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創業) 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 (6)

대간이 전하의 허락을 얻겠다고 뜰에 서서 시위하고 있습니다

by 두류산

6장


승지 현석규는 사헌부 지평 성건의 상소를 받쳐 들고 어전에 나아갔다. 임금은 상소를 읽고 가슴에 불길이 일었다. 붓을 들어 상소에 쓰여 있는 ‘재상의 직(職)을 파면하라’는 글귀와 ‘소인(小人)’이라는 글자를 거칠게 지웠다.

"과인이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계속해서 지나친 말과 들어줄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누누이 말하니, 심히 불가하다!”


현석규는 임금으로부터 상소를 받아 들며 담담히 아뢰었다.

“고집이 지나친 대간들도 있는 법입니다. 채택을 하고 안 하는 것은 전하께 달려있습니다.”

성종은 현석규의 말을 듣고, 얼굴을 편하게 고쳤다.


성건은 장령 손비장을 찾았다. 손비장은 사헌부 상급자 중에서 자신이 단독으로 상소를 올리는 것을 나무라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성건은 손비장을 설득했다.

“유자광이 실로 과감한 경고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상당군은 권세가 왕성하여 급기야 반역을 도모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경고는 결코 무시하거나, 눈을 감을 일이 아닙니다.”


손비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말했다.

“소식(蘇軾)이 말하기를, 권세를 잡은 신하가 처음 등장할 때는 대간들의 진언으로 꺾고도 남음이 있지만, 세력이 한창이게 되면 병장기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하였소. 내 생각에도 한명회는 장차 사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사람이오.”

소식(蘇軾)은 송나라 시대의 문인 관리로, 호는 동파(東坡)였다. 왕안석의 신법에 비판적이었으며 시(詩)와 문장에 능하여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성건은 손비장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얼굴빛이 환해지며 말했다.

“한명회의 죄를 묻지 말고 재상 자리에서 파면만을 청하자는 계책은 애초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이는 조정의 공론(公論)도 아니고, 천하 만세의 공론도 아닙니다.”

“하긴 파면을 청하였으나 주상께서 심각한 죄가 아닌데 어찌 파면이냐 하면서 윤허하지 않으셨소. 이제라도 바로 잡아 한명회의 죄부터 물어야 하오.”


손비장과 성건은 사헌부에서 더 이상 동조자를 찾기가 어려움을 알고, 사간원의 간원들을 설득하였다. 사간원의 관리들은 난색을 표시했다.

“양사의 장(長)이 합의하여 탄핵을 그만 그치기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를 따르기로 하였소.”

“그렇다면 우리라도 멈추지 않고 다시 아뢰겠소.”


대사헌 윤계겸은 손비장이 성건을 지지하고 동조자를 모은다는 움직임을 듣고 책상을 내리쳤다. 윤계겸은 손비장과 성건을 불러 꾸짖었다.

“이미 사간원과 더불어 의논해서 사헌부 전체가 정했으니, 개별 행동은 삼가시오!”

손비장과 성건은 꾸짖어도 듣지 않고 양사의 합의를 깨고 다시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겠다고 나서니 대사헌은 기가 막혔다.


윤계겸은 사헌부 고위관리들과 함께 임금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어제 성건이 본부의 의견을 듣지 않고 혼자 상소하였고, 오늘 또 본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손비장이 성건과 더불어 다시 상소하고자 하니, 신들이 직(職)에 머무르는 것이 편안치 않습니다.”

사헌부 집의도 대사헌을 거들었다.

"대간인 동료가 신들을 부족하다고 여기니, 어찌 편안히 직(職)에 있겠습니까?”

이때 승지 현석규가 손비장과 성건이 연명하여 올린 상소를 들고 입시하였다. 성종은 상소를 받아 들고 사헌부 관리들에게 말했다.

"과인이 손비장과 성건의 상소를 본 뒤에 결정하겠으니, 경들은 일단 물러가라.”


성종은 사헌부 관리들을 물러가게 하고, 상소를 펼쳐보았다.

"신들이 감히 한명회의 죄를 가지고 누차 주상전하를 번거롭게 하여 기필코 윤허를 받은 뒤에야 그만두려는 까닭은 한명회의 죄가 실로 천지가 용납하지 못할 바이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그 직(職)을 파면하여 먼 지방에 유배시켜 목숨이 다하도록 소환하지 않는다면 신민(臣民)들의 통분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신음을 토해내며 상소를 내리자, 현석규가 아뢰었다.

