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잘못하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가 아닌가
김종직은 자주 임금 앞에서 강독을 하였으나 긴장하거나 마음을 졸인 적이 없었다. 임금에게 잘 보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기에, 모두가 무서워하는 임금 앞이라고 해도 편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일 임금을 알현할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불안한 마음이었다.
박숭질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감찰은 임금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언관이 아니야.”
사실 감찰은 임금이 틀렸다고 면전에서 아뢰기는 지나치게 하급 관리였다. 더구나 자신은 박숭질의 말대로 잡학 배정으로 피해를 받은 당사자도 아니기에 더욱 말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김종직이 눈을 감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잡학에 배정된 자들마저 나서지 않는 마당에,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야 하는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아예 아뢰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건가. 그렇게 해서 벼슬자리를 지키고 녹봉만 받으면 되는 것인가.’
‘신하는 생각한 것을 아뢰고, 임금은 옳다고 생각하면 채택하고, 그렇지 않다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임금에게 늘 칭찬만 들어왔던 김종직은 임금의 지시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하면 주상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동료들의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임금이 궁중에 승려를 불러들이고, 불사(佛事)를 해도 훈구대신들조차 입도 벙긋하지 못하니 모든 신하들이 임금의 말이라면 절절매는 것이 아닌가. 임금이 잘못하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이거늘......’
1464년 세조 10년 8월 6일.
김종직은 같이 임금에게 보고하기로 되어있는 종부시의 정 3품 관리인 남윤을 만나 함께 어전으로 향했다.
남윤은 김종직의 학문과 문장에 대해 들었다.
"나도 한때 사헌부 집의였다네.”
김종직이 사헌부 선배라는 남윤의 말에 친근감이 들어 고개를 깊숙이 숙여 다시 예를 차렸다.
남윤은 김종직에게 말했다.
"사헌부 감찰은 자네의 학문과 문장을 다 담을 수 없는 자리이니, 그것이 아쉽네.”
남윤은 김종직이 많이 긴장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보고 내용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김종직은 사헌부 선배였던 남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문신들을 잡학에 배정하여 연구하라는 주상의 지시를 사헌부가 연명하여 간하기를 거부해서 단독으로 아뢰고자 합니다.”
"언관도 아닌 처지에, 홀로 임금의 뜻을 거스르겠다는 것인가?”
남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묻자, 김종직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윤은 양손을 허공에 저으며 말렸다.
"절대로 안 될 일이네.”
남윤은 김종직을 가로막고 말했다.
"자네처럼 성상(聖上)께서 명한 것을 반대하다가, 바로 머리채를 잡혀 대전에서 끌려 나간 사람을 알고 있네.”
남윤은 주위를 한 번 돌아다보고 목소리를 낮추어 김종직에게 설명했다.
"김 감찰은 주상전하의 무서운 성정(性情)을 겪지 못해 아무것도 모르네. 수년 전에 세자 저하의 스승이며 예조참판이 성상의 지시를 반대하는 의견을 아뢰었다네. 주상 전하는 불경을 저질렀다고, 그를 그 자리에서 사모(紗帽)를 벗기고 머리채를 잡아끌고 나가게 하여 의금부 옥에 가두었네. 주상은 끌려 나가는 그에게 ‘날이 밝으면 목을 베어 경계로 삼겠다’고 소리치셨네.”
남윤은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한 사람은 하위지인데 이후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주도하다가 사지(四肢)와 목을 다섯 수레에 따로따로 매달고 말을 달리게 하여 죽게 하는 형벌인 거열형을 당했기에 남윤은 김종직에게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세조는 김종직과 남윤이 어전에 나아와 절을 올리자, 부드럽게 대했다.
"이리 가까이들 오라.”
두 사람은 무릎걸음으로 임금에게 다가갔다. 먼저 남윤이 종친들의 허물과 잘못을 살핀 내용에 대해 임금께 보고를 드렸다. 김종직의 차례가 되어 충청지역의 행정을 감찰하고 관리를 규찰한 내용을 보고하고, 몇 가지 임금의 질문에 답해드렸다.
