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創業) 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 (4)

한명회의 죄를 지금 다스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by 두류산

4장


성종 7년 3월 5일, 대왕대비가 명나라 사신(使臣)이 왔을 때 노고가 많았던 원상과 대신들을 불러 인정전(仁政殿)에서 음식을 대접하게 하였다. 한명회는 시름이 많은 차에 원상들이 위로하며 건네는 술을 많이 받아 마셨다. 날이 저물자 한명회는 연회장에서 부축을 받고서야 나올 수가 있었다.


대간들은 한명회가 이번 일을 당하면서 힘이 많이 꺾였음을 실감했다. 그동안 많은 대간들이 한명회를 탄핵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자리까지 내놓지 않았는가.

“수십 년 동안 권세를 잡고 여러 번 잘못을 저질러도 죄를 물을 수 없었던 한명회입니다. 이번에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게 되면 사헌부와 사간원은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사헌부 대관은 사간원 간원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였다.

“양사가 힘을 합해 한명회와 유지의 죄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번에는 끝을 본다는 심정으로 어전 뜰에서 임금의 허락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서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사가 의논한 대로 대간들 모두가 함께 상소하여 한명회의 처벌을 청했다.


현석규가 상소문을 들고 와 임금에게 전하면서 대간들이 뜰에 서서 답을 기다리며 시위를 하고 있다고 아뢰었다. 임금이 상소를 내려주며 말했다.

"상소의 답을 받고서야 뜰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종일토록 상소에 답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얼마나 기세 있게 버티나 보자.”

성종은 대간이 기세 좋게 권세 있는 대신을 탄핵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한명회에게 이미 경고를 하여 기를 죽인 것으로 족하고 더 이상 정국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도승지까지 공격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저물녘이 되자 좌승지 현석규가 임금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대간들이 아직도 뜰에 서서 전하의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종은 붓을 들어 글을 써서 현석규에게 내려주었다.

"유자광이 지나친 말을 하였다. 한명회의 말은 죄를 물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과인이 그대로 두는데, 경들은 어찌하여 굳이 계속해서 청하는가? 경들이 들어줄 수 없는 것을 청하므로 과인도 종일 답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저물 때까지 뜰에 섰으니, 다리가 아플 것을 안쓰럽게 여겨서 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 말라.”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은 현석규로부터 임금의 단호한 어서(御書)를 전해 받고도 물러서지 않고 거듭 청하였다. 대간들은 조정 대신들을 원망했다.

“한명회의 명백한 잘못에도 대신들 중에 유자광을 제외한 그 누구도 탄핵하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한명회를 변명해주고 있는 실정이야.”

“훈구대신들 중에 공신 칭호를 얻는 과정에서 한명회의 덕을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한명회와 멀리하려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이러니 주상 전하도 한명회를 쉽게 내칠 수 없는 것이야.”


현석규가 대간들이 아직 뜰에 서있다고 보고하자, 임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미 과인은 마음을 정했다. 비록 수백 번 청을 하더라도 과인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그대로 전하라.”

임금은 현석규에게 명하여 말을 전하고, 다시 이야기하면 듣고도 아뢰지 말도록 하였다. 임금의 말을 전해 듣고 대사헌과 대사간이 다시 아뢰고자 하니, 현석규는 아예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뿌리쳤다.


사헌부 지평 성건이 경연에서 다시 한명회와 도승지를 탄핵하였다. 유지는 감정이 격해져서 나서서 아뢰었다.

"원상인 정창손과 윤자운이 아뢸 때 신(臣)이 배석하였습니다. 두 분 원상이 유자광의 상소 가운데 상당군을 조고와 양기 등을 비유하여 마음이 아프다고 하자, 주상께서 말씀하시기를 ‘과인을 비록 진나라의 이세(二世)와 시황제에 견주더라도 무방하고, 걸(桀)과 주(紂)에 견주더라도 무방하다. 하물며 한명회를 조고에 견주었다고 해서 조정에서 누가 한명회를 조고라고 이르겠는가?’ 하셨습니다. 전하의 말씀에 신도 또한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지만, 한명회에게 아부하여 그리 말한 것은 아닙니다.”


성건이 다시 나서서 말했다.

