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기회를 얻다 (2)

전하께서는 신을 미천하다 하여 내치지 마시옵소서

by 두류산

19장


1467년 세조 13년 5월.

유자광은 갑사로서 경복궁의 건춘문을 지키다가 비번(非番)이 되어 다음 근무 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남원 땅에 내려와 있었다.

유자광은 경복궁 문지기로만 근무하는 자신의 처지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더구나 갑사는 다른 무반직과 다르게 비번 기간 동안 녹봉도 끊어졌다.

"빌어먹을, 여진족 오랑캐를 때려잡을 기회라도 있어야 내 신세가 펴질 텐데.”


유자광이 불평을 늘어놓으며 식사를 하다가 함길도에서 난리가 나서 백성들을 징집하고 야단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자광은 숟가락을 놓고 밥상을 물리며 소리쳤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물실호기(勿失好機)! 하늘이 준 기회니, 무조건 잡아야 한다!”


유자광은 바로 관아로 달려가서 징집 문서를 확인했다. 다행히 문서에 갑사 유자광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관아에서는 징집 장정들을 모두 모으면 북쪽 전쟁터로 함께 갈 터이니 기별이 오기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유자광은 집에 돌아와서 활과 칼을 손질하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관아에서는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 전쟁터로 달려가서 공을 세우기만 기다리는 유자광은 갑갑한 마음에 하루가 여삼추였다.

"아니, 병사를 어느 정도 모았으면 바로바로 전쟁터로 보내야지, 어찌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보내려고 하는가?”

마음이 급한 유자광은 하루속히 전쟁터로 가기 위해 남원 관아에 알리고 갑사들을 관리하는 의흥위(義興衛)가 있는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한양 가는 길 곳곳에서 징집된 장정들과 군량미를 지고 나르는 백성들이 북으로, 북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난리는 천리 밖의 북방에서 났지만 전국이 모두 난리 통이었다.

유자광은 급한 마음에 하루에 보통사람의 갑절을 걸어서 한양에 도착했다.


유자광이 한양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은 모두 종종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흥위를 찾아 복귀를 신고하고 하루속히 출전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갑사 동료는 ‘역적 이시애가 함길도 전체를 본거지로 삼고,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있다'라고 했다.

유자광은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도대체 역적들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즉각 토벌하여 반란의 괴수를 참형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건가?”

동료 갑사가 탄식하며 말했다.

"병사를 수차례 징집하여 전쟁터에 계속 들여보내는데, 토벌군이 공격을 주저주저하여 전선(戰線)이 교착상태라고 들었네.”

"아니, 왜 주저주저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라던가?”

"글쎄, 내가 알기로는 장수들 말이 ‘여름을 맞아 활의 풀이 녹아 힘이 약해지고, 비가 많이 내려 수량이 많아진 강이 가로막고, 산천의 기세가 가파르고 험한 데다가 초목이 무성하니, 경솔하게 진격하거나 싸울 수가 없다.’고 주저리주저리 변명하고 있다고 들었네.”

유자광의 얼굴은 벌겋게 열이 올랐다.

"아니, 역도들에게 시간을 주면 반란의 괴수가 함길도 백성들을 모두 역적의 군사로 편입시키거나 아니면 무참하게 죽일 텐데, 어쩌려고 지체만 하고 있는 것인가?”


북방에서 난(亂)을 일으킨 이시애는 함길도 길주를 기반으로 한 호족으로, 회령 부사를 지내다 해임되었다. 이시애는 토호들이 자주 모이는 유향소(留鄕所)를 중심으로 민심을 선동하고 동조 세력을 널리 모았다.

유향소는 지방 수령의 자문기관으로 아전과 백성을 규찰하고 지방의 풍속을 바로잡는 일을 전담했다.

이시애는 여러 고을의 유향소에 서신을 발송하여 ‘조정에서 군사를 보내 함길도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한다’는 내용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민심을 자극하며 중앙에서 파견한 고을의 수령들을 다 죽여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여러 고을에서 이시애에 호응하여 앞을 다투어 관리들을 죽이고 반란군에 가입하였다.


이시애는 군사를 모아, 길주를 습격해 함길도 병마절도사와 길주 목사를 살해했다. 조정이 혼란을 겪으며 반란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토호와 군민 등 반란군 2만여 명은 함길도 전역의 고을 수령들을 대부분 죽이며 단천과 북청을 공략하고, 뒤이어 함흥을 점령했다.


심각한 보고가 잇따르자 세조는 토벌군을 편성하고 전국에 징집령을 내렸다. 토벌군은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총대장으로 임명하고, 강순(康純)과 남이(南怡)가 토벌대장을 맡았다. 귀성군은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아들로 세조의 조카이며, 토벌대장 남이는 태종의 외증손자로 세조의 외종질이었다.

도총사(都摠使) 귀성군 이준과 당대의 명장들은 북방으로 진군을 했으나 마천령이라는 험준한 지세에 막혀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자광은 전선이 교착상태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하였다. 하루속히 역적의 무리를 제압하지 않으면 백성들도 힘들고 나중에 더 큰 우환이 될 수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임금에게 상소라도 올려서 사태의 시급함을 아뢰고 빠른 결전이 필요하다고 건의를 드리고 싶었다.

‘아서라, 갑사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유자광은 부질없는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상소문을 쓴다고 하자. 승지들이 내 글을 임금에게 전해줄 리가 없다.’