세조가 그만 물러가라고 말하자, 남윤이 김종직을 재촉하여 일어서려는데, 김종직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아뢰었다.
"지금 문신으로 천문·풍수·음양·율려·의약·시사(詩史)의 7학(學)을 나누어 닦게 하셨습니다. 시사(詩史)는 본래 학문하는 선비의 일이지만, 나머지 잡학이야 어찌 선비들이 마땅히 힘써 배울 학문이겠습니까? 이는 옳은 일이 아닌 줄 아옵니다. 헤아려 주시옵소서.”
세조는 여러 차례 품계를 올려주며 총애한 김종직이 잡학은 선비가 할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니 유학자로서 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륜이 미천한 신하가 자신의 지시를 두고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순간 양미간을 찡그렸다.
임금이 작은 체구의 김종직을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는 어떤 학(學)을 맡았는가?”
"사학(史學)입니다.”
김종직은 비록 자신은 사학에 배정되어 불만이 없지만 나머지 잡학은 유자(儒者)의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바로 잡을 것을 청했다.
"잡학은 각각 업(業)으로 하는 자가 있으니, 이를 권장하고 징계하는 법을 엄하게 세우고, 그들에게 경전을 읽게 하여 교양을 더한다면 자연히 모두 각 분야에 정통하게 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남윤은 조마조마하여 김종직에게 눈짓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고 말렸다.
세조는 자신의 명이 잘못되었다고 꼿꼿이 말하는 젊은 신하가 못마땅하고 같잖았다. 임금은 화를 누르며 낮은 어조로 말했다.
"군자불기(君子不器)가 아닌가? 군자는 세상의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글 읽은 선비가 어찌 그토록 속 좁은 생각만 하는가!”
세조는 학문이 높은 문과 급제자들이 기술직 전문가와 협업하면 각 분야에서 큰 성취를 기대할 수 있고 이것은 백성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데 꽉 막힌 생각만 하니 답답하였다.
김종직은 차갑게 나무라는 임금의 말에 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저 사람을 쓰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서, 대소(大小)와 장단(長短)을 가려서 써야 마땅합니다. 유자(儒者)들은 유학만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한데, 잡학까지 배우게 함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옵니다.”
세조는 젊은 문신의 고집스러운 주장에 눈에 불꽃이 일었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선비가 학문 간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유학만 높게 보고 임금의 생각을 거스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세조는 화가 솟구쳤다. 달구어진 솥에 물을 부으면 김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듯한 노한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문신이 잡학을 공부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했느냐? 세종 때에는 과거에 급제한 문신들이 잡학을 연구하여 각 학문분야의 발전이 높았다. 천문학만 하더라도, 이순지와 김담이 세종대왕의 명으로 천문에 정통하였는데, 지금은 그만한 사람이 없어 밤하늘에 별의 위치에 변화가 생겨도 관상감에서는 알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잡학을 하는 자들이 변변하지 못하여 경지에 이르는 자가 드물기 때문에 너희 문신들로 하여금 이러한 학문을 배우게 하여 각 학문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래도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세조의 지적대로 세종 때는 과학기술 등 소위 잡학으로 불리는 학문도 중시되어 집현전 학자 등 문신들이 백성들에게 필요한 농업서적인 '농사직설', 의약서적으로 '향약집성방', 천문 역서로 '칠정산내외편' 등이 편찬되었다.
남윤은 놀라 고개를 들어 임금의 표정을 살폈다.
‘면전에서 뜻을 거스르는 신하에게 바로 죄를 묻지 않으시고, 설득하려고 하시다니......’
김종직은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임금의 서슬 퍼런 노기가 하늘 가득 쏟아지는 화살처럼 대전의 공간을 덮쳤다.
김종직은 숨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아뢰었다.
