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기회를 얻다 (6)

세조에게 유자광은 한나라 유방이 한신을 발탁한 기분이었다

by 두류산

23장


유자광은 군대와 함께 함길도에 머물면서 남은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지역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유자광은 포로로 잡힌 반란군과 함길도 백성으로 반란군에 가담한 자들을 여러 명 취조해 보았다. 그들은 그동안 부임해온 고을 수령들에게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국경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고을 수령은 오랑캐 침범에 대응할 수 있는 무장출신들이 부임하였고, 이들은 법을 엄하게 다스려 백성을 죽이는 것을 오랑캐 죽이듯 쉽게 생각하여 원망이 골수에 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즈음 명나라는 만주의 여진족 토벌을 위해 조선이 합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세조는 강순과 남이 등에 명하여 압록강을 건너 여진족의 본거지를 치게 하였다.

유자광은 여진족 토벌을 위해 강순의 휘하 장수로 편입되었다.


유자광은 압록강변인 평안도로 나가기 위해 함길도를 떠나면서 지금까지 현지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임금께 보고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유자광은 붓을 들어 함길도에 부임하는 수령의 자질과 총통군에 대한 글을 올렸다.

"신(臣)이 유규의 얼자로서 만 번 죽을 것을 무릅쓰고 지난 6월 역적 이시애의 일에 대해 상소를 올렸더니, 전하께서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특별히 등용하시어 하루아침에 품계가 4품에 이를 수가 있었습니다. 전하의 큰 은혜에 오직 감격할 따름입니다.

이제 엎드려 듣건대, 겸사복 박의생이 가지고 온 어찰에 신은 강순을 따라 여진을 토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이 나라를 위하여 칼을 들고 적을 크게 호령하려는 마음은 죽은 다음에야 그치기를 원합니다.

신이 함길도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자세히 살피면서 그들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답을 구하였는데, 지금 신이 함길도를 떠나므로, 감히 상소를 올려 멀리서 성총(聖聰)을 어지럽히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헤아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유자광은 왜 함길도 백성들이 쉽게 반란군 진영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조사한 바대로 임금에게 아뢰었다.

"이시애가 비록 길주의 수령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수십 고을의 백성들이 다투어 수령과 향리를 죽이고 이시애를 따라서 반란에 참여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함길도는 산천이 험하고 막히어 조정의 풍습에 대한 교화가 미치지 못하고 경계가 야인(野人)과 닿아있어 민속도 매우 어리석고 미혹한데, 현명한지 아닌지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두 무인으로써 고을 수령을 삼았습니다.

그들은 무장으로서 비록 말을 달리고 칼을 써서 오랑캐를 죽이는 일에는 능하여도,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백성들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며 효도와 우애의 도리를 어찌 가르칠 줄 알겠습니까? 죄인을 기분대로 쉽게 죽이고 백성들을 보기를 흙이나 돌같이 하니, 백성들이 수령을 보는 것도 또한 원수와 같이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일개 역적이 지휘권을 도둑질하니 수십 고을의 백성들이 메아리처럼 응하여 평소 고을 수령에 대한 원망을 갚으려고 하였습니다. 어찌 이들 모두가 애초부터 반역하려던 자들이었겠습니까? 이것은 역적이 백성들의 원망을 이용하여 도적의 계책을 행한 까닭입니다.”

유자광은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생각한 대책도 아뢰었다.

이어서 세조가 각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총통군에 대해서도 아뢰고, 상소를 마무리했다.


세조는 승지가 들고 온 유자광이 변방에서 올린 상소를 펼쳐 읽었다.

"원컨대 지금부터라도 수령을 임명할 때는 만약 큰 고을인 주·부(州·府)이면 활과 칼을 감싸고 다스릴 수 있는 덕을 갖춘 무인을 택하여 수령으로 삼고, 문과급제 출신을 수령의 부관으로 백성의 잡다한 송사를 처리하는 판관(判官)으로 삼으며, 만약 작은 고을인 군·현(郡·縣)이면 문무의 자질을 겸비한 자를 골라 수령에 임명하여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판관이 되는 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도리를 가르치고, 목사가 되는 자는 활과 칼 등 전투의 기술을 가르치고, 관리가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들이 관리를 부모처럼 여긴다면, 변경을 방어하는 계책을 얻을 것입니다.”