"한명회는 권세가 큰 대신인데 부도(不道)한 말을 하였으니, 지금 그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물며 친정체제를 시작하는 시기는 군자와 소인을 구별해서 소인을 물리쳐야 할 때입니다.”

임금은 성건의 말에 얼굴빛을 엄하게 하고 물었다.

"네가 군자와 소인을 말하는데, 지금 누가 군자이고 누가 소인이란 말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충성되고 신의 있게 한다고 하였으니, 말이 바르지 못한 자는 소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금이 성건을 채근하며 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의정 정창손과 우의정 윤자운이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으니, 이들이 모두 소인들인가?”

"그렇습니다. 또한 도승지도 유자광의 상소를 보고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으니, 소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종은 노기가 솟구쳤으나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건을 노려보며 말했다.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어렵게 여겼으니, 망언을 삼가 하라.”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군자(君子)였다. 군자는 유학 경전에서 배운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삶에 구현하여, 개인의 욕심보다는 공공의 정의를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군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이 공론(公論)으로 될 수 있는 권위를 가지는 것이고, 소인으로 낙인찍히면 정치권력의 권위를 잃게 되었다. 한 개인의 덕성을 기준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여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학적 입장은 조선시대 내내 크고 작은 논란을 가져왔다. 성종 때 군자와 소인의 분별에 관한 논쟁은 훗날 현석규와 임사홍의 불화를 계기로 격화되게 된다.


훈구대신들은 경연에서 대간이 정승들을 소인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괘씸하게 여겼다. 당사자인 정창손과 윤자운은 함께 임금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신들이 일전에 한명회의 아뢴 바가 문제가 있다면 공신과 대신들이 마땅히 먼저 죄를 청하여야 하지만, 단순한 실언(失言)이라 여기며 죄를 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대간이 이것을 두고 신들을 소인이라고 지목하는데, 이러한 오명을 얻고서도 뻔뻔스레 자리에 있기 어려우니, 청컨대 사임을 허락하여 주소서.”

"과인이 이미 자세히 아는 바이오. 대간의 말은 마음에 두지 마시오.”

"신들이 처해 있는 자리는 백관들의 우두머리입니다. 신들은 본디 아무런 재주와 덕이 없으면서 오래도록 높은 반열을 차지하였는데 소인이라는 이름까지 얻었습니다. 어찌 마땅히 직(職)에 그대로 있겠습니까?”


임금은 정승들이 사직을 앞세워 실언을 한 대간에 대해 강력히 처벌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종은 더 이상 대왕대비의 섭정 하에 있던 어린 임금이 아니었다.

"대간의 말이 맞지 않다는 것을 과인이 알고 있소. 성건이 언관(言官)이기 때문에 꾸짖지 않았을 뿐이니, 경들은 사직하지 마시오.”


승지 임사홍은 대간의 공격으로 임금이 고충을 당하자, 해결방법을 찾기에 고심했다. 한명회가 대왕대비를 찾아가 섭정을 그만둔다는 말을 번복해 달라고 청한 날의 승정원일기를 검토해 보았다. 유자광의 상소 내용과 한명회가 했다는 말에 대한 기록이 다소 차이가 있었다.

임사홍은 임금에게 나아가 이 사실을 아뢰었다.

“신(臣)이 그날의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니 유자광의 상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대간들에게 보여주며 그들을 달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임금은 임사홍의 의견을 따랐다. 한명회 탄핵을 주도했던 사간원의 이세광과 사헌부의 성건을 불러서 대왕대비가 정사(政事)를 되돌리던 때의 승정원일기를 보여주게 하였다. 두 사람이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니 유자광의 글과 간혹 서로 다르기는 하였으나 한명회가 말한 불경스러움은 크 차이가 없었다.

성건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臣)이 승정원일기를 보니, 유자광의 상소와는 모두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명회가 노산군을 언급하며 국사(國事)가 날로 그르쳐졌다는 말을 한 것은 분명하고, 이는 온당치 않습니다.”

"소소하게 말을 잘못한 것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아 반드시 죄를 물으려고 하느냐. 이것은 옳지 않다. 앞으로는 상당군에 대해 다시 말하지 말라.”






(창업수성 글 출처)

http://www.hanj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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