“두 사람이 반드시 전하의 허락을 얻겠다고 뜰에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되었구나. 그들을 즉시 불러오너라.”


두 사람이 입시하여 예를 갖추자, 성종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들이 본부와 더불어 같이 의논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성건이 나서서 아뢰었다.

"신들이 전하가 허락할 때까지 아뢰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하니, 본부에서 이미 사간원과 더불어 그치기를 합의하였으니, 다시 아뢸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사간원과도 의논하였지만 거절당하였기에, 우리라도 마땅히 다시 아뢰어야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아뢰게 된 것입니다.”


성종은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본부에서 더 이상 청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너희들이 홀로 청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너희가 말하면 과인이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가? 아니면 동료들은 더불어 의논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손비장이 나서서 임금의 질문에 답했다.

"신들은 기필코 윤허를 받으려 한 것도 아니요, 또한 동료들을 부족하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신들은 한명회의 자리가 백관의 위에 있으니, 국가의 기강이 서고 안서는 것은 이번 일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간들이 모두 논의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는데도, 너희 두 사람은 굳이 고집하여 마지않았다. 동료와 더불어 뜻이 다르다면 어찌 같이 일하겠는가?”


두 대간은 결국 사헌부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로 한명회에 대한 탄핵도 그쳤다. 조정의 젊은 관리들은 이 사태를 지켜보다가 대간들이 조금 더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명회가 주상에 대해 큰 실언을 하고도 어떠한 형벌을 받지 않게 되고, 정승의 직책도 유지한 것에 대해 한 숨을 쉬었다.

“이 정도가 대간들의 한계치인가?”

“대간들의 다수가 훈구대신의 자손이거나 인척들입니다. 어찌 직을 걸고 훈구대신들과 가까운 한명회를 끝까지 압박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더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명회 탄핵에 앞장섰던 유자광도 결국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야.”


도승지 유지는 대간들의 탄핵이 멈추자 마음을 정했다.

‘나도 대간들의 공격을 받았으니, 친정체제를 갖춘 주상의 주변에 한 점 거리낌이 없도록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다.’

유지는 서운함을 간직한 채, 간절하게 임금에게 아뢰었다.

“7년 동안 전하를 가까이 모셨으니 이제 떠날 때도 되었습니다.”


성종은 유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하였다. 1년 정도 외직에 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여 중용하리라 생각하였다.


성종은 유지가 떠난 도승지에 현석규를 승진시키고, 이극기를 좌승지로, 임사홍을 우승지로, 한한을 좌부승지로, 손순효를 우부승지로 임명하였다. 또한 예문관 직제학 홍귀달을 동부승지로 발탁하여 승정원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다.


성종은 손비장을 사헌부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대간으로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은 기개를 좋게 보아, 곧바로 예문관 부제학 겸 경연관으로 임명하였다. 1년 후에는 간원(諫院)의 장관인 대사간으로 발탁하였다. 성건도 이번 일로 성균관의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나 성종은 훗날 장령으로 그를 승진시켜 사헌부 대관(臺官)으로 다시 복귀시켜주었다.


1476년 성종 7년 3월 24일, 도승지 현석규가 어전에 나아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중국 사신의 귀국길을 호송한 이숙감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전하를 알현하고 그동안의 사정을 보고드릴 예정입니다,”

성종은 유자광이 한명회가 한 말을 이숙감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이숙감이 알현하러 올 때, 유자광도 들게 하라. 과인이 물어볼 것이 있다.”


이숙감은 유자광이 노산군에 관한 말 등을 자신에게 들었다고 밝혀 그동안 곤욕을 치렀다. 한명회에게 항의와 경고까지 받았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결국 상소를 올린 것과, 더욱이 그것을 자신에게 들었다고 말한 유자광이 원망스러웠다. 편전의 뜰에서 유자광을 보자마자 이숙감이 다가와 불평을 쏟아내었다.

“대감이 상소를 올려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상당군은 예전과 다름없이 좌의정이고, 오히려 상당군을 탄핵한 두 대간만 좌천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까?”


유자광은 할 말이 없어 발로 땅만 툭툭 찼다.

“제가 그렇게 말렸건만.....”

유자광은 씩씩거리며 분을 내는 이숙감을 달래며 함께 임금에게 나아갔다.





(창업수성 글 출처)

http://www.hanj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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