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아홉 왕조의 도읍지
황하 남쪽,
청동 거울처럼 바랜 도시가
역사의 퍼즐을 맞추려는 여행객을 맞는다
“고금의 흥망성쇠를 보려거든
낙양에 가보라”
사마광의 말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돌 틈 사이 살아 숨 쉬는
오랜 왕조의 숨결,
잿빛 돌계단을 오르며
발끝으로 천년의 맥박을 건드린다
낙양이여,
너는 한 줌의 흙에도
왕조의 무게를 품었다
찬란했던 영광과
스러진 비극을 품은 채
융성과 쇠락은
오늘도 너의 품에서 숨 쉬고 있다
II. 용문석굴
돌 속에 천년을 잠든
부처의 숨결,
천천히 걷노라면
시간조차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산에서 부처를 파내는 석공의 손길이
바람처럼 마음을 스친다
봉선사동(奉先寺洞)의 노사나불(盧舍那佛),
무지의 손들이 망치질을 해대었을 때
부처의 손과 무릎은 부서졌지만
손 닿지 않은 높이에 남은
얼굴과, 2미터 길이의 귀는
지금도 우리를 내려다본다
신비로운 눈빛은
깊은 자비로 어리석은 중생을 품고,
온전한 한 쌍의 귀는
지금도 세상의 고통을 듣고 있다
III. 향산사
석양아래 빛나는 향산사에 올랐다
절의 고요한 뜨락에서
백거이의 옛 숨결을 더듬는다
강 건너 용문석굴을 바라보며
그가 읊었을 시가
내 가슴에도 스민다
저녁노을이 산 능선을 붉히고
향산의 그림자가
강 건너 석굴 벽을 어루만질 때
석굴 속 미소 짓는 불상들도
노을의 붓 끝으로 물든다
나는 그 앞에 잠시 서서
천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시심(詩心)이 내 안에서
숨을 쉼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