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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Sep 30. 2022

시간여행, 나일 크루즈

 얼마 전 모임에서 그동안 코로나로 막혔던 여행이 풀렸다는 이야기 끝에 크루즈가 화제가 되었다. 지중해 크루즈와 알래스카 크루즈, 디즈니의 카라비안 크루즈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 바다를 항해하는 크루즈였다. 


 크루즈 여행에 관심이 있으나, 바다를 떠다니는 크루즈 여행에 멀미가 걱정이 된다면, 강 크루즈 여행을 권한다. 망망한 바다의 거친 파도가 부담이 되는 분들은 잔잔한 강을 따라 흐르는 강 크루즈가 보다 편안한 여행이 될 것이다. 강 크루즈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이집트 문명을 돌아보는 나일 강 크루즈, 프랑스 남부의 리옹, 아를, 아비뇽을 탐방하는 론강 크루즈, 뉴올리언스를 즐기는 미국의 미시시피강 크루즈, 아마존의 정글과 야생을 체험할 수 있는 아마존강 크루즈, 동남아를 즐길 수 있는 메콩강 크루즈, 삼국지의 배경을 돌아보는 중국 양자강 크루즈......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크루즈 여행을 접한 것도 바다가 아닌 강 크루즈였다. 크리스마스 즈음 살을 파고드는 영국의 습한 겨울 추위를 피해,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따뜻한 나라의 강 크루즈에 나섰다. 지중해 바다와 가까운 하류에서 아프리카 내륙 쪽으로 나일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일정이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나일 살인사건’에 나오는 크루즈와 같은 코스였다.


 나일 강은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 중 하나이며, 갈대 요람에 떠내려 온 모세를 이집트 공주가 건진 곳이기도 하다. 나일 강 크루즈는 고대 유적들과 강변의 자연경관을 둘러보며 이집트의 고대문화를 이해하며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여행 일정이다.
 

 이집트의 문명은 나일 강을 중심으로 펼쳐져 주요 유적도 강 중심으로 볼 수 있다. 룩소, 아스완, 아부심벨 등,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유적지는 거의 모두 나일 강을 따라 위치한다. 나일 강에 떠다니는 호텔로 불리는 크루즈 선을 타면 세계 최고의 볼거리뿐만 아니라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세계로 들어가는 시간여행이 된다. 


 카이로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거대한 유적지가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문명과 신앙관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룩소다. 나일강 크루즈는 이곳에서 시작한다. 크루즈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여유로움이다. 카르낙과 룩소 신전, 3천여 년 전 파라오 투탕카멘의 유적으로도 유명한 왕들의 계곡 등 룩소의 유명한 유적지를 돌아보고 배는 천천히 강 상류를 거슬러 오른다. 나일강 전체 길이 6600 km 중 이집트를 지나는 강을 항해하는 동안 여행자들은 배 안의 시설을 이용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강변의 경치를 감상한다.  


 아침은 뱃전에 철썩이는 나일 강의 물결소리에 눈을 뜨게 된다. 창문 밖으로 푸른 강과 강변 너머의 경치를 보며 하루 일정의 기대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 안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간단한 운동을 마친 후 호텔 식 뷔페인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소풍을 나가듯이 고대 유적지를 보고 돌아와 갑판 위의 수영장에서 열기도 식히고 밀크를 넣은 영국 티를 한잔 하면서 피곤을 풀 수 있다. 


 초등학생 두 아이는 시원한 과일 주스를 마시고 힘을 내어 갑판 위에서 탁구 시합을 벌인다. 형제들이 노는 탁구대 너머에 나일의 푸른 강이 넘실거리고, 강변의 야자수 너머 사막이 태양을 받아 이글거린다.


 나일강 크루즈의 백미를 꼽으라면, 해질 무렵 갑판에서의 티타임이다. 일몰이 시작될 즈음 차 한 잔을 들면서 강 서편을 바라보노라면 강변을 따라 늘어선 야자수의 실루엣과 황토 빛 사막 너머로 조금씩 스러져가는 붉은 태양의 모습은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해가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면, 점차 어두워진다. 승무원이 건네는 칵테일을 마시면서 나일 강변 너머 사막으로 떨어지는 해가 남긴 노을을 즐긴다. 그리고 쏟아질 것 같은 별이 가득 찬 밤하늘 아래에서의 로맨틱한 밤은 이집트에서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한다. 


