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가계(張家界)와 장모님

by 두류산

77세 희수(喜壽)를 맞으신 장모님

‘백세가 되어도 장가계를 보지 못했다면

어찌 인생을 살았다 말하랴?’

그 말, 가슴에 담고

장모님 손잡고 길을 나섰다


깎아지른 절벽이

하늘의 붓 끝에 닿고

시간의 끌로 새긴 바위마다

신비가 숨 쉰다

대협곡의 벼랑 끝,

세월이 조각한 바위 사이

수직의 길이 아득히 이어졌다

좁디좁은 바위 틈새를 조심스럽게

소녀의 미소를 띠고

장모님은 담대히 걸음을 옮기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


돌로 된 미끄럼틀,

포대자루 하나 덮어쓰고

동심의 터널을 지나며

우린 모두 아이가 되었다

협곡 아래,

하늘은 바늘구멍만큼 열리고

그 아래 숨겨진 공간

별천지가 펼쳐진다

역적으로 몰린 선조가

숨어 살다 세월을 잊어

왕조가 바뀐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전설이 바람에 실려온다.


계곡 옆 물길 따라 두 시간 반

뜻밖에 커다란 호수,

한참을 배로 나아가야

비로소 세상에 이른다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사람 살 만한 공간이

이 깊은 지하에 숨어 있었음을

무릉도원이 여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두 번째 고향이라 부를 만큼

영국을 누비던 장모님

여든을 앞둔 지금도

싱싱한 걸음으로 길을 걷는다

다음은

게의 단맛과 온천의 김이 피어오르는

홋카이도로 모시고 가리라

장모님을 뵐 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가슴에 젖어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강릉 밤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