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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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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Feb 27. 2023

스승님과 보낸 귀한 시간

 대학시절 은사님을 십수 년 만에 뵙고 저녁식사를 하였다. 선생님은 올해 91세가 되셨다. 결혼할 때 주례로 모셨으니 아내도 은사님을 잘 안다. 은사님을 뵙는다고 하니 연세가 많이 드셨어도 여전히 멋쟁이실 거라며 선생님이 어떻게 변했을까 아내도 궁금해했다. 과연 아내 말대로 머리도 잘 손질하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나오셨다. 건강하고 곱게 나이 드신 모습에 뭉클했다. 


 건배사를 하면서 선생님과의 좋은 추억을 말씀드렸다.

 “국제기구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선생님에게 배운 후, 제가 워싱턴, 런던, 동경의 국제기구에 근무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선생님이 결혼 주례를 해주셨는데 너무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해 주셔서 신부가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결혼식 날 신부가 웃었으니 딸 낳을 거라는 말을 들었으나 아들 둘 낳았습니다. 선생님이 신부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신랑을 머슴이나 종처럼 대하면 종의 아내인 노비가 되는 것이고, 왕처럼 대우하면 왕후처럼 살게 될 것이다’. 아내가 선생님 말씀을 명심하여 제가 평생 왕처럼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은사님은 학교 계단에서 내려오는 나의 학생시절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고 말씀해 주시며, 나의 건배사에 소년처럼 즐거워하셨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접하니, 젊은 시절 강의실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때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남 앞에는 겸허하되 스스로는 강직하라. 일은 남 보다 앞서고 자리는 한 자리 물러앉으라. 남에게 은혜를 베풀었거든 바로 잊어버리고 남에게 은혜를 받았거든 끝까지 잊지 말라


-늙은 어버이는 공경하여 받들되 보살피고 거두기를 어린애 같이 하며, 형제와 부부간에는 서로 웃으며 사랑하되, 경우와 잘잘못을 따지지 말라. 어린아이는 사랑하되 엄하게 기르고, 귀여워하되 검박하게 기르라. 


-세상에는 어리석고 비뚤어진 이가 있는가 하면 어질고 올바른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느 한쪽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양쪽 모두로부터 칭찬을 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속임수이다.


-무슨 자리에 올라 한평생을 편안히 살 것인가 마음 졸이지 말라. 도리어 무슨 일을 하면서 한평생을 뜻있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세상이 다 기뻐서 날뛸 때 뒷일을 염려하고, 세상이 다 절망을 느낄 때 희망을 잃지 않고 길을 밝혀라.


 선생님과 약 세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참으로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생님 가시는 길에, 아내와 상의하여 준비한 우리 동네 명물 행복 찹쌀떡 선물 세트를 사모님과 함께 드시라고 드렸다. 


 선생님은 금년 여름에 사모님과 함께 강원도 횡계에서 한 달 살이를 계획하고 계셨다. 지난해에는 통영에서 한 달 살이를 하셨다고 한다. 스승님이 사모님과 함께 백년해로 하시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손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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