의 고혈을 짜내기에 급급하지 않겠는가.’
박시형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사헌부 선배인 김계창과 의논했다.
“이제 주상 전하도 학문이 높아져 혼자서도 정사(政事)를 잘 돌보시는데 굳이 원상제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사헌부 집의 김계창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원상들에 대한 비방도 금기인데, 아예 원상제를 문제 삼자는 건가?”
박시형은 김계창의 반응에 당황하였다. 박시형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돌려서 답했다.
"원상들을 조석으로 조정에 나와 일하게 하는 것은 원로대신들을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상제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폐지하는 것이 옳습니다.”
김계창은 박시형이 원상제 폐지가 원상들을 위한 것이라고까지 하니 혼란스러워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박시형이 몸을 반듯이 곧추세우고 대답을 기다리자, 김계창은 주춤하며 말했다.
“나는 이미 주상께 간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이 일은 그대가 하는 대로 맡기겠다.”
박시형은 김계창과 헤어지면서 생각했다.
‘말해야 할 일이지만 원상들 눈 밖에 나기는 싫다? 대간의 직책에 있으면서 구차하게 몸을 사려, 마치 진(秦) 나라 사람이 멀리 떨어져 관심이 없는 월(越)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보는 것같이 하는 것인가.'
성종 3년 6월, 아침 경연에서 중국의 역사를 강론할 때, 박시형은 조심스럽게 임금에게 아뢰었다.
"한나라 진평(陳平)이 좌승상이 되었을 때 황제가 그에게 한 해 동안의 수입과 지출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진평은 ‘그 일은 따로 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답하며, 구체적인 숫자를 모르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후세에 이것을 칭찬하였는데, 재상은 큰일을 살펴야지, 자잘한 일까지 직접 챙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원상들이 부서의 장(長)을 겸직하게 하여 조석으로 출근하게 하고, 작은 일까지 맡기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역사를 강론하는 중에 한(漢) 나라의 재상과 지금의 원상을 연결하여 이야기하니 임금은 귀를 기울였다. 박시형은 이어서 작심한 말을 꺼내었다.
“지난번 최경이 선왕을 그린 공로로써 명하여 당상관으로 올렸을 때, 이는 비록 전하의 효심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관작을 헤프게 제수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원상들 중에 한 사람도 불가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는 대신이 임금을 보필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경연에 참석한 신하들은 조정에서 묵시적으로 금기시하는 원상에 대해 비난을 하자, 긴장하여 박시형과 임금을 번갈아 보았다. 박시형은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초기에는 마땅히 원상과 더불어 정사를 의논해야 했으나, 이제는 전하의 학문이 높으시어 일을 친히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조정에 큰일이 있으면 대신의 집에 가서 묻게 하거나 불러와서 의논하면 되는데, 연로한 대신들을 조석으로 승정원에 앉아서 일하게 하는 것은 원로대신들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인이 대신을 존중하지 아니하여 일을 맡긴 것이 아니다. 허나, 마땅히 다시 생각해보겠다.”
박시형은 용기를 내어 진언한 내용을 임금이 동조하며 들어주어 크게 고무되었다. 경연이 끝나자 곧바로 사헌부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말했다.
“주상께 원상제를 폐지하자는 말을 청했더니 생각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장령 배맹후는 박시형의 이야기에 얼굴빛이 변했다.
“박 지평이 큰일을 저질렀네!”
사헌부는 종 2품 대사헌과 종 3품 집의 1명, 정 4품 장령 2명, 정 5품 지평 2명, 정 6품 감찰 13명으로 구성되었다.
배맹후가 대사헌 김지경에게 박지평이 경연에서 한 일을 보고했다. 대사헌은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박 지평이 한 말은 곧 원상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원상들은 짐짓 사직하겠다고 나설 것이고, 조정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원상들이 어찌 내가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