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기회를 얻다 (4)

세조는 유자광을 가까이서 경호하게 하였고, 병법 강의도 듣게 하였다

by 두류산

21장


유자광이 상소를 올려 임금의 총애를 입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이 이시애를 물리칠 계책에 대한 상소를 하였다. 죄를 짓고 파직을 당한 전(前) 서학(西學) 교수 박윤검이 상소를 올렸다.

서학(西學)은 중학, 동학, 남학과 함께 한성부에 설치된 사학(四學)의 하나로, 지방의 향교와 같은 등급의 교육기관이었다.

"역적 이시애가 조상 때부터 말갈 땅에서 나서 국가의 은혜를 특별히 입었는데도, 오히려 반역하려는 마음을 길러서 수령을 마음대로 죽이고 조정을 능멸하였으니 용납하지 못할 바입니다. 만약 북쪽 오랑캐가 기회를 틈타 침략한다면, 국가에서 장차 어떻게 이를 방비하겠습니까? 신(臣)은 일찍이 함길도 온성의 교수였으므로 그곳 백성들의 풍속과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원컨대 성상의 앞에 나아가 자세한 것을 아뢰고자 하옵니다.”


세조가 상소를 읽고 승지에게 내리며 말했다.

"박윤검의 상소를 보니 신통한 계책이 없어 보이나, 늙은 사람이 이런 글을 지은 것이 가상하다. 장차 서용(敍用)하라.”

박윤검은 곧 성균관 사예로 임명되었다.


곧이어 성균관 사성(司成) 민정도 상소를 올렸다.

성균관의 전임 관원으로는 대사성(大司成), 사성(司成), 사예(司藝), 직강(直講), 박사(博士) 학정(學正), 학록(學錄) 등이 있었다.

승지들이 민정의 상소를 접수하면서 말했다.

"유자광이 상소를 올린 뒤에는 어찌 북방의 난에 대해 말하는 상소가 이리 많은가?”


세조는 승지가 올린 민정의 상소를 펼쳤다.

"신이 지난해에 함길도를 두루 지나면서 그 수륙(水陸)의 험하고 평탄한 것과 군병의 강하고 약한 것과 인심의 속되고 고상한 것을 대략 알았습니다. 만약 수군을 쓰지 않고 육지로만 진군하기를 힘쓰면, 적이 형세가 궁하면 반드시 험준한 고개에 의거하여 굳게 지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수만의 대군이 고개를 오르려고 해도 오르지 못할 것이며 싸우려 해도 싸우지 못할 것인데,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수만의 대군들이 어찌 추위를 막겠습니까?

하지만 수군을 쓰고자 한들, 몇 달 사이에 전함을 졸지에 준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경상도와 강원도의 전함을 모아서 정박시키고, 만약 부족하면 바닷가 지역의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전함을 만들게 하고, 또 가까운 포구에다 배 타는 데 익숙하고 날쌘 병졸을 뽑아서 시기와 형세를 살펴 수륙(水陸) 양면에서 일제히 진군하면, 적들은 반드시 패퇴하게 될 것입니다.”


세조가 상소를 읽어보고 답을 내려 주었다.

"그대가 제안한 수륙(水陸) 양면작전의 계책을 가상히 여긴다.”

세조는 민정이 상소에서 제시한 수륙양면작전을 실제로 활용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총사령관 이준에게 지시하였다.


세조는 매일같이 진압군이 반란군을 총공격하여 토벌했다는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임금은 유자광을 가까이서 경호하게 하였고, 경연에서 병법 강의를 할 때는 유자광도 듣게 하였다.

경연이 끝나고, 세조는 유자광이 얼마나 날쌔고 용맹한 지 그 재주를 시험해 보았다. 유자광은 세조의 명을 받고, 높은 돌층계를 한 번에 뛰어넘고, 궁궐 뜰의 큰 나무를 잡고서 오르기를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는 것 같이 타고 올랐다.

임금이 감탄하며 주위에 있는 겸사복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너희들도 유자광과 같이 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재주를 한번 보여 보아라.”

