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큰 스승이 되다 (16)

김종직은 제자들을 예로서 공경하며, 도를 함께 추구하는 동지로 대했다

by 두류산

16장


신숙주의 손자가 김종직에게 배운다는 소문은 조정 안팎에서 스승으로서의 김종직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더구나 김종직이 임금에게 자신이 생각을 굽히지 않고 간(諫)하다가 파직된 것은 학문과 행동이 일치하는 선비라는 증거가 되었다. 조정의 관리들과 종친들은 자손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침을 달라고 김종직을 찾아와 부탁했다. 김종직은 배움을 찾아오는 제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김종직은 서적을 서가에 쌓아 두고, 옷깃을 여미고 꼿꼿이 앉아서 제자들과 책을 읽었다. 제자와 문답을 할 때에는 온화한 얼굴로서 예(禮)로 대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하였다. 김종직은 제자들에게 유학적 도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생활 속에서 성현이 가르친 도를 실천하며 몸으로 익히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의 가르침 자체를 확연하게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주자께서 말씀하신 활연관통(豁然貫通)이다. 사물의 이치에 대해 막혀 있던 것이 꾸러미를 꿰듯 환하게 통하게 되는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스승이 말한 깨달음에 들어서는 경지를 생각하며 가슴을 두근거렸다.


김종직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며 찾아온 제자들을 은행나무 아래에 앉히고 《시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차가 준비되었는데 안으로 들일까요?”

책을 보다가 앉은 채로 살짝 잠이 들었다가, 어린 계집종의 소리에 깼다.

차를 마시며 김종직은 생각했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꿈은 공자를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서 그런 것이다. 공자도 도(道)가 없는 세상을 바꾸려고 무려 삼천 여명이나 가르치고 이름난 제자만 해도 칠십여 명이나 키워내지 않으셨는가.’

김종직은 도(道)가 없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도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라의 풍속이 밝지 않은 것은 도학이 행해지지 않는 것에서 말미암은 것이고, 도학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도학을 널리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종직은 파직을 당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잡학에 배정되어 불평을 쏟아내던 그 많은 관리들이 함께 나서지 않으니, 홀로 나선 자신을 임금이 쉽게 파직시킬 수 있지 않았는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세(勢)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변화와 개혁을 이루려면 조정에서 공론(公論)을 모으는 것이 먼저다. 이를 위해 세를 모아야 한다. 당대에 안 되면 대를 이어서라도......”

김종직은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으로 무장된 젊고 새로운 선비들이 많이 조정에 진출하여 나라의 기운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흐린 물을 맑게 하려면 도학을 배운 제자들을 조정에 많이 진출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군자의 기운이 가득하고 백성을 위하는 조정과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김종직의 이러한 생각은 제자를 많이 길러내는 강한 동기가 되었고, 향후 김종직이 조선 선비들의 큰 스승이자 사림의 종장(宗匠)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성균관의 장관인 대사성 이미(李美)는 그의 아들 이인형을 데리고 김종직의 집을 찾았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15세에 경전을 이해하였고, 20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소. 젊은 나이에 작은 성취를 이루고는 기고만장하여 교만함이 가득하니 아비도 어쩔 수 없게 되었소. 특별히 부탁하니 자식을 제대로 된 선비로 만들어 주시오.”

이인형은 김종직에게 큰 절을 올리고 꿇어앉았다.

김종직은 성균관의 장관을 배웅하고 돌아와, 새로 제자가 되기로 한 젊은 선비를 찬찬히 살폈다. 김종직은 이인형을 보며 물었다.

"학문을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인형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밝은 덕을 밝히고, 나아가 정치를 잘하여 백성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 학문을 열심히 닦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정치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정치란.....”

이인형이 선뜻 답을 하지 못하자 김종직은 조용히 말했다.

"정치는 남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네. 자신을 못 다스리는 자가 어찌 벼슬길에 올라, 백성을 잘 다스리는 바른 정치를 논할 수 있겠는가?”


김종직은 말을 이었다.

"재주보다 덕이 못 따르면 재승박덕(才勝薄德)의 소인이라 일컫고, 덕이 재주보다 크면 군자라 일컬으며, 큰 덕과 큰 학문을 함께 갖추면 성인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니 성현의 인품을 본받아 최소한 덕이 재주를 앞서야 비로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네.”

이인형은 김종직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분에게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구나. 눈매가 서늘하여 맑은 기운을 가졌고, 엄숙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이인형은 김종직의 말에 머리를 숙였다.


김종직은 이인형에게 난해한 글을 읽고 문장을 잘 짓는 데 자부심을 가져 겸허함을 잃기보다는 성인이 가르치는 바를 배운 대로 실천하라고 당부하였다.

"학행일치(學行一致)가 되어야 하네. 배운 바대로 행동해야 제대로 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네. 실천하지 않는 배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종직은 이인형에게 《소학》부터 다시 읽게 하였다.

