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직은 대제학이 되어 학문을 이끌고, 재상이 되어 조정을 이끌 인재입니다
세조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려움에 부딪히면 종종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책문(策問)을 주고 즉석에서 답을 받아보기를 즐겨했다.
‘수령의 임기를 3년으로 하는 게 좋은가, 혹은 6년으로 하는 게 좋은가,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하는 인사정책부터 ‘말과 소는 어떻게 해야 번식을 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실용적인 문제를 내려주고 좋은 답을 짓는 신하에게 술을 내려서 치하하거나 벼슬의 품계를 올려주기도 하였다.
세조는 좋은 인재를 구하여 쓰기가 어렵다고 탄식하며, 모든 조정의 신하와 성균관 유생에게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대한 책문을 만들었다.
"인재는 국가의 지극한 보배이니, 그들을 쓰는 데 살피지 아니할 수가 없다. 총명하고 재주가 있으나 탐오한 자이거나, 학문을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으나 자기 재능만을 믿는 자이거나, 부지런하나 맡은 일에 바빠서 큰일을 놓치는 자이거나, 임금에게 충성하지만 아랫사람을 헤아리지 아니하는 자 등, 이와 같은 종류는 비록 낮이 다하고 밤이 다하더라도 다 기술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재를 기르고,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를 분별하는 데 무슨 방도가 있는지, 마음을 다하여 답하여 보라.”
세조는 정인지와 신숙주를 내전으로 불러, 책문을 내려주며 명했다.
"앞으로 5일 안으로 모두 답을 지어서 바치게 하시오.”
조정의 신하들은 이번 책문에 대한 답이 채택되면 한 계급 올라갈 것이 예상되므로 답안을 작성하는 열기로 조정은 물론 한성부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다.
김종직은 조정의 인사 관행에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자신도 나서서 책문에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주상이 인재를 기르고,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를 분별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기겠는가? 지금의 인사제도가 그것이 가능하도록 제대로 뒷받침을 못하기 때문이다.’
김종직은 지필묵을 찾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훈구대신들은 제도의 변화를 싫어하고 관행으로 내려온 인사제도만 선호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능력에 관계없이 자신들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인사를 하니, 벼슬아치들이 훈구대신들의 집이나 기웃거리고 있는 실태가 아닌가.”
김종직은 벼루에 먹을 갈며, 조정이 새로워지려면 어질고 현명한 인재들의 과감한 등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알맞은 인재를 찾아 알맞은 자리에 제대로 발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간만 지나면 승진하는 현재의 인사 관행에 대해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이조와 병조에서 사람을 쓰는 데에 순자(循資)의 법에 구애되어, 비록 어진 인재가 있어 마땅히 단계를 뛰어넘어 올려야 할 사람이라도 차수를 뛰어넘어 승진시키지 못하니, 국가에서 사람을 쓰는 뜻이 아니다.’
순자의 법(法)은 관리들을 승진시킬 때 능력을 본위로 승진시키기보다는 근무한 햇수에 따라 자품(資品)이 오르면 이에 상응하는 관직을 제수하는 방식이었다.
김종직은 하얀 종이를 펼치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이조와 병조의 인사권을 차지하고 있는 훈구대신들이 행하는 청탁에 의한 인사도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것이야!”
김종직은 붓을 들어 책문에 대한 답의 첫머리를 썼다.
"군왕이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는 데에는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찾아 등용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고,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뽑는 데는 소인들에 가려지고 막혀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없습니다.”
김종직은 임금이 훈구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새로운 인재의 발탁과 등용이 차단당하고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찾아 등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은근히 지적하였다. 또한 훈구대신들이 자신의 사람을 무분별하게 벼슬에 천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사를 함에 있어 잘못 천거한 자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들은 천거는 하지만 잘못 천거한 데 대한 책임이나 처벌은 없습니다. 천거한 사람이 만일 적당한 사람이 아니면 국가에 이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부적격자를 천거하였거나, 천거한 사람이 장리(贓吏, 부패한 관리)가 되어 처벌을 받은 경우처럼 명확하게 잘못 천거한 데 대한 처벌을 가한다면 사사로움을 따라 사람을 천거하는 죄가 줄어들 것입니다."
1464년 세조 10년 7월 20일.
임금은 정인지와 신숙주 등 대신들과 함께 조정의 신하들과 성균관 유생들이 제출한 책문에 대한 대책을 평가하였다.
심사 끝에 공조판서 김수온이 장원을 하고 김종직의 답이 2등으로 선정되었다. 3등은 판관 유지(柳輊)가 뽑혔다. 세조는 이조에 명하였다.
"대책으로 뽑힌 사람은 모두 품계를 올려주어라.”
한명회가 장원으로 뽑힌 공조판서 김수온에게 축하를 보냈다.
"김 판서는 과연 조선 최고의 문장가답습니다.”
신숙주도 한명회의 칭찬을 거들었다.
"이건 글만 잘 짓는다고 장원이 될 수 없지요. 흉중에 국가를 위한 계책이 가득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한명회가 신숙주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고령군(高靈君)의 말씀이 백번 지당합니다. 김 판서는 장차 뛰어난 재상이 될 것입니다.”
고령군은 신숙주의 공신 칭호이다. 김수온은 손사래를 쳤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듣기로는 김종직의 대책이 장원이었다고 합니다. 현 실태의 비판이 다소 지나치다 하여 2등으로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김종직을 눈여겨보십시오. 제가 그를 소년 시절부터 보아왔는데 학문도, 글도,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는 계책도 뛰어납니다. 앞으로 대제학이 되어 학문을 이끌고, 재상이 되어 조정을 이끌 인재입니다.”
한명회는 김수온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경연 때 김종직이 《중용》과 《서경》을 강론하는데, 학문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숙주도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뛰어난 영걸들이 호수에 물이 차듯 조정에 모이는 것 같아 감격스럽습니다.”
한명회는 동문수학하여 막역한 사이인 서거정을 돌아보며 농을 던졌다.
"차기 대제학감이라고 불리는 자네는 이번에 어떻게 된 건가?”
서거정은 외할아버지가 대제학과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권근이고, 자형은 당시의 대제학인 최항이었다. 서거정은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얼굴만 붉혔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