"하늘이 백성을 내시고 이를 나누어 사민(四民)을 삼으셨습니다. 사·농·공·상이 각각 자기의 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학이나 천문 등과 같은 잡학은 백성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할지라도, 잡학 중에서도 땅의 형세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풍수나 사람과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음양이 어찌 선비들이 가까이하며 연구해야 할 학문이겠습니까?”
남윤은 금방이라도 내금위 군사가 들이닥쳐 김종직의 상투를 잡고 끌고 나갈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세조는 면전에서 젊은 신하가 임금의 잘못을 거듭 지적하며 말하는 것을 대하니,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혹독한 국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에게 ‘나으리!’라고 부르며 꼿꼿이 말하던 박팽년의 모습이 겹쳐졌다.
세조는 불쾌하여 김종직을 향해 소리쳤다.
"그대는 생각이 짧다! 잡학을 배우는 것이 천하고 비루한 일이라고 하나, 나라와 백성들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리하여 과인도 예전에 거칠게나마 각 잡학의 분야에 대해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섭렵해 보았다. 잡학은 백성들의 생활에 중요하여, 임금인 과인도 뜻을 두는 바인데, 네가 이렇게 가볍게 말하는 것이 옳은가?”
임금의 노기에 가득 찬 꾸중에도 김종직은 멈추지 않고 다시 나섰다.
"전하, 하지만.....”
임금이 주먹으로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김종직의 말을 막았다.
"그대는 경박한 사람이다! 오늘 과인에게 한 망발은 중죄로 다스리는 것이 옳다!”
세조는 살벌해진 분위기에 움츠려 있는 승지와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윤과 김종직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임금에게 의견을 아뢰는 자를 무거운 형벌로 다스린다면 언로(言路)가 막힐 것이 우려된다. 김종직을 당장 파직을 시키되, 더 이상의 죄는 묻지 않겠다."
김종직은 자신에게 파직을 명한 세조의 명에 당혹하였다. 김종직은 옆에 엎드린 남윤에게 눈길을 주며 도움을 청했다. 남윤은 어전에 들어오기 전에 김종직의 재주를 격려해 주었던 터라, 임금에게 파직을 고려해 달라는 청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남윤은 임금의 호통 소리에 사색이 되어 가늘게 떨며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임금께 절하고 물러나는데 남윤이 일어서면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자, 김종직은 손을 뻗어 남윤을 부축하였다. 세조는 뒷걸음치며 물러나는 두 사람을 보며 승지에게 소리쳐 명했다.
"고얀 놈이로다! 김종직을 사학(史學)에서 빼고, 이조에 알려 당장 파직시키도록 하라!”
남윤은 어전에서 물러나오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김종직을 보며 말했다.
"그만하기 다행이네. 주상 전하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면 못 참으시는 분이야. 자네의 재주를 아껴서 이 정도로 끝난 것이네.”
남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네처럼 여러 번 주상전하 앞에서 말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두 번 연속해서 간하다가 바로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나간 사람이 생각나서 머리가 주뼛하고 오금이 저렸다네. 자네는 어쩌자고 계속 주상의 심기를 건드렸는가? 저승길에 다녀온 듯,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네.”
남윤은 실지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조가 학문이 높은 문신을 잡학을 연구하는 분야에 배속시켜서 잡학의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구상은 오늘날에서 보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으로 지식의 통합인 통섭(統攝)이라고 할 수 있다. 세조는 세종대왕 시대에 백성들에게 필요한 과학기술이 어떻게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었는지 목격하였고 직접 잡학을 공부하며 통섭의 힘을 체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직은 잡학을 평생 공부하는 자들을 두고, 선비가 따로 잡학을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믿었다. 이것은 당시 대다수 유학자들의 생각이었다. 더구나 김종직은 잡학 중에서도 풍수나 음양까지 7학의 범주에 넣고 각각 과거 급제자 6인의 문신을 배정하여 연구하게 한 것은 오로지 임금의 개인 관심사 때문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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