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는 김종직에게 손자를 제자로 거두어 줄 것을 부탁했다
박숭질은 김종직이 파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민혜와 김양봉 등 사헌부 젊은 관리들과 함께 신말주를 찾았다.
"대사헌 영감이 임금에게 청을 올리든지, 사헌부가 연명으로 상소를 하든지, 어떻게든 김 감찰을 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신말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대사헌 영감에게 말씀드렸네. 영감은 김 감찰이 사헌부 이름을 걸고 망령되이 나섰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어.”
박숭질은 따지듯 말했다.
"김 감찰은 비록 언관은 아니나, 사헌부 관리는 임금에게 간(諫)하는 게 일입니다. 이런 일로 파직을 당하면 어느 누가 임금에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사헌 영감은 상감이 지시한 일은 백번 옳은 일인데, 얕은 생각으로 주상의 지시에 섣불리 반대했다고 호통을 치셨네.”
"그래도 파직까지는.....”
신말주는 어쩔 줄 몰라하는 박숭질, 민혜 등을 돌아보고 말했다.
"더구나 사헌부의 수장인 자신도 모르게 단독으로 임금에게 보고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니, 사헌부가 김 감찰을 구제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 되었네.”
박숭질과 사헌부 젊은 관리들은 일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한명회는 오랜 친구인 서거정하고 바둑을 두다가, 김종직을 화제에 올렸다.
"‘잡학은 유자(儒者)가 할 일이 아닙니다!’하고 범 같은 주상 앞에서 반박하다니, 대단한 기개가 아닌가.”
서거정은 얼굴이 붉어졌다.
몇 년 전에 세조가 ‘녹명서(祿命書, 사주책)는 유자(儒者)도 연구하는 자가 있던데, 경도 아는가?' 하니, 서거정은 사주 책 따위는 선비가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고 ’일찍이 대강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세조가 '그럼, 그대가 사주에 관한 책 한편을 지어서 바쳐라.'라고 하니 거절하지 못하고, 사주에 관한 여러 책을 집대성하여 《오행총괄(五行總括)》을 지어 바쳤다.
한명회는 당시 이 일을 두고 핀잔을 주며 놀렸다.
"장차 전국 유생들의 스승인 대제학이 되겠다는 사람이 사주 책을 만들다니......”
서거정은 이 일은 늘 가슴속에 떳떳하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남았기에 한명회가 김종직의 기개를 거론하자 마음이 쓰였다.
김종직은 밤이 깊었으나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몸에서 신열이 나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대는 생각이 짧고 경박한 사람이다!”
임금이 탁자를 내리치며 외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김종직은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려고 머리 위까지 뒤집어쓴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간언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옳지 않으면 버리면 되는 것이다. 말을 했다고 파직을 시킨 것은 군신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김종직은 입술을 깨물며 후회했다.
‘지금의 임금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김종직은 옛 선비들이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비는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아뢰어 바로잡으려 해야 하고, 그럴 수 없으면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고 어진 신하는 주인을 골라 섬겨야......’
김종직은 순간 멈칫하며 말을 멈추었다. 문득 형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가 슬픔으로 식음을 전폐하여 돌아가실 뻔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내가 벼슬을 잃었다고 하면 얼마나 낙심하실까.’
김종직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자책을 하였다.
‘정 6품이 되었으니 고향 가까운 곳에 지방수령으로 나갈 수도 있었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사헌부에서 박숭질이 감찰 민예와 김양봉과 함께 찾아와서 차례로 위로했다.
"김 감찰이 파직당한 일을 보면 임금이 행차할 때 쓰이는 의장마(儀仗馬)의 고사가 생각나네. 조용하게 있으면 꼴과 콩을 실컷 먹을 수 있지만, 시끄럽게 울어대면 바로 쫓겨난다는 말 그대로가 아닌가.”
"대간들도 임금 가까이서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자리를 지키는 의장마와 다를 바가 없어.”
세 사람은 집을 떠나면서 김종직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김 감찰이 학문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생각한 바를 두려움 없이 아뢸 줄 아는 진짜 선비라고 칭송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네. 서용(敍用)이 곧 될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게나.”
서용은 죄를 지어 파직시켰던 사람을 다시 벼슬자리에 등용하는 것이다.
신숙주는 파직으로 쉬고 있는 김종직에게 손자를 데려와 제자로 거두어 줄 것을 부탁했다. 손자는 먼저 죽은 장남의 아들인 신종호였다. 신종호는 한명회의 딸인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를 잃어, 신숙주와 한명회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신숙주는 손자를 위해 좋은 스승을 찾고 있던 차에 한명회와 의견이 맞아 김종직에게 맡기기로 했다.
"곧 복직이 될 것이니, 너무 심려 말게나.”
김종직은 조선 최고의 학자가 자신에게 손자를 맡기니 뭉클하였다.
신숙주는 집을 떠나기 전에 김종직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잡학을 유학자도 연구하라는 주상의 명이 당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방수령이라도 나가게 되면 주상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일세.”
신숙주는 임금에게 나아가 김종직을 용서하고 불러들이자고 청했다. 세조는 다시 박팽년이 떠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종직은...... 사헌부의 언관도 아니고, 감찰에 불과한 자가 아니더냐. 더구나 7학이 정해져 이미 문신들이 다 배정되지 않았느냐. 이를 다시 논하여 없던 것으로 하라고 청하는 것은 임금을 가볍게 여기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자를 쉽게 용서할 수 있겠소? 무거운 형벌로 다스려야 했는데, 아량을 베풀어 죄를 감해준 것이오.”
신숙주는 임금의 뜻밖의 강한 반발에 흠칫 놀라, 김종직을 속히 복직시켜달라는 청을 더 이상 올리지 못했다.
박팽년은 성삼문 등과 함께 은밀히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김질의 고변으로 실패하여 국문 장으로 끌려온 박팽년은 ‘나는 상왕의 신하이지 나으리의 신하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세조가 분노해 심한 고문을 가하였고, 박팽년은 고문의 여파로 옥중에서 죽었다. 김종직의 제자 남효온은 박팽년과 성삼문 등 여섯 사람에 대한 행적을 소상히 적은 「육신전(六臣傳)」을 후세에 남겼다. 남효온의 기록으로 이들은 사육신으로 알려지게 되어, 조선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부르게 되었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