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이숙감에게 중국 사신이 무사히 귀국했다는 보고를 듣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에, 함께 입시한 유자광에게 물었다.
“상당군에 대한 대간의 탄핵이 있을 때 그의 집 앞은 위로하러 온 관리들, 말과 수레가 저잣거리와 같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 말도 이숙감에게 들은 것이오?”
“전(前) 함길도 관찰사 김관에게 들었습니다.”
임금은 이숙감을 돌아보고 한명회가 의정부 사인(舍人)에게 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물었다. 이숙감은 작심하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날짜는 잊어버렸습니다만, 신이 한명회의 집에 가니, 한명회가 이르기를, 대왕대비께서 정사를 되돌리시려는 때에 주상께서 자신에게 간청하도록 명하셨는데, 노산군의 일을 말씀드려 지극히 황공스러워 대죄(待罪)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들은 뒤에 유자광을 보고 이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명회의 집에서 사인(舍人)이 있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유자광이 이숙감의 말을 들으니 자신에게 한 말과 차이가 났다. 한명회가 의정부 사인(舍人)에게 이야기를 하며 대간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는 내용을 빼고 말한 것이었다. 유자광은 참지 못하고 이숙감을 꾸짖었다.
"너의 말이 전일에 나에게 한 말과 어찌 다른가? 그 두 사인(舍人)에 대해 네가 분명히 나에게 말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이를 숨기는가? 네가 만약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감히 날조하여 상소를 올렸다는 말인가?”
유자광은 이숙감의 말에 분노하였으나 어전이라 목소리를 높여 나무라지는 못하고 거칠게 숨을 쉬며 노려보기만 했다.
임금은 두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사헌부에 명하여 두 사람을 국문하여 진상을 알아내라고 하였다.
임금의 명을 받은 사헌부는 이숙감과 유자광을 불러 심문하였다. 사헌부가 보기에 이숙감은 한명회가 의정부 사인(舍人)에게 하는 말을 옆에서 들었거나 아니면 뒤에 사인(舍人)들에게 전해 듣고서 유자광의 집에 가서 말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숙감은 한명회에게 직접 들었고, 사인(舍人)은 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유자광과 대질까지 시켰는데도 이숙감은 굳이 숨기고 바른대로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임금은 사헌부의 청을 듣고 이숙감을 의금부에 옮기게 하였다. 이숙감이 의금부로 옮겨가서 국문을 받게 되자 유자광도 의금부에 가서 상소의 근원을 어떻게 해서 얻었는지 진술하게 되었다. 유자광은 명명백백한 사실을 여러 번 대질 심문을 하고, 또 사헌부에서 의금부로 추국 기관을 옮겨가면서 오랫동안 시간을 끄는 것을 보고 불길했다.
의금부 지사(知事) 홍응이 추국관으로 임명되었는데, 한명회가 홍응을 만나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유자광의 경호 병졸인 반인(伴人)이 홍응의 경호 병졸에게서 들은 말이라며, 홍응이 한명회에게 ‘유자광이 죄가 있다면 당연히 상당군의 억울함은 풀어드리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유자광은 홍응이 훈구대신으로 한명회와 가까운 사이지만, 사람들의 평이 나쁘지 않으니 공평무사하게 처리하기를 기대했다.
한명회는 유자광이 이숙감과 함께 사헌부를 통해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드디어 이숙감이 의금부로 넘어가니, 유자광과 대질심문을 성사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임금에게 나아갔다.
"신의 병든 발이 오래도록 낫지 아니하니, 해임하여 주소서. 또한 청컨대 유자광과 대질하여 죄가 없음을 밝히게 해 주소서.”
성종은 한명회가 번번이 사직을 앞세워 임금을 압박하는 것이 괘씸하였다. 편전에 거동하는 것을 보니 한명회의 발이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성종은 고개 숙여 엎드려 답을 기다리고 있는 한명회를 쏘아보며 생각했다.
‘상당군은 걸핏하면 사직을 청하는데,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인가?’
성종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이 근일에 여러 번 사직을 청하였으나 과인은 병이 장차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윤허하지 않았소. 지금 또 간절히 애걸하니, 병을 치료하도록 이를 따르겠소.”
한명회는 사직을 순순히 허락한다고 임금이 의외의 대답을 하니 당황하였다. 한명회는 벼슬아치의 신분을 나타내는 관(冠)을 머리에서 벗으며 임금에게 아뢰었다.
"성상의 은혜가 하해(河海)와 같습니다. 하지만 유자광이 신을 지목하여 조고와 곽광과 양기라 하였는데, 진한(秦漢) 시대 이후로 신하의 죄악이 이와 같은 자는 없었습니다. 또 유자광이 신을 위로하러 찾아오는 자와 수레와 말이 붐비기를 시장거리와 같다고 한 말을 김관에게 들었다고 하였는데, 확인해 보니 그는 병조판서 이극배가 찾아온 것을 가지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신(臣)은 청컨대 국문을 받아 유자광과 대질하여 죄가 없음을 세상에 밝히고 죽겠습니다.”
성종은 노대신이 절절히 호소하는 것을 듣고도 무심히 말하였다.
"과인이 자세히 알고 있는 바인데, 조정에서 누가 이를 알지 못하겠소?”
한명회가 임금이 사직을 했는데도 자신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낙망하였다.
한명회는 관(冠)을 벗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임금에게 청하였다. 임금은 결국 들어주지 않았다. 한명회는 벗은 관(冠)을 들고 짐짓 한쪽 발을 심하게 끌면서 편전에서 물러나왔다.
한명회는 자신은 파직을 당했는데도 유자광은 멀쩡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천한 놈이 분수를 모르고 1품까지 오르더니, 천하의 한명회를 감히......”
유자광의 동정을 살피게 한 노복이 달려와서 보고를 했다.
“무령군이 혼인잔치에 갔다가 크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명회는 눈을 빛내며 급히 서신을 썼다. 의금부 지사 홍응을 추궁하는 내용이었다.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아야 할 유자광이 잔치에 다녀오는 것을 보았소. 주상께서도 국문 결과를 속히 알고 싶어 하는데, 의금부가 유자광에 대한 심문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