"《소학》부터 시작하여 실천으로 인품을 닦은 후에 벼슬길에 나서야 하네. ”

이인형은 김종직의 가르침에 느끼는 바가 있어, 스승이 때가 되었다고 말해줄 때까지 과거를 보지 않기로 맹세했다.


김종직은 날씨가 화창하면 간혹 제자들을 데리고 주변의 산을 찾아 솔향기 물씬 나는 숲 속의 소나무 그늘에서 가르쳤다.

김흔이 물었다.

"종친들과 대신들이 모여 주상을 위해 부처에 수명과 복을 비는 축수재(祝壽齋)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충(忠)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요?”

축수재는 국왕의 장수(長壽)를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이었다.

김종직이 제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군주를 위해 축수재를 올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심이 답했다.

"《예기(禮記)》에 음사(淫祀)로 복을 구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부처에 복을 비는 것은 음사이며, 유교의 가르침과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사란 부정한 귀신이나 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행위를 말했다.


김종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처가 어찌 수복(壽福)을 가져다줄 수 있겠는가?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여 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아직 불교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소격서를 두고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거나, 무당으로 하여금 국가와 왕가의 복을 비는 것은 물론 부처에게 복을 비는 것도 당연히 음사이다.”

김종직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축수재는 불교가 지배하던 고려 때 행해졌는데, 태종 때에 드디어 매년 행하던 축수재를 혁파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임금에 이르러 다시 전국 각지의 절에서 왕의 생일에 부처에 수명과 복을 비는 축수재를 재개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성리학은 유학적 도를 실천하는 도학이다. 도학을 배웠으면 유교적 가르침과 명분에 어긋나는 기존의 관습과 의례를 배운 바대로 마땅히 개혁하여 변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김종직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이 나라에 천지 산천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행위, 그리고 축수재와 함께 반드시 개혁해야 할 흔히 행하는 의례가 또 하나 있다. 무엇이겠는가?”

음성 현감의 아들인 채수가 답했다.

“혹시, 수륙재(水陸齋)가 아닐는지요.”

"그렇다. 수륙재이다. 국가에서 선왕의 혼령을 편히 모시고 복을 구하느라고 부처에게 비는 수륙재를 지내고 있지 않느냐. 이것 또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음사이네.”


김종직은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경전에 복을 구하기를 간사한 데 하지 말라고 하였다. 우둔한 백성들이 생각하기를, '종친과 재상들은 무릎을 꿇고 일월성신과 부처를 섬기며, 군왕은 부처에 의지하여 수명을 연장하고 혼령을 위로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우리들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김종직은 맑은 산 공기를 느끼며 말을 이었다.

"공자께서 말하기를,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은 더 심하게 좋아하는 법이라고 했네. 윗사람이 먼저 모든 음사에 관계되는 일을 일절 금하면, 예(禮)가 바로잡힐 것이네.”

제자들을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채수가 눈을 빤짝이며 물었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혹시 음사는 아닌지요?”

"제사의 근본은 부모가 낳아서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려는 데 있는 것이지, 귀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아니다.”

세종 때 집현전 학자 신석조의 손자인 신영희가 질문하였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을 쌓은 집안에는 복을 받아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옳은 말입니까?”

김종직은 제자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서경》을 살펴보면, 선(善)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온갖 복을 내리고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 자에게는 온갖 재앙을 내린다고 하였으니, 무릇 사람의 화(禍)와 복은 모두 스스로 만든 것이지, 귀신에게 아첨하고 기도를 한다고 복을 얻는 것은 아니다. 덕을 베풀면 자연히 복과 수명을 얻을 것일세.”


김종직은 제자들에게 변화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며 해결방법을 물었다.

"유교적 질서에 어긋나는 관습과 의례를 바꾸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조정에 있는 대다수 대신들이 기존의 제도를 바꾸고 개혁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기 때문이네.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제자들이 곧바로 답을 못하자, 김종직이 말을 이었다.

"도학을 아는 선비들이 많이 조정에 진출하여 세를 이루어 공론(公論)을 모아야 하네. 그리하여 조정에 군자의 기운이 가득하여 기존의 잘못된 관습과 제도를 배격하고, 백성을 위한 대동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종직은 제자들을 예로서 공경하여, ‘우리 도(吾道)', '우리 당(吾黨)’이라고 부르며 사제 관계를 넘어서 도를 함께 추구하는 동지로 대했다. 스승과 임금과 아버지를 같이 여기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사회에서 스승이 제자를 예로서 대하니, 제자들은 스승의 태도에 감복하며 존경하였다.

김종직은 가르치는 보람을 느꼈다. 식물에게 물을 주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듯 제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 성장하였다. 제자들이 훌륭하게 자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고 맑은 물과 공기를 만들어, 불의와 부패한 세상의 풍속을 정화하기를 기대했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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