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선비가 잡학을 깊이 공부해야 하겠습니까?
1464년 세조 10년 8월.
문과 급제한 선비 30명이 잡학(雜學)에 배정되어 궁궐이 웅성거렸다. 임금이 잡학의 수준이 세종대왕 시절에 못 미친다고, 학문이 높은 젊은 문신들에게 잡학을 공부하게 하여 각 분야의 수준을 높이라고 명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학문을 사학문(史學門), 시학문(詩學門)과 함께 잡학인 천문문, 풍수문, 율려문, 의학문, 음양문의 일곱 분야로 나누어, 각 분야에 문신 6인을 두어 전체로는 42명을 배정하였다.
42명의 관리들이 배정을 받고 이조의 뜰에 모였는데, 그중 잡학에 배정받은 젊은 관리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대과에 급제하여 청운의 꿈을 안고 벼슬길에 올랐는데 고작 취재(取才) 시험에 합격한 중인들의 할 일이나 해야 한단 말인가?”
"경전에서 가르치기를, 하늘이 백성을 내시고 이를 나누어 사민(四民)을 삼으셨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각각 주어진 역할을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선비는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고, 농부는 농사에 힘쓰며, 장인(匠人)은 물건을 만들고, 상인은 물품을 유통시키는 것이니, 뒤섞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가 경전에서 배운 것이네.”
김종직과 함께 승문원에 근무했던 정효상이 투덜거렸다.
"나는 성현의 말씀이 들어있는 경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이나 보는 천문학을 연구하게 되었으니......”
건강이 나빠져 사직했다가 얼마 전에 복직한 김제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풍수학에 배정받은 내가 최악이야. 묏자리를 보려면 산을 많이 올라야 할 터인데 체력이 걱정일세.”
김종직과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한 손소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잡학이 아닌 시학(詩學)이나 사학(史學)을 연구하게 되는 사람은 부럽습니다. 의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앞이 캄캄합니다.”
성격이 괄괄한 홍귀달이 대꾸했다.
"차라리 의학이면 좋겠소. 의학을 잘 익혀두면 임원준 참판처럼 출세 길이 열릴 수도 있고, 최소한 병든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 아니오. 내가 속한 음양학은 사람들의 길흉을 점치는 맹인이나 공부하는 것이니 한심한 일입니다.”
음악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는 율려문에 배정받은 성준이 홍귀달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네, 아니야. 음양학은 서거정 영감이 조선 최고의 경지가 아닌가? 그 양반만 쫓으면 자네도 음양학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출세도 시간문제일세. 그 양반이 예조참의 시절에 지은 《오행총괄(五行摠括)》부터 읽어 보아야 할 걸세.”
홍귀달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함께 음양학을 하게 된 유지, 이경동, 손비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위로가 되는 말이오. 자칭 대제학감이라는 서거정 영감도 이미 음양학에 깊숙이 몸을 담갔으니, 우리도 크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성준과 함께 율려문에 속한 어세공이 김종직과 민수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사학문과 시학문에 배정되어 불만이 없겠군.”
민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아꼈으나 김종직은 선배인 어세공에게 마음에 품은 생각을 말했다.
"학문은 넓고 깊어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한데, 잡학을 깊게 공부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잡학을 공부하는 것은 선비가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당함을 주상에게 함께 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나서면 주상의 생각을 돌릴 수 있을 겁니다.”
홍귀달과 손소 등 젊은 관리들이 김종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세공이 강하게 반박하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게나.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훈구대신들도 주상의 말이라면 고양이 앞에 쥐 격인데, 우리같이 미관말직이 감히 어떻게 주상의 뜻을 거스르겠는가.”
음양문에 소속된 손비장도 주상에게 간(諫)하자는 의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상은 정승이라도 함부로 간하면, 임금을 무시한다고 대노하여 의금부 옥에 가두는 분이네. 영의정이었던 정인지 대감마저 혼쭐이 났는데, 어찌 우리가......”
이경동도 손비장과 어세공의 말에 동조했다.
"과연 주상 전하는 임금의 뜻을 거스르면, 직책이 아무리 높아도 당장 벌을 내리는 분이시네. 왕후의 생신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영의정과 우의정이 풍악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마음에 부담된다고 주상에게 간했다가, 불경한 말을 했다고 하여 즉시 파직을 당했다고 들었네.”
민수는 이경동이 하는 말을 듣고 놀라 물었다.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한 일로 두 정승이 한꺼번에 파직이라니요?”
이경동이 민수의 물음에 답했다.
"나도 그 일을 처음들을 때 믿지 못했네. 주상께서는 ‘풍악을 울리며 노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시오? 그럼 그동안 과인이 잘못했다고 여기고 있었단 말이오?’ 하면서 즉시 두 정승을 파직해버리니 영의정과 우의정에 임명된 지 5일 만이라고 들었네.”
어세공은 이경동의 말을 더했다.
"오자등과(五子登科) 집안으로 유명한 이인손 대감이 그 때문에 우의정에 오르지 않았는가.”
이인손은 다섯 아들인 극배, 극감, 극증, 극돈, 극균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오자등과 집안으로 불리었다.
풍수문에 배정된 배맹후도 김종직의 제안에 분명히 반대했다.
