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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류산 Oct 06. 2023

은혜를 갚은 환관

 13세의 나이로 즉위한 성종은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세종대왕과 같이 신민(臣民)으로부터 존경받고, 역사에 남는 뛰어난 군주가 되고 싶었다. 어린 임금은 하루 세 번의 경연에 참석하면서 학문 닦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성종은 경연에서 배운 경계하는 말을 골라 병풍에 기록하여 침실에 두고 보며 마음에 담았다. 성종은 자신이 어진 정치를 베풀어 온 나라가 왕도정치가 구현되는 태평성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병풍의 글귀를 마음에 되새겼다. 

 즉위한 지 3개월이 되던 1470년 2월, 성종은 아침 경연에 나아갔다. 경연관이 유교 경전 사서(四書)의 하나인 <논어(論語)>를 강의하였다. 사서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일컬었다. <시경>, <서경>, <주역>의 삼경(三經)을 더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 하였다. 성종은 경연관이 강론하는 공자의 말씀을 귀담아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신하들이 소리 나는 곳을 보니, 환관이 자신이 낸 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순간 경연장은 묘한 정적이 흘렀다. 영사(領事) 한명회가 나섰다.  

 "주상을 모시는 내관이 경연장에서 졸고, 게다가 코까지 소리 나게 골았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엄벌에 처하소서.” (성종실록, 재위 1년 2월 28일)

 임금은 한명회의 서슬이 퍼런 청에 내관 이원례를 의금부에 내렸다. 의금부 옥에 갇힌 내관은 절망하였다. 어린 임금이 장인이며 정승인 한명회를 거역하면서까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경연이 끝나고 편전에 돌아온 임금은 대왕대비에게 말했다.

 “이 내관이 가엾습니다.”

 “해서는 안 될 죄를 지었습니다.”

 성종은 아침 경연에 자신도 슬쩍 졸렸던 것이 생각났다. 

 “할마마마, 이 내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 내관을 옥에서 풀어주고 싶으신 겝니까?”

 임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희대비는 어린 임금의 손을 잡고 다독이며 말했다.

 “주상께서 지시하면 바로 그렇게 될 겁니다.”


 옥에서 풀려난 이 내관은 임금의 조치에 감격하였다. 어전에 나아와 엎드려 용서를 빌며 감사를 올리는 내관에게 성종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본시 글을 읽는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너에게 무슨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내관 이원례는 이후에도 성종을 가까이 모시며 마음을 다하였다. 성종 14년 겨울, 궁궐에 큰 불이 났을 때 이원례는 힘을 다해 불을 끄며 임금을 구했다. 성종은 궁궐 화재 진화에 공을 세운 이 내관을 치하하고, 말 한 필을 상으로 내려주었다. (성종실록, 재위 14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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