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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Apr 17. 2023

이선균 배우의 죽여주는 연기 변신, 영화 <킬링로맨스>

 ‘킬링로맨스’! 약간 괴상하거나 속되다는 표현에 자주 등장하는 ‘키치(Kitsch)’한 영화 타이틀이다.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극장에 나서기 전에 살짝 평점을 확인해 보니 혹평이 너무 많았다. 이건 지나친데......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영화로 바꾸어야 하나?


 감독과 출연 배우들을 믿고 계획대로 보기로 했다. 감독은 재기 발랄하고 이선균 배우와 이하늬 배우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이미 천만 관객을 동원한 배우가 아닌가. 듣기로는 코로나 기간 제작되어 극장에 걸리기를 대기하고 있는 영화가 무려 90편이나 된다고 한다. 3년 전에 촬영을 끝낸 <킬링로맨스>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극장에 걸린 작품이니 그 자체로 검증이 된 영화일 터이다.   


 일요일. 오전에 교회에 다녀오고, 아내가 차려주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집 주변 산책을 즐기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5시 상영하는 영화 보고, 그리고 영화관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 이상적인 스케줄이다. 영화가 시작하자, 영화관에 앉은 행복한 시간에 감사하며, 마음을 열고 몸을 맡겼다. 마침 첫 장면에 외국인 할머니가 등장하여 ‘옛날 옛적에 한국에서 전해지는 동화’라며 책을 읽어준다. 내 마음을 그대로 건드렸다. 바로 이거다! 나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과는 색다른 동화 같은 영화를 보러 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허리가 무척 긴’ 리무진이라든지 던져진 음료수 캔의 빨대가 헬기의 프로펠러처럼 날아오르는 신박한 화면이 눈을 즐겁게 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재벌 '조나단 나 (죤나)'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 톱스타 '여래'가 팬클럽 출신 사수생 '범우'를 만나 ‘킬링로맨스’ 작전을 전개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을 나오며 아내는 말했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분위기가 났어.”

 “맞아, 액자식 구성, 강렬한 미장센......”

 “레시피 좋고 재료는 좋은데 손맛이 더 필요했을까?”

 “세련된 맛보다 거친 맛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

 아내는 영화가 뭔가 아쉬웠던 기색이다.

 “조나단의 캐릭터가 너무 가학적이야. 여래가 벽에 붙어 귤을 맞는 장면은 끔찍하기까지 했어.”

 “나도 그 장면에 놀랐어. 조나단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배신한 자를 농장에서 쫓아가는 장면은 그런대로 즐길만하였는데, 귤로 여래를 폭행하는 장면이나 알 박기 한 사람의 몸을 거꾸로 묶고 손가락을 끊어 계약서에 손가락도장을 찍는 장면은 과했어.”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래가 조나단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죽이려 할 정도로 미운 캐릭터를 만들려다 조나단에 대한 관객의 동조와 애정을 뺏은 격이야.”

 정말 그랬다. 갑자기 밝은 액자 그림에 회색 덧칠을 한 그림을 본 기분이었다. 아쉬운 장면들이었다.


 아쉬움을 보충하고도 남을 장면들이 많았다. 조나단으로 파격 변신을 한 이선균 배우의 연기는 감탄이 나왔다.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등 진지하거나 이성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던 배우가 아닌가. 망가진 캐릭터에 도전하여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이선균 배우의 깊은 연기 스펙트럼을 엿보았다. 개연성을 생각하기보다는 동화 속 주인공 같은 과장된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 역은 캐릭터 구축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조나단 역할을 이처럼 할 수 있을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이하늬 배우와 공명 배우도 캐릭터에 녹인 연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원석 감독의 독창적이고 대담한 시도. 이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져 한국영화가 다양성의 지평이 넓어져야 한다. 관객들의 호응으로 이런 류의 영화가 상업적 성공도 이루었으면 좋겠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말이다. 잇츠 굳! (It's good. 좋았어!) 조나단의 외침처럼 영화는 It's not bad (괜찮았어!)였다. 매일 한식만 먹다가 남태평양 섬나라에 가서 그곳의 색다른 음식을 맛본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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