"영의정이나 우의정 같은 최고 원로이자 공신들도 간(諫)하다가 파직을 당하거나, 옥에 가두고 국문을 받는 상황인데, 감히 미관말직인 우리가 무슨 간언을 한다는 건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홍귀달과 손소 등 김종직의 말에 동조했던 젊은 관리들은 선배들의 말에 모두 풀이 죽었다. 더구나 잡학이 아닌 사학문이나 시학문에 배정된 민수, 김계창, 유순, 이칙, 성현 등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에 동조하여 화를 입기는 싫었다.
김종직은 임금이 얼마나 무서운지 진저리를 치며 경고하는 선배들의 말이 거슬렸다.
‘임금이 잘못된 지시를 내리면 바로 잡는 것이 신하 된 도리가 아닌가? 임금이 화를 낼까 두려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이들은 내가 읽은 경전과 다른 책을 읽었단 말인가?’
음양학에 배정받은 유지(柳輊)는 동료들과는 다른 이유로 김종직의 제안에 반대했다.
"잡학이 선비들이 가까이할 학문이 아니기는 하네. 하지만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주상의 뜻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야.”
김종직은 선배인 유지의 말에 겸손한 어조로 반박했다.
"잡학이 백성들의 생활에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잡학의 수준을 높이려면 이를 평생의 업(業)으로 하는 중인들이 경전을 읽고 교양을 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찌 이들을 대신하여 선비가 잡학을 깊이 공부해야 하겠습니까?”
김종직은 동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백번 양보해도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풍수(風水)나 음양(陰陽)은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술법에 불과한데 어찌하여 버젓이 학문의 범주에 들어가서 선비들이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까?”
동료들은 아무도 명확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풍수와 음양을 임금이 신봉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김종직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임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을 보는 것처럼 분명한데, 함께 간하자는 의견에 따를 수는 없었다. 김종직은 동료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42명의 관리들이 모두 나서서 주상에게 간하면, 임금이라도 그 세(勢)를 무시할 수 없을 텐데.....'
김종직은 과거를 급제한 문신들이 잡학을 연구하는 것의 부당함을 사헌부 동료와 선배들에게 호소했다.
감찰 민혜와 김양봉은 김종직의 의견을 적극 지지하고, 지평 박숭질도 김종직의 생각에 동조했다.
김종직이 목소리를 높였다.
"임금의 잘못된 지시에 대해 사헌부는 봉박(封駁)을 행사해야 합니다!”
봉박은 군왕의 부당한 지시를 반박하여 봉투에 넣어 되돌려 준다는 의미로, 간관들의 권한 중 하나인 일종의 거부권이었다.
김종직은 사헌부 선배 관리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번 일을 바로잡기 위해 사헌부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김종직의 제안에 사헌부 관리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뜨악해했다.
"성상(聖上)께 봉박이라니? 우리 모두 직을 걸어야 하는 일이야.”
신말주가 김종직을 타일렀다.
"아니 될 일이네. 내가 사헌부에 들어와서 봉박의 권한이 있다고만 들었지, 이를 행사했다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네.”
김종직은 옳고 그름을 구분함에 추상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헌부 선배들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하였다.
"사헌부에 봉박의 권한은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자는 말씀입니까?”
선배들이 말문이 막힌 듯하자, 김종직은 말을 이었다.
"최소한 사헌부에서 연명 상소를 올려 이번 일은 불가하다고 아뢰어야 합니다.”
신말주는 김종직의 거듭된 주장에 얼굴을 찌푸렸다.
“천문이나 의학 등 잡학은 백성들의 생활에 밀접한 학문인데 무조건 반대만 할 수도 없는 일이야. 더구나 대사헌 영감은 전농시(典農寺)에 근무할 때 농사일과 뽕나무 가꾸는 일을 연구하여 기록도 남긴 분이시네. 잡학과 관련해 주상의 지시에 반대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야.”
김종직을 형제처럼 여기는 지평 박숭질도 거들었다.
"김 감찰은 잡학이 아닌 사학(史學)에 배정되었으니 조용히 두고 보는 것이 최상일세. 주상의 명에 반발을 해도 잡학에 배정된 자들이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김종직은 사헌부 선배들의 태도에 실망하였다.
‘사헌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사헌부는 국왕에게 언제나 있는 힘을 다하여 간(諫)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더니,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꼬리를 내리고......’
신말주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김종직을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김종직은 충청지역에 감찰을 나간 결과를 임금에게 아뢰는 일정이 내일 예정되어 있었다.
신말주는 김종직에게 소리쳤다.
"사헌부는 전체가 합의한 사안만 임금에게 간(諫)할 수 있다는 것이 불문율이야. 절대로 단독으로 말해서는 안 되네!”
박숭질도 거들었다.
"옳으신 말씀이네. 더구나 감찰은 임금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언관(言官)이 아니야. 임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려거든, 적어도 나처럼 지평은 되어야 하네.”
신말주는 마음이 불안하지만 대사헌에게 보고하지는 않았다.
‘김종직이 저지른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얼마 전 임금이 요즘 문신들이 기개가 없다고 나무랐고, 또한 임금이 종직의 재주를 아끼니, 마음을 움직이실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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