유자광은 묵고 있는 주막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설령 승지들이 내 상소문을 올려준다고 하자. 임금이 읽으리라는 법도 없지만, 혹시 상소를 보고 임금이 기분이라도 상하면 어찌 되는가?’

유자광은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냅다 멀리 차며 답했다.

"그야 치도곤을 당하거나, 심하면 유배형에 처할 수도 있겠지.’


유자광은 나뭇가지를 한 번 더 세게 차 버리고 주막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주막집이 눈에 보이자 유자광은 가던 길을 멈추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방황하던 시절 도박판을 따라다니면서 한 가지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때가 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라고 생각하면, 좌고우면 하지 말고 죄다 질러야 한다!”

유자광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외쳤다.

"까짓것, 곤장은 몸으로 버티면 되고, 유배지로 보내면 그동안 아버지가 보낸 책이나 실컷 읽으면 되지 않겠는가.”


유자광은 주막집에 도착하자마자 옆방에 묵고 있는 선비에게 지필묵을 빌렸다.

먹을 정성스럽게 갈아 벼루의 묵지(墨池, 묵즙을 모으도록 된 오목한 곳)에 먹물을 모았다. 유자광은 대궐 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붓을 들어 상소문을 쓰기 시작했다.

"신(臣)은 교대근무를 마치고 남원에 있으면서 역적 이시애의 일을 식사하다가 듣고서는 즉시 상을 물리고, 남원 관아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징병하는 문서 속에 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북방으로 행군하기를 여러 날 기다렸는데, 군현에서 행군 날짜를 정하였다는 지령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에 밤새도록 자지 못하고 ‘어찌 사방의 병사를 모두 징발한 연후에야 일개 이시애를 토벌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은 이미 갑사에 소속되어 나라를 위하여 오랑캐를 무찌르는 공을 세우고 죽으려고 마음먹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라 안에서 국가를 배반하는 역적이 나타났는데, 신이 어찌 징병 대열을 기다리며 멀리서 편하게 자고 먹는 것을 좋게 여기겠습니까?”


유자광은 앞에 있는 임금님께 직접 아뢰듯이 간곡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하여, 신은 남원을 출발하여 하루에 평소보다 갑절의 길을 걸어서 서울에 도착해서 사람에게 물으니 모두 이르기를, 역적 이시애는 아직도 소굴을 지키면서 죄 없는 이를 함부로 죽여 함길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찌 역적들을 즉시 나아가 평정하지 못하고 전하의 다스림에 누(累)를 끼치는지 의문입니다.

듣기로는 전하께서 벌써 여러 번 장수들과 병사를 북방으로 보냈다 하는데, 그렇다면 어찌 이제까지 한 장수도 이시애의 머리를 참(斬)하여 한성에 바치는 이가 없습니까? 만약 즉시 토벌하지 못하면 이시애가 더욱 흉악하게 될 것이고, 날을 허비하여 역적의 목숨을 끊지 못하면 함길도 수십 주(州)의 죄 없는 백성이 진실로 가련하게 됩니다. 또한 만약 이시애가 악독함으로 죄를 더하면, 역적이 이르는 곳마다 주·부(州府)를 불사르고, 이르는 곳의 병기를 싣고, 이르는 곳의 사졸(士卒)을 강압하여, 하루아침에 국경을 넘어 북쪽 오랑캐 땅으로 들어간다면, 앞으로 국경의 근심을 어찌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유자광은 다시 붓에 먹물을 가득 찍고 써 내려갔다.

"신(臣)이 망령되이 이르거니와, 장수가 된 자들이 부귀나 탐하고, 죽고 사는 것을 두려워하여 머뭇거리며 진격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고, ‘이제 여름을 맞아 활의 힘이 약해졌고, 비가 많이 내려 강이 가로막고, 산천의 기세가 가파르고 험하고 초목이 무성하니 경솔하게 진격할 수도, 경솔하게 싸울 수도 없다.’고 서로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만 홀로 여름이고 적은 여름이 아니며, 우리만 홀로 궁력(弓力)이 해이해지고 적은 활의 힘이 약해지지 않으며, 우리만 홀로 빗물에 강이 막히고 적은 막히지 않으며, 우리만 홀로 산천이 험하고 적은 험하지 않겠습니까? 전쟁에서 신속한 승리처럼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


유자광은 묵지(墨池)에 모인 먹물에 다시 붓을 담갔다가 붓끝에 힘을 모았다.

"손무(孫武)는 말하기를, ‘승리는 빠르게 얻으라.’ 하였습니다. 대체로 보아 옛 선인들이 용병(用兵)을 할 때 제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신속하게 전쟁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신속한 승리처럼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수들이 지체하고 진격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유자광은 여름을 맞아 전선이 교착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임금에게 말씀드리고, 신속하게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의견을 올리며 상소문을 마무리하려고 하였다.

유자광은 붓을 내려놓고 글씨의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제길, 지금 피를 토하듯 써 내려가는 이 상소가 과연 임금에게 전해지기나 할까? 전해지면 제대로 읽기나 하실까? 어쨌든 미천한 갑사의 신분이 아닌가.’


유자광은 다시 붓을 들었다. 상소의 말미에 죽을 각오로 말을 덧붙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말이 서툰 사람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신을 미천하다 하여 내치지 마시옵소서. 신은 비록 미천하나 전쟁의 한 모퉁이에서라도 서서 이시애의 머리를 참(斬)하여 바칠 수 있기를 원하옵니다.”

유자광은 상소를 마무리하고 직접 임금을 알현하기라도 하듯 상소를 앞에 두고 엎드려 절을 올렸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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