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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華淸池)와 양귀비

by 두류산

화청궁(華淸宮)에 발을 들이면

흰 살결 고운 몸, 비단 가운 흘러내리고,

온천물에 조심스레 발끝 적시던

그녀의 숨결,

지금도 수증기 되어 은은히 떠돈다


꽃도 그녀의 미모에 얼굴 붉히고,

노래와 춤, 시와 글씨에 능하여,

황제는 해어화(解語花), 말하는 꽃이라 불렀다

달은 지기 아쉬웠고 밤은 짧아

조회는 멀어지고,

궁궐은 연회장으로 변했다


남방 과일 리치(荔枝)는

그녀의 입맛을 달래기 위해

백리마다 말을 갈아타며 달려왔고

감, 석류, 대추나무는

그녀의 손길을 기억하듯

수백 년 세월 자리를 지켰다

자매와 형제는 봉토를 받았고,

천하의 부모는 딸 낳기를 중히 여겼다


하늘에선 비익조(比翼鳥) 되고

땅에선 연리지(連理枝) 되기를

맹세한 언약은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같았다

안록사의 난을 피해

황제와 군사가 도성을 떠날 때

호위군의 칼날은

그녀의 목숨을 요구하였고,

불당의 어둠 속,

경국지색은 조용히

비단 끈에 숨을 매었다


훗날 사람들은

붉은 아편 꽃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그녀에게 중독된 황제처럼

나라와 인생을 망치지 말라는 경고였다


천 년 세월이 흘렀어도

화청지의 물은

그녀의 삶처럼 여전히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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