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2)

유자광은 임사홍의 이름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by 두류산

2장

1471년 성종 2년 2월, 임금은 원상들에게 조정의 젊은 관리 중에 누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지 물었다. 세조 때 대제학을 지냈던 원상 최항이 박시형과 임사홍을 천거했다.

임사홍은 스물한 살의 나이로 과거에 3등으로 급제하였다. 사람들은 임사홍이 스무 살인 약관(弱冠)을 겨우 넘긴 나이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 것을 두고 크게 놀랐다. 심지어 ‘아비가 아들을 위하여 과거장에서 글을 지어 은밀히 주었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였다. 임사홍은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손녀이며 보성군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고, 소년 급제로 우쭐하여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임사홍은 훗날 김종직의 제자들과 운명적인 악연(惡緣)으로 엮이게 된다.


임금은 임사홍이 글씨도 명필이고 학문과 문장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경연청의 정 4품 시강관(侍講官)으로 임명하여 가까이 두었다. 시강관은 경연관으로 국왕에게 경전과 역사서를 강의하고, 정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명예로운 벼슬이었다.


임사홍의 아버지 임원준은 아들이 경연관이 되자 크게 기뻐하였다.

“경연은 학문만 하는 곳이 아니다. 정책을 논할 때는 곧은 말로 아뢰어, 주상에게 기개를 보여드려라. 경연에서 네가 한 말은 곧 조정에 알려지게 된다.”

임원준은 아들이 왕실 최고 어른인 효령대군의 손녀사위이므로, 임금에게 다소 세게 진언해도 용납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임원준은 임사홍에게 평생 기억해야 할 말을 해주었다.

“명심할 것은 간(諫)할 때 임금을 이기려 해서도 안 된다. 때가 아니다 싶으면,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벼슬을 놓을 각오가 아니라면, 군왕을 거슬러서는 안 될 것이다.”


임금이 대왕대비의 부탁으로 중국에 가는 사신에게 명하여 불경(佛經)을 사서 오게 하였다. 이 일은 조정의 젊은 대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임금이 이제 막 정사를 펼치시어 바야흐로 눈을 비비고 어진 정치로 백성을 인도하길 바라는데 이게 무슨 실망스러운 일입니까.”

“불경이 나라에 무슨 이익이 되는지, 백성들에게는 어떤 이익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간직된 불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태워 없애버려야 하는데, 어찌 재물을 허비하여 멀리 중국에서 사 오게 하겠습니까?”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날마다 경연에 납시고 학문에 힘쓰시니, 나라의 신민(臣民)들이 모두 낡은 정치를 고치고 새로운 정치를 하시길 바라고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겠나?”


승지가 대간들이 올린 상소를 받쳐 들고 어전에 나아왔다. 임금은 승지에게 읽어보게 하였다.

“지금 간경도감(刊經都監)에 간수되어 있는 불경도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찌 중국에서 더 구하겠습니까? 전하께서 즉위하신 초기에 불당을 헐어버리니 신민이 기뻐하였습니다. 신들이 일전에 불경을 간행하는 일을 마땅히 그만두어야 한다고 간하니, 장차 간경도감을 없애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다시 불경을 구하라고 명하시니, 불경을 간행하는 역사를 언제쯤 중지하실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이를 정지시키소서.”

간경도감은 불경의 번역 및 간행을 맡아보기 위해 세조가 만든 관청이었다.


섭정을 맡은 대왕대비가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었다.

"세조 때에는 감히 간(諫) 하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경을 읽는 것을 듣겠다고 원하는 자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이와 같이 간하는가?”

승지 유지(柳輊)가 대간들을 거들었다.

"대간들은 주상께서 즉위하신 초기에 마땅히 정도(正道)로써 보필해야 하는데, 성상께서 중국에서 불경을 구하시는 것을 보고 어찌 간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희대비가 승지와 임금을 돌아보고 말했다.

“세조께서 일찍이 불경을 간행하여 완질을 이루려고 하시다가 이루지 못하시고 승하하셨으니, 지금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뿐이다. 또 불경을 사 오게 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인데 어찌 정치에 해가 되겠으며, 그 재물도 또한 백성들의 재물이 아닌데 어찌 나라에 손해가 되겠느냐?”


임금은 상소에 답을 내려주었다.

"이 일은 선왕 때부터 시행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불경을 구한 들 어찌 해(害)가 되겠는가?”

사간원 정언(正言) 남윤종이 어전에 나와서 아뢰었다.

"신들이 듣건대 중국에서 불경을 사 온다고 하므로 상소하여 의논을 말씀드렸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여 신은 매우 민망하게 여깁니다.”

"그대들이 말하는 것은 옳으나, 대왕대비께서 세조를 위하여 불경을 구하시는 것이니, 과인이 어찌 감히 말하겠는가?”


경연이 열리자, 임사홍은 중국에서 불경을 사는 문제를 거론하였다.

“북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중국 조정의 사람들이 모두 주상을 훌륭한 군주라고 일컫고 칭찬하는 말이 중국에 가득하다고 하는데, 지금 불경을 구한다면 ‘즉위하는 초기에 이단의 글을 구하는 일을 어찌 먼저 하는가?’고 할 것이니, 신은 두렵습니다.”

"지금 불경만을 사서 오겠다는 것이 아니고, 또 유교의 경전도 사 오는 것이다. 세조께서 일찍이 불경의 완질을 갖추려고 하시다가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왕대비께서 그 뜻을 따르는 것이라 하시므로,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는 것이다.”


임사홍이 다시 아뢰었다.