 밤 시간 또한 다양한 일정이 여행을 즐겁게 한다. ‘빛의 향연’이라 하여 카르낙 신전 등 고대 신전에서 거대한 조형물을 비추면서 수천 년 전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대한 빛의 쇼를 보기 위해 밤 나들이에 나선다. 또한 배 안에서는 아랍인들의 전통 춤인 벨리댄스를 관람하거나 함께 생활해 친해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춤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갈라비아’는 탑승객 모두가 이집트의 전통복장으로 갈아입고 즐기는 파티로 탑승 직후부터 이집트 옷을 입고 참석하라고 예고하였다. 우리는 ‘갈라비아’를 위해 이집트 전통복장을 사려고 신전 앞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그런데 큰 아이가 갑자기 없어졌다. 한 참 찾아서 한 가게 문을 들어서니 아들이 벌써 이집트 전통복장을 입고 얌전히 서 있었다. 우리 부부는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한참을 웃었다. 천연덕스럽게 이집트 소년이 된 아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으로 담았다. 그 뒤로는 상인들이 원하는 대로였다. 상인이 부르는 대로 깎지도 못하고 입은 옷을 사 가지고 가게에서 나왔다. 지금도 웃음을 짓게 하는 이집트 상인들의 대단한 상술이었다. 덕택에 우리도 평생 즐거운 추억을 샀으니 서로 남는 거래였다. 


 밤의 축제를 즐기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에 빠져있을 동안 배는 밤사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다. 아침 식사 후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강변을 따라 늘어선 마차를 타고 10여 분 정도 달리어 멈춰 서는 곳은 신들의 아들로 매의 얼굴을 하고 있는 호러스의 신전……


 이런 식으로 아스완 댐으로 가로막힌 나일 상류에 도착하기 전까지 말이 끄는 마차로, 혹은 버스로, 혹은 낙타로, 혹은 모터보트로, 혹은 요트로, 혹은 흰 돛을 단 돛단배로 다양한 유적지를 보기 위해 그에 맞는 각종 탈거리를 즐기는 것도 매일매일 여유로운 소풍 같은 여행의 맛이었다.


 이집트의 전통 돛단배인 하얀 ‘펠루카’로 갈아타고 나일강을 유람하며, 아가사 크리스티가 소설 ‘나일 살인사건”을 쓰기 위해 묵었다는 호텔이나 신전이 있는 조그만 섬들을 돌아보거나, 조각배를 타고 장사하는 어린아이들을 만나 보는 것은 색다른 체험이었다. 


 아스완에서도 고대 이집트의 신비를 만날 수 있는 유적지가 많았다.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해 물속에 잠길 뻔한 ‘이시스 신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필레 섬이나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있는 채석장 등이 대표적이다. 채석장에서 오벨리스크를 만들다가 금이 가서 버려둔 오벨리스크를 보았다. 요즘의 금석 절단기를 사용한 듯 너무나 흠없이 반듯하게 잘린 바위를 보면서 수천 년 전의 기술에 전율을 느꼈다.


 무구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인데 백 년도 안 되는 인생의 스트레스가 남을 여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장대한 역사 속에 한 줌도 안 되는 우리 인생의 번잡한 생각은 모두 숨을 죽였다. 위대한 문명이 탄생하던 그때의 시간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문명의 자궁 속에서 아늑한 여행을 즐겼다.


 우리 가족은 영국 여행사를 통해 나일 강 크루즈를 예약했었다.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날아갔는데, 서울에서는 대한항공 카이로 직항이 있다. 카이로에서 룩소까지 가는 연결 국내선을 갈아타고 선착장으로 가면 된다. 2박 3일이나 3박 4일 일정도 있으나 제대로 즐기려면 아부심벨 관광을 포함한 일주일 일정의 크루즈를 추천한다.  


 우리 가족도 아스완 댐에서 사하라 사막 너머에 있는 람세스 2세가 세운 거대한 신전인 아부심벨 코스를 포함한 일주일간의 일정이었다. 아부심벨을 가기 위해 새벽에 사하라 사막을 차로 달리다가 맞이하는 사막의 일출도 장관이었다. 그리고 아! 아부심벨.....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아들의 군대, 자녀의 결혼, 여행과 영화 이야기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위 글과 비슷한 감성 에세이는 브런치 북 ( https://brunch.co.kr/brunchbook/yubok2 ), 브런치 매거진  ( https://brunch.co.kr/magazine/hwan )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beyondx.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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