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創業) 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 (8)

한명회는 관직을 내려놓으니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by 두류산

8장


유자광은 집에 들이닥친 나졸들에게 이끌려 졸지에 의금부로 소환되었다. 추국관 홍응이 유자광을 맞으며 말했다.

“주상께서 국문 결과를 재촉하시는데 이숙감에게 매를 때려 심문을 하여도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부득이 오시라고 하였소.”

홍응은 나졸에게 유자광에게 술을 내오게 했다.

“무령군께서 주흥을 깨고 의금부에 오셨으니, 먼저 술을 한잔 드리고 시작하자.”

유자광이 사양하지 않고 술을 들이키자 홍응은 물었다.

“상당군이 의정부 사인(舍人)으로 하여금 대간들에게 말을 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소?”


유자광은 하루 종일 술을 과하게 마셔, 혀가 꼬이는 것을 느끼며 진술했다.

“이숙감에게 들었소.”

홍응은 이숙감을 나오게 하여 유자광과 대질시켰다. 이숙감은 한명회 집에서 아예 사인(舍人)을 본 적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홍응은 의정부 사인(舍人) 배맹후를 불러서 물었다.

“상당군의 집에서 이숙감을 보았는가?”

배명후가 얼른 대답했다.

“상당군의 집에 갔을 때 이숙감을 보지 못했습니다.”


홍응은 유자광을 보고 쇳소리를 내며 추궁하였다.

“의정부 사인(舍人)이 이숙감을 보지도 못했다면 이숙감의 말이 맞지 않소? 어떻게 없는 말을 조작하여 정승을 능멸하는 글을 임금에게 올릴 수가 있는 것이오? 이것은 극형에 이르는 죄인 줄 모르고 그리 하였소?”

유자광은 술기운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추국관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자광은 이숙감이 집에 찾아왔을 때 한 말이 귀에 아른 하였다.

‘주상 전하는 절대로 한명회를 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훗날 한명회로부터 화(禍)만 입을 뿐입니다.’

‘한명회는 무사하고, 주상 전하는 오히려 한명회를 벌주자고 한 대감에게 죄를 물을 것입니다.’


유자광은 이숙감을 돌아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이 모두 맞다.”

유자광은 얼마 전에 임금이 결국 한명회의 사직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떠올라, 실실 웃음이 번져 나왔다.

‘결국은 양패 구상(兩敗俱傷)이군.’


홍응은 유자광에게 소리쳤다.

“모두 사실대로 말하시오!”

유자광은 배에서부터 술기운이 얼굴로 후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사인(舍人)은 이숙감을 안 보았는지는 모르나, 이숙감이 사인을 만나 들었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상소에 쓴 것이오.”

홍응은 매서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소. 제대로 말하시오!”


유자광은 술기운에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홍응이 무엇을 가지고 말이 틀리다고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술에 취해 제대로 말하기가 어렵소.”

홍응은 심문을 받는 유자광이 성의 없게 대답하니 못마땅했다. 유자광이 죄를 감추려고 하는 수작이라고 보았다.


홍응은 의금부에서 국문한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상당군이 사인(舍人)으로 하여금 대간들에게 말을 하게 한 이야기를 유자광은 이숙감에게 들었다고 했는데 의정부 사인들을 불러 대질하였더니 그들은 이숙감을 한명회 집에서 보지도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자광이 스스로 자신의 말이 이치에 어긋남을 알고, 술이 취해 제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지 못하였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바르지 못한 일이니, 청컨대 고신(拷訊, 고문을 가하여 심문함)하게 하소서.”

"공신을 고신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하오.”


성종은 경연에서 강론이 끝나자, 경연에 참여한 대신들을 돌아보고 물었다.

"유자광의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이숙감이 형문(刑問)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이제 유자광도 형문하여야 하는 것인가? 사직을 구한 공신에게 고신을 가한다는 것은 진실로 불가하오. 하지만 만약 형문하지 아니한다면 국가의 기강이 서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는 것이 옳겠소?”

원로대신 정인지가 나서서 대답하였다.

"유자광과 이숙감을 모두 파직시켜야 마땅합니다.”

"죄명(罪名)이 아직 정해지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파직을 할 수 있겠소?”


원상 조석문이 아뢰었다.

"이숙감은 성상(聖上)과 관계되는 말을 가지고 유자광에게 함부로 입을 놀렸고, 유자광은 국문 과정에서 술이 취해 진술했다고 하였으니 모두 죄가 됩니다.”

의금부 지사 홍응이 나섰다.

"신(臣)이 추국관으로서 유자광을 국문하였는데, 언사가 명백하여 취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종은 의견을 다 들은 후 유자광과 이숙감의 파직을 명하였다.


유자광은 3대째 권세를 누리고 있는 한명회를 대간이 아니면서도 탄핵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유자광의 두 차례의 상소는 대간들의 공격을 이어지게 하여, 한명회의 권세를 크게 약화시켰고 결국 정승의 자리도 내놓게 하였다. 유자광도 한명회에 대한 공격으로 종 1품인 숭정대부의 품계를 잃었다. 파직이 되었으니, 조회에도 참여할 수 없고 임금에게 나아갈 수도 없었다. 유자광은 이숙감의 말이 떠올랐다.

‘주상이 한명회를 내친다고 하여도, 대감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모두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한명회는 좌의정 관직을 내려놓고, 등청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니 생기를 잃었다. 가슴과 등에 화려한 공작을 수놓은 관복에 코뿔소의 뿔로 장식한 허리띠를 차고 사모(紗帽, 관복을 입을 때 쓰던 모자)를 쓴지도 오래되었다. 관복을 입고 교자(轎子)에 앉아 물러나라고 외쳐대는 구종별배(驅從別陪)를 거느리며 집을 나서는 재미가 없으니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교자(轎子)는 앞뒤로 두 사람씩 네 사람이 낮게 어깨에 메어, 종일품 이상의 높은 벼슬아치가 타던 가마였다. 구종(驅從)은 벼슬아치가 말이나 가마를 타고 갈 때에 모시고 따라다니던 하인을 말하고, 별배(別陪)는 관서에서 관원의 집에 배속시켜 관원이 부리던 사람을 일컬었다.


한명회가 바깥출입도 하지 않고 집에서 잔소리만 늘어나자 부인은 물론 온 집안 식솔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편하게 지냈다. 한명회는 세상을 떠난 공혜왕후의 생일이 다가오니 더욱 마음이 허전했다. 대비전에서 전갈이 왔다. 공혜왕후의 생일을 맞아, 한명회 부부를 궁으로 불러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한다는 것이었다. 민씨 부인은 이 기회에 남편의 복직을 당부하는 청을 정희대비에게 드리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창업수성 글 출처)

http://www.hanj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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