세조는 유자광의 상소를 읽고 무릎을 쳤다.

"이 말 그대로다. 이 대책이야 말로 근본을 보는 계책이다.”


세조는 유자광이 총통군에 대해서도 글을 올린 것을 보고 흥미를 가지고 읽기 시작하였다.

"주상께서 군사를 훈련하여 기른 것이 지금까지 12년으로, 병사들은 용감하고 무기는 단련되었습니다. 신이 거산(居山)의 싸움에서 그 장대한 기운이 스스로 배나 되고 충의의 기운이 세차고 꿋꿋한 것을 보았는데, 옛날에 훌륭한 장수와 병졸도 이보다 더함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총통군은 시정잡배나 병사들 중에서 충원하는데, 화살과 돌이 종횡으로 날아다니면, 수족이 거꾸로 놓이고, 총통포의 약실에 화약을 재는 것도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며 높이 쏘기도 하고 혹은 가로질러 쏘기도 하여, 한 개의 화살도 바로 적진에 맞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하니 적진을 함몰시키는 데는 총통이 최고이지만, 일백 개의 총통을 일제히 발사한다고 하더라도 적진을 함락시키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원컨대 총통의 군졸을 미리 뽑아서, 평상시에 총통 쏘는 것을 익히고 훈련하여서, 위급할 때 제대로 활용할 것에 대비하소서.”

세조는 유자광의 상소를 승지에게 내려주며 말했다.

"이 말들은 과인의 뜻에 부합한다. 유자광은 참으로 기특한 재목이다.”


세조는 정희왕후와 궁궐의 뜰을 거닐면서 껄껄 웃으며 유자광의 이야기를 하였다.

"유자광이 이번에 함길도를 떠나면서 상소를 올렸소. 유자광이 말하기를.....”

세조에게 유자광은 한나라 유방이 한신을 발탁한 기분이었다.

한신도 유자광처럼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초나라 항우 진영에서 보초병으로 있었다. 한신은 항우에게 수차례 전략을 건의했으나 항우는 일개 병사의 이야기로 가볍게 여겨 모두 묵살하였다. 한신은 이에 크게 실망하고, 유방 진영으로 넘어가 대장군이 되어 항우를 격파하고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하게 하였다.

정희왕후는 세조의 마음을 알았다.

"지난번에 흡족해하며 말씀하시던 그 겸사복이 과연 인재인가 봅니다.”

세조는 왕후의 보폭에 맞추어 걸으며 말했다.

"세종대왕께서 함길도를 개척한 이래 아직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고, 많은 관리들이 함길도를 다녀왔으나 아무도 이런 계책을 내지 못했소.”

정희왕후는 세조를 보고 미소 지었다. 세조도 웃으며 정희왕후에게 말했다.

"그는 비록 천출이나, 신분의 귀천으로 인재를 판단한다는 것은 임금으로서 해서는 아니 될 일이오.”


세조와 정희 황후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들 중에서 금슬이 매우 좋은 부부로 알려져 있다. 정희왕후는 판중추부사 윤번의 딸로, 어질고 덕스럽다며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김종서와 황보인을 제거한 계유정난 당시 마지막 순간에 수양대군이 망설이자, 손수 갑옷을 입혀 그에게 거사(擧事)를 결행하게 하였을 정도로 여장부이기도 하였다. 세조는 덕스럽고 결단력마저 갖춘 그녀를 매우 아꼈다. 세조는 궁중의 대소사를 정희왕후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후궁 문제로 왕후를 괴롭히거나 다투는 일도 없었다.


세조는 어세공을 함길도 관찰사로, 허종을 함길북도 병마절도사로, 이종을 함길남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하였다. 주로 무신이 맡은 함길도의 관찰사와 병마사를 유자광의 계책을 적극 반영하여 모두 문신이거나 문무의 자질을 겸비한 자로 대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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