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기회를 얻다 (7)

김종직의 제자 이인형은 그 해 과거에 당당히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by 두류산

24장


김종직은 징집 문서를 들고 경상도 구석구석을 다녔을 때, 제대로 된 상세 지도가 없어 불편하였다.

"평상시의 경우 세밀한 지도가 없어도 그만이겠지만, 적이라도 쳐들어와 급한 때를 당하여 이 지역을 지키는 장수에게 지도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김종직은 머리를 흔들었다.

"산천의 험난하고 평탄함과 멀고 가까움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계책이 있다 할지라도 써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김종직은 날씨 좋은 날, 부산포 너머 대마도를 바라보면서 지도를 만들 결심을 굳혔다.

"경상도는 이면(二面)이 바닷가에 접해 있고, 최남단에 위치해 있어 실로 섬 오랑캐들과 서로 바라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갑자기 저 악독한 섬 오랑캐들이 출몰하여 우리 국토를 엿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을 쫓아내거나, 혹은 아군을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징발하고 전쟁을 치러야 할 때는 반드시 지도를 보고 산천의 지형과 거리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어야 한다.”


김종직은 군사 작전을 위한 지도 제작이 필요하다고 병마절도사에 말하여 허락을 받았다.

지도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변변한 장인(匠人)을 발견하지 못하여, 화공(畵工)들과 함께 경상도의 동서남북의 길이를 자세하게 그린 지도를 만들었다. 산천의 상세한 지형과 읍과 촌락, 말을 빌릴 역과 긴급 상황을 알리는 봉화대 등 요충지를 일목요연하게 표시했다.

병마절도사는 완성된 경상도 지도지(慶尙道地圖誌)를 병영의 청사에 펼쳐 놓고 장군들이나 교위(校尉)들에게 수시로 보고 지리를 익히도록 강조하였다.

"지금은 다행히 바다를 통한 왜구의 침입이 없으나, 환난을 대비하는 계책을 미리 세우지 않을 수 없소. 만일 왜구가 침입할 경우, 산과 계곡의 굽어 든 곳, 해안의 후미진 곳, 그리고 집과 인구의 많고 적음까지 땅을 그어서 형세의 대략을 설명한 이 지도를 살펴보고 대책의 방도로 삼는다면 어찌 도움이 되지 않겠소.”

김종직은 완성된 지도를 보고 만족스러워하며 문득 옛 일이 생각났다.

‘임금이 잡학 연구에 문신을 배치시킨 것이 이런 결과를 얻고자 한 것이었나?’


김종직은 제자 이인형이 보낸 편지를 반갑게 받았다. 김종직은 급히 편지를 펼쳤다.

"제자는 책에서 나오는 성인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실천하는데 정성을 쏟으니,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공부만 하고 한 세상을 보내도 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습니다. 선비는 스스로 수양하여 도를 이루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제가 세상 걱정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종직은 예전에 제자가 보낸 편지를 찾았다. 이번 편지에서 느껴지는 제자의 기운은 그때와 확연히 달랐다.

김종직은 기뻐하며 붓을 들었다.

"때가 되었다. 덕이 재주보다 큰 군자가 여기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어라.”


스승의 격려를 받은 이인형은 그 해 과거에 응시하여 당당히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김종직은 반가운 소식을 담은 제자의 편지를 받아 들고 기쁨이 솟구쳤다.

‘세상은 스스로 변화하기 어렵다. 조정의 흐린 물을 맑게 하려면 도학(道學)의 가르침을 배운 새로운 인재가 계속 들어가야 한다.’


이시애의 난이 진압되어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세조는 학문과 문장이 좋은 김종직을 정 6품 홍문관 수찬으로 임명하여 조정으로 불렀다.

김종직은 조정에 돌아가서 다시 훈구대신을 매일 보게 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홍문관 수찬은 경연에 참가하는 등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자리이므로 더욱 꺼려졌다.

‘지금의 임금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김종직은 임명장을 받아 들고 하루 종일 망설였다.

"고민은 이것으로 족하다. 선비는 출처(出處)를 분명히 해야 하리라.”

‘출처’는 벼슬에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 은거하는 것을 통칭한 말이었다. 벼슬에 나아갈 때와 물러나 은거할 때에 대한 입장을 선비의 출처관(出處觀)이라고 했다.

김종직은 결심하여 연로하신 어머니를 핑계로 사직상소를 올리고 아예 어머니가 계신 밀양으로 내려갔다.


세조는 유자(儒者)의 입장에서 잡학을 경시하는 것을 보고 경박하다고 하여 김종직을 비록 파직시켰으나 그의 문장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 만한 인재가 조정에 없어 늘 아쉬웠으므로 김종직의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종직은 임금이 자신이 올린 사직 상소의 말미에 쓴 ‘불가(不可)’라고 쓴 답을 받아 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종직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오니,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인형과 제자들이 서울로 복귀한 스승을 반겼다. 스승과 제자들은 오랜만에 만나 즐겁고 화목한 이야기로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김종직은 홍문관 수찬으로 경연에 임하면 경전의 강의에만 집중하고 정책에 대한 의견은 일절 진언하지 않았다. 세조는 그런 김종직의 진중한 자세에 흡족해하며, 김종직을 요직인 이조좌랑에 임명했다.

정 6품 이조좌랑은 정 5품 이조정랑과 함께 이조의 낭관(郎官)으로 불리며, 문신의 인사를 책임지는 막중한 직책이었다. 대개 과거 급제자 출신 중에도 재주와 행실이 반듯한 자를 골라 임명하였다.

세조가 김종직을 장차 나라의 중대한 일을 맡을 만한 인재로 본 것이었다.





(사진 출처)

https://kr.freepik.com

keyword
이전 23화난세에 기회를 얻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