임금의 말을 듣고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세조는 유자광의 재주를 보면서 북방의 난으로 생긴 깊은 시름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었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병영이 있는 울산도 북방의 난으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정에서 병마절도사에게 군사 천명과 종군 자원자를 징집하라는 임금의 지시가 내려왔다.

김종직은 병마절도사의 징집 문서를 가지고 군사를 모집하기 위해 영남 일대를 두루 돌아다녔다.

전선이 교착되자 조정은 장정을 추가로 더 징집하여 보내라고 요구했다. 병마절도사는 추가 징병에 대한 임금의 명령이 담긴 문서를 펼쳐보았다.

"징병한 천명의 군사와 종군 자원자는 바로 올려 보내고, 2천 명의 군사를 더 선발하라. 수령 가운데 무재(武才)가 있는 자를 선발하여 군사에게 20일분의 양식을 지참하게 하여 데리고 오게 하라. 근래에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징병한 군사는 건장하지 못하고 약하여 쓸 수가 없으니,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


김종직이 장정들을 수차례 징집하여 전쟁터에 계속 올려 보냈으나, 북방의 반란군을 토벌했다는 소식은 내려오지 않았다. 처음에 2만 명으로 출발한 토벌군은 세조가 한양과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과 평안도, 황해도 출신의 지원군을 계속 추가로 보내면서 나중에는 5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북방의 전선은 교착상태가 계속되었다. 세조는 현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로 가서 친히 군사를 이끌어 역적의 군사들을 처단하려고 마음먹었다. 군사를 정돈하는 일이 끝나는 대로 몸을 움직이기로 하고, 병사 1천 명과 적진 돌파를 위해 총통군(銃筒軍) 1천3백50명을 먼저 전선에 보냈다.

총통군은 화약을 이용하여 화살을 쏘는 화기 방사군으로 세종 때 4군 6진을 개척하면서 여진 정벌을 위해 총통을 발사하는 임무를 목적으로 설치된 특수 병제였다. 총통 한 개당 화살 10개를 한꺼번에 쏠 수 있어 주로 적진을 격파하는 임무를 맡았다.


1467년 세조 13년 7월 2일.

세조는 유자광을 전선에 보내 도총사 이준에게 보내는 서찰을 자신의 당부와 함께 직접 전하게 하였다. 세조는 서찰에서 총통군의 공격으로 적진을 혼란하게 만들고, 이 틈을 타서 총공격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진(陣)을 격파하는 데는 총통이 최고이니, 총통의 공격으로 적진이 혼란해지면 군사들은 급히 이때를 틈타라. 이것이 진을 함몰하는 계책이다. 그러나 군사의 일은 멀리서 지시하기 어려우니, 그대가 잘 헤아려라. 과인도 또한 서울을 출발하여 그대를 뒷받침하겠노라.'


유자광은 어찰(御札, 임금의 서찰)을 품에 갈무리하고 최대한 말을 빨리 달려 북방의 전선으로 달려갔다.

유자광은 도총사 이준을 만나, 임금의 서찰과 함께 당부사항을 직접 전해주었다. 유자광은 임금에게 보고하기 위해 적의 형세와 그동안의 전투 상황 등을 세세히 물었다. 이준은 토벌대장 강순과 남이를 불렀다.


유자광이 이준과 함께 있는데, 한 청년 장수가 막사에 들어왔다. 스물다섯쯤 되었을까. 유자광은 남이의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큰 키에 건장한 몸집과 이목구비도 흠잡을 데 없이 강한 인상을 주는 얼굴이었다. 갑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차고 나타나니 더욱 준수하고 호걸스럽게 보였다.

‘저것이 바로 영웅의 모습이다.’


남이는 유자광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바로 이준에게 다가가 물었다.

"찾으셨습니까?”

"도성에서 전령(傳令)이 도착했소. 이 사람은 겸사복 유자광이오.”

유자광은 공손히 남이에게 예를 올렸다.

"우레와 같은 이름만 듣다가 이렇게 뵙게 되니 실로 광영입니다.”

