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희수(喜壽)를 맞으신 장모님
‘백세가 되어도 장가계를 보지 못했다면
어찌 인생을 살았다 말하랴?’
그 말, 가슴에 담고
장모님 손잡고 길을 나섰다
깎아지른 절벽이
하늘의 붓 끝에 닿고
시간의 끌로 새긴 바위마다
신비가 숨 쉰다
대협곡의 벼랑 끝,
세월이 조각한 바위 사이
수직의 길이 아득히 이어졌다
좁디좁은 바위 틈새를 조심스럽게
소녀의 미소를 띠고
장모님은 담대히 걸음을 옮기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
돌로 된 미끄럼틀,
포대자루 하나 덮어쓰고
동심의 터널을 지나며
우린 모두 아이가 되었다
협곡 아래,
하늘은 바늘구멍만큼 열리고
그 아래 숨겨진 공간
별천지가 펼쳐진다
역적으로 몰린 선조가
숨어 살다 세월을 잊어
왕조가 바뀐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전설이 바람에 실려온다.
계곡 옆 물길 따라 두 시간 반
뜻밖에 커다란 호수,
한참을 배로 나아가야
비로소 세상에 이른다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사람 살 만한 공간이
이 깊은 지하에 숨어 있었음을
무릉도원이 여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두 번째 고향이라 부를 만큼
영국을 누비던 장모님
여든을 앞둔 지금도
싱싱한 걸음으로 길을 걷는다
다음은
게의 단맛과 온천의 김이 피어오르는
홋카이도로 모시고 가리라
장모님을 뵐 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가슴에 젖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