"근일에 대간들이 불경을 사 오는 것에 대하여 매우 간절하게 간(諫)하였으나, 전하께서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간언을 따르시고 물리치지 않으시니 모두 경탄해 마지않는데, 오로지 이 한 가지 일만은 윤허를 받지 못하니 여러 신하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성종이 변명하여 말했다.

“대왕대비께서 구하시는 바이므로, 그대들이 계속 간(諫)하더라도 과인은 끝내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러니 다시 말하지 말라.”


임사홍은 임금이 곤혹스러워하자 물러서기로 했다.

“신은 어려서부터 글을 읽어서 항상 효도하고 충성할 것을 마음먹고 있는데, 금일에 이르도록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도움을 드린 것이 없습니다. 다만 경연관의 역할을 다하여 주상 전하가 요임금과 순임금처럼 되게 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임사홍이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내 놓고 아뢰자, 함께 했던 경연관들은 눈을 마주치며 놀라 했다.


임원준은 임사홍이 중국에서 불경을 사 오는 것을 반대하여 임금에게 아뢴 일을 듣고 흡족해하며 아들을 격려하였다.

“네가 결혼으로 종친이 되었다고 사대부들이 꺼렸을 터이나, 이번에 너의 진언(進言)으로 조정의 관리들이 너를 다시 보았을 것이다.”


임원준은 오늘 낮에 겪었던 일을 임사홍에게 이야기하였다.

“오늘 여러 대신들과 함께 원상 김국광의 집에 갔었는데 나라에서 금주령이 내렸음에도 태연히 술을 내왔다. 모범을 보여야 할 재상의 이런 행동은 아니 될 일이다.”

임사홍은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지금 세상은 원상들이 잡고 있고, 어린 임금을 보필하는 원상들에 대해 비방하는 것은 금기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들을 공격해도 되겠습니까?”

“주상의 장인인 상당군 한명회를 제외하면 다른 정승들은 비록 원상이라 할지라도 가히 탄핵할 만하다. 정승을 공격하면 너의 이름은 단번에 조정에서 크게 떨칠 것이다.”


다음날 경연에서 임사홍은 재상도 법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아뢰었다.

"심한 가뭄이 내려 하늘의 뜻을 살펴, 주상께서 금주의 영(令)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재상이 주상의 뜻을 받들지 않고 손님을 접대할 때 술을 마시기를 거리낌이 없이 하니, 이것이 어찌 정승의 도리이겠습니까? 옛날 중국에서는 재이(災異, 재앙이 되는 변고)로 인하여 삼공(三公)을 사직하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의 견책을 받드는 뜻이었습니다. 청컨대 재상일지라도 금지령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벌하여, 하늘의 뜻에 답하소서.”

“그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정승에게 어찌 그만한 일로 죄를 물을 수가 있겠느냐.”


임금은 정승들이 어린 임금을 얕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만한 일로 정승들을 벌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정승을 탄핵하는 임사홍을 곧고 바른 신하로 보았다.

‘임사홍은 원상들을 공격할 정도로 기개가 있다. 조정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이다.'


승정원에서 원상들과 같이 업무를 보던 승지들은 경연에서 임사홍이 임금에게 아뢴 말을 전해 듣고 기겁을 했다. 승지들은 원상들의 눈치를 살피며 사관을 보내어 임사홍이 임금께 아뢴 뜻을 써가지고 오게 하였다.

임사홍이 반발하며 사관에게 말했다.

"성상의 명령이 계시면 마땅히 써 올려야 하지만, 내 어찌 승지의 말을 따르겠는가? 대신들이 심한 가뭄인데도 모두 임금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자책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아뢰었을 뿐이다.”


사관이 돌아와서 승지들에게 임사홍의 말을 전하자 승지들이 분을 내어 말했다.

“재상일지라도 법을 어기면 반드시 벌하여 용서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상앙(商鞅)의 정치와 같은 것이다. 어찌 유자(儒者)가 할 말인가?”

상앙은 중국의 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재상으로 법가를 대표하는 정치가였다. 상앙은 엄벌주의와 연좌제를 바탕으로 진나라를 통치하였고, 사지(四肢)와 목을 다섯 수레에 따로따로 매달고 말을 달리게 하여 찢어서 토막을 내는 형벌인 거열형(車裂刑)의 창시자였다.


임사홍이 사관을 보내고 생각해보니, 승지들이 임금에게 자신을 벌해야 한다고 아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당하고 말 것이다. 승지들이 주상께 아뢰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임사홍은 임금을 가까이 보필하는 환관을 불러내어 당부했다.

“내가 정승도 잘못하면 벌을 주어야 한다고 당연한 말을 했는데, 승지들이 정승들에게 아부하느라 나를 탄핵하려 한다고 들었소. 내가 주상께 대죄(待罪, 죄에 대한 처벌을 기다림)하겠다고, 미리 아뢰어 주시오.”


아니나 다를까. 승지들은 어전에 나아가 임사홍을 탄핵했다.

“임사홍이 지나친 말을 하였으니, 엄하게 다스려야 하옵니다.”

임금이 환관에게 임사홍의 말을 전해 들은 터라, 승지들을 꾸짖었다.

"임사홍이 무슨 잘못된 말을 했다고 핍박하는가?”

승지들은 무안하여 임사홍의 죄를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이번 일로 임사홍은 정승도 두려워하지 않고 임금에게 간(諫)하는 기개 있는 신하이며, 임금도 총애하고 있음이 조정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유자광은 임사홍이 벼슬에 오른 지 얼마 안 되는 신진 관리로서 정승들까지 나무라는 기개를 보이자,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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