남이는 유자광에게 별다른 말없이, 단지 눈으로 가볍게 인사하였다. 유자광은 성의 없이 사람을 대하는 남이의 태도가 다소 서운하였다.


노장군(老將軍) 강순도 도총사 막사에 도착했다. 77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은 수염이 무성하고 눈빛이 강렬하였다. 이준이 강순에게 말했다.

"주상께 보고드릴 수 있도록, 포로에게 들은 적의 형세에 대해 자세히 전해주시오.”

강순은 유자광에게 말했다

"이시애 군은 함길도 험한 지역에 익숙하고, 여진족과의 잦은 전투로 실전 경험이 풍부한 강병(强兵)이오. 포로로 잡은 함길도 군졸에게 적의 형세를 캐어물으니, 이시애가 5진(五鎭)의 군사를 더 뽑아 와서 관군과의 거리가 20리쯤인 곳에서 주둔하고 있다고 했소. 적의 세력이 매우 강해진 셈이오.”


이준은 적과의 대치상황과 적의 형세를 세세히 설명하고, 원병을 추가로 임금에게 청하는 서찰을 궁궐을 향해 급히 떠나는 유자광에게 건네주었다.

유자광은 전선의 상황을 궁금해할 임금을 위해 지친 말을 바꿔가며 한양의 대궐을 향해 남쪽으로 달렸다. 유자광은 남이의 호걸스러운 모습이 눈에 계속 아른거렸다.

"어떻게 하면 남이와 같은 영웅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까.”


유자광도 말도 땀으로 범벅이 되었으나 밤낮으로 말을 달려 드디어 한양에 도착했다. 유자광은 도성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궁궐에 들어가 세조에게 보고를 드렸다.

"강순이 포로로 잡은 함길도 군졸에게 적의 형편을 캐어물었습니다. 그 자가 말하기를, 이시애가 군사를 더 뽑아 와서 적의 형세가 매우 강해졌다고 하였습니다.”

세조는 군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적의 군사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어찌 적의 군사가 늘어나고 강해졌다고만 타령하는가? 우리는 5만의 대군이 아닌가?”

유자광은 잠시 멈추었다가, 보고를 이었다.

"이준이 이르기를, ‘조정에서는 적의 형세가 이미 쪼그라들었다고 이야기한다는데, 이것은 글만 앞세우는 자들이 적을 쉽게 여겨서 그런 것이다. 지금은 군사의 형세가 매우 어려우니, 그대가 그것을 자세히 아뢰라.’고 했습니다.”


세조는 이준이 보낸 장계(狀啓)를 읽고, 유자광에게 물었다.

"이준이 또 뭐라고 하더냐?”

"이준이 말하기를 ‘다만 적들이 많은 숫자를 믿고서 물러가지 않고 험준한 지형을 지키면서 가볍게 나와서 싸우려고 하니, 이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함흥 이남의 백성들을 잘 타일러서 적으로부터 이반 시키고 있으나, 아직 적에 가담하는 자가 많다. 우리가 군사를 모조리 동원하여 적진 깊숙이 들어가면서 후방을 지키는 원군이 없다면, 불온한 자들이 뒤에 있다가 정세를 틈타서 변란을 일으킬까 염려된다. 이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지원군을 더 보내도록 청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세조는 유자광에게 전선에 있는 장수들의 활약상에 대해 물었다.

"누가 용감하게 싸운다고 하더냐?”

유자광은 남이의 무용담을 아뢰었다.

"토벌대장 남이가 가장 잘 싸웠다고 합니다. 남이가 적들을 향해 사력을 다하여 싸워, 향하는 곳마다 적이 마구 쓰러졌고 몸에 화살을 맞고도 얼굴색이 태연자약했다고 합니다. 또 강순 휘하의 장수로 활약하는 이숙기도 활로 적을 쏘는 데 능하여 적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조는 남이와 이숙기의 활약상을 듣고 처음으로 얼굴을 활짝 펴고 웃었다. 세조는 남이를 즉석에서 품계를 올려주었고 이숙기는 절충장군으로 승진시켰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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