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준은 아들 임사홍을 불러, 김종직에게 배우기를 권했다
김종직은 파직을 당하고 녹봉이 끊어지니 경제적으로 급격히 어려워졌다.
파직을 알리지 않았으니 고향 어머니로부터 도움을 받을 처지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벼슬을 하여 녹봉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살겠느냐?’고 하시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궁핍이 심각하였다.
제자들이 글을 읽다가 밥이라도 먹고 가는 날이면, 곡식은 한꺼번에 줄어드는데, 집으로 들어오는 곡식은 거의 없었다. 제자들은 문하생이 되겠다고 집을 찾아올 때 스승에게 드리는 물건으로 중국산 연적이나 벼루, 귀한 종이 등을 선물로 가져왔다.
옆에서 보던 늙은 노복이 중얼거렸다
"이런 것들은 지나가는 개도 관심이 없을 게야. 차라리 식량을 짊어지고 오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지.”
김종직은 집에 곡식이 떨어지자 나라에서 곡식을 빈민에게 대여하고 추수기에 이를 환수하던 환곡을 얻어서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도 복직하지 못하자 빌린 곡식을 갚을 길이 없었다. 관가에서 아전이 매일 같이 찾아와서 환곡을 독촉하고 모욕을 주었다.
김종직은 어쩔 수 없이 늙은 종에게 타고 다니던 말을 팔아서 오라고 하였다. 말은 늙고 야위어서 팔기가 쉽지 않았다. 노복은 말을 절반 값에 팔아 돌아왔다. 김종직은 절반 값에 말을 팔았다고 나무라지 않고 그 돈을 모조리 관가로 보냈다.
승문원의 정효상이 홍제원의 누각에서 시를 짓는 모임을 주도하면서 참석하라고 사람을 보냈다. 김종직은 이미 말을 팔아 도성 밖의 무악재 너머에 위치한 홍제원까지 행차를 할 수가 없었다. 김종직은 가지 못하고 부르러 온 인편에 미리 시를 지어주었다.
시회(詩會)에 참석한 홍귀달이 돌아오는 길에 김종직의 집을 찾았다. 서실(書室)에서 제자들이 단정히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이토록 제자를 열심히 기르는 이유라도 있는 것이오?”
"닭 기르고 소 키우는 재미도 좋다지만,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낫겠소? 내 생각으로는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인 것 같소.”
"과연 장차 대제학이 될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를 알만하오.”
홍귀달은 김종직이 앞으로 조선의 학문과 문장을 이끌 대제학이 될 것이라 믿었다.
김종직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사는 사람에게 대제학이 다 무엇이오.”
홍귀달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차기 세대에 김 감찰 말고 누가 대제학의 직을 감당할 수 있겠소?”
홍귀달은 집을 나서며 김종직을 위로했다.
"곧 복직이 될 것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오. 신숙주와 한명회 정승이 손자의 스승을 그냥 내버려 두겠소?”
파직을 당하여 녹을 받지 못한 지 1년 정도 지나니, 온 식구가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가 힘들 정도로 빈곤해졌다. 늙은 종이 배고픔을 못 참아 김종직에게 말했다.
"글을 읽으면 배가 부르다던데, 나으리를 보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요. 저 같은 놈은 끼니를 굶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요.”
김종직은 곡식을 바꿀 물건이 남은 것이 있는지 챙겨보았다. 중국산 벼루와 연지, 그리고 말까지 이미 팔아 더 이상 마땅히 팔 물건도 남지 않았다.
김종직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낙향을 해야 하나....’
노복은 그날 밤 옆집의 담을 넘어 밥을 훔쳐 먹다가 신분이 들키자, 집에 돌아 올 수가 없어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김종직은 노복이 도망갔다고 관청에 신고를 할 수는 없었다. 노복이 잡히면 늙고 약한 몸으로 옥에 갇혀서 맞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종직은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잡히지 말고, 어디에 가든 배곯지 말고 살아라!”
벼슬은 언제든지 내던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일한 수입원인 녹봉이 끊어져 경제적 궁핍이 오니 주인도 종도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김종직은 홀로 중얼거리며 탄식했다.
"도연명도 벼슬을 버릴 때 가장 아쉬워한 것이 바로 녹봉이 끊어져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는데.....”
참판 임원준이 김종직의 집을 찾았다.
김종직의 죽은 형인 종석이 자신과 같은 해에 동방 급제하였다. 임원준은 김종직의 학문과 문장을 높이 평가하였다. 김종직의 서실에서 제자들이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공자가 뛰어난 후학들이 두렵다며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했을 때 무슨 마음이었는지 알겠다.’
김종직은 서실을 돌아보는 임원준을 보며, 그가 승문원에 들렸을 때, 자신의 문장실력에 대해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것을 들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임원준의 문장은 김수온, 서거정 등과 함께 조정에서 이름이 높은 편이었다.
"우리 때는 손이 빠르고 여러 사람을 감당할 만한 재주가 있는 자라면 친구와 친척을 위해 과장(科場)에서 대신 과거 답안 작성을 도와주는 것이 예삿일이었소.”
어세겸이 놀라 물었다.
"그건 법에서 금하는 것이 아닙니까?”
임원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젊었을 때 과거를 보다가 친구들을 위해 잠깐 사이에 글 몇 편을 지어 주었는데, 당시는 국가에서 대신 답안을 작성해주는 것을 금하는 법이 없었어.”
승문원 관리들은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의 문장실력을 자랑하며 기분 좋게 떠나는 임원준을 배웅하고 어세겸은 승문원 관원들을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부친이 말씀하기를, 세종대왕 당시 엄청난 과거 부정사건이 있었는데, 임 참판이 주범이었다는 것이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당시 삼십여 명이 벌을 받았고, 주범인 임 참판은 곤장을 맞고, 향후 과거도 못 치르게 했다고 들었어.”
김종직이 놀라 물었다.
"그런 죄를 짓고도 지금 참판이 되어, 조정에서 행세하시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그건 임 참판의 의술이 좋아서라고 해. 대왕대비를 비롯해 종친이나 대신들이 저 양반이 지어준 약제를 먹지 않은 사람이 드물걸.”
김종직은 임원준이 법을 어긴 일을 무용담으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과 의술로 출세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좋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어려움을 살피고 찾아준 인정이 고마웠다.
임원준이 집으로 돌아와 스무 살이 된 아들 임사홍을 불러, 김종직에게 배우기를 권했다. 기억력이 좋고 문장이 뛰어난 아들이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학문을 배우기를 기대했다.
"김종직의 학문은 조정에서 제일이다. 고령군 신숙주 대감의 손자도, 대사성의 아들도 그 밑에서 배우고 있더라.”
임사홍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소학》부터 다시 배우라고 할 터인데 다음 과거를 준비하고 있는 제가 어떻게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멀리 가고 오래가려면, 출발에 앞서 짚신을 단단히 삼아야 하는 법이다.”
임원준은 자신의 제의를 거절하고 방에서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아쉬워하며 바라보았다.
임원준은 자신의 부자와 김종직의 제자들이 훗날 악연(惡緣)으로 엮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