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의 역모를 저지하다 (6)

남이가 반란을 도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by 두류산

6장


예종은 도승지를 시켜 남이의 첩인 탁문아를 심문하게 했다. 도승지가 탁문아에게 물었다.

“근래 남이가 어떤 이상한 행적을 보였는지 빠짐없이 소상히 말하렷다.”

탁문아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말했다.

"남이가 이달 중순 이후로는 잠을 잘 때에도 환도(環刀)와 활을 반드시 베개 옆에 두었으며, 이달 20일 후부터 매일 날이 저물거나 밤이 깊어서야 돌아왔는데, 어디에 갔다 오느냐고 물으면 꾸짖고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10여 일 전 밤에 남이가 말하기를, ‘네가 어째서 나를 멸시하느냐? 내가 너를 양인(良人)으로 만들면 이같이 아니할 것이다’ 하기에, 제가 대답하기를, ‘궁궐에서 춤과 노래를 맡아보던 천한 몸이 어찌 양인이 되겠습니까?’ 하니, 남이가 말하기를, ‘너뿐만 아니라 네 아비도 내가 양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남이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하니, 남이가 더 이상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도승지가 탁문아를 몰아붙였다.

"남이가 너와 네 아비의 신분을 양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장담한 것 외에, 더 생각나는 일은 없느냐? 조금이라도 숨기는 게 있으면 안 될 것이다!”

탁문아는 형틀에 묶인 남이를 돌아보다가 추궁의 말에 놀라 대답하였다.

"일찍이 정승 강순이 집에 왔는데 남이와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더 이상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남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대행 왕의 영(靈)과 상여를 모신 전각이 굽어보고 있으니, 너는 사실대로 말하라. 과인을 경복궁으로 옮기겠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남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이 어찌 주상을 경복궁으로 옮기시게 하겠습니까?”

남이가 계속 부인하니, 임금이 발을 구르며 남이에게 곤장을 치도록 명하였다. 남이는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은 죄가 없다고 버텼다. 남이는 곤장을 맞다가, 고개를 들어 대신들 중에 강순을 눈으로 찾았으나 강순은 남이의 눈을 피해버렸다.


국문을 지켜보던 한명회가 임금에게 나와 아뢰었다.

"남이의 집 노비를 국문하여 상시로 왕래하는 사람을 묻게 하소서.”

임금은 남이의 집으로 가서 노비를 잡아오게 하였다. 끌려온 노비들에게 한명회가 심문하여 물으니, 계집종 하나가 얼마 전에 정승 한 사람이 집을 찾아왔다고 대답하였다. 한명회가 다그쳐 물었다.

"지금 여기 정승이 많은데 네가 본 정승이 누구냐?”

계집종이 눈을 들어 살필 생각은 차마 못하고 떨며 대답했다.

"성명은 알지 못하나, 검은 수염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듣자 강순이 자리에서 앞으로 나와 임금에게 변명하였다.

"신이 얼마 전에 다른 일이 있어 지나가다가 남이의 집을 한 번 들른 적이 있습니다.”


남이는 자신에 대한 변호는 한 마디도 해주지 않고, 자기는 관련이 없음을 변명하는 데 급급해하는 강순을 노려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형조판서 강희맹이 의금부, 사헌부와 함께 합동심문을 하였다. 남이는 계속된 심문에도 일관되게 자신의 죄를 부인하며 소리를 질렀다.

"천출인 유자광이 시샘하여, 더러운 입으로 나를 무고하는 것이오!”


1468년 예종 즉위년 10월 26일, 남이가 반란을 도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승정원은 전(前) 판관 이수붕이 남이와 함께 거사를 모의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여 임금을 직접 배알해서 아뢰게 했다. 이수붕은 승지의 안내로 편전에 입시하여 임금에게 엎드려 절하고 아는 것을 아뢰었다.

"겸사복 문효량은 신(臣)의 계집종을 첩으로 삼아 신의 집에 임시로 거처하여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호도(胡桃)를 신숙주 집에 가져다주려고 문효량을 시켜 대신 편지를 쓰게 하였더니, 문효량이 붓을 잡고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요즈음 나라에 일이 있으니 천천히 보내자고 말하였습니다. 신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남이가 「혜성이 바야흐로 나타나니, 반드시 간신이 난(亂)을 꾀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놀라, 간신이 누구냐고 물으니, 문효량은 남이가 한명회라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예종은 이수붕의 고변이 민서가 실토한 말과 통한다고 생각하였다.

"계속 말해보라!”


임금이 재촉하는 말에 이수붕은 움찔하며 말을 이었다.

"문효량에게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었으나, 그가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늦게 취해서 돌아왔는데, 오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신(臣)이 문효량에게, 전날 말하던 것을 자세히 이야기해보라. 이러한 큰일은 빨리 보고함이 마땅하고, 늦추거나 머뭇거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문효량이 말하기를, ‘남 판서가 이미 주상께 이 일을 전하였고, 주상이 이르기를 「아직 누설하지 말라. 내가 조용히 도모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전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고 여겼는데, 변이 있음을 듣고 감히 보고를 드리는 것이옵니다.”

임금은 이수붕의 고변을 치하하고 술과 음식을 내려주었다.

임금은 이미 남이의 측근으로 붙잡혀온 문효량을 국문할 채비를 당장 갖추라고 명했다.


임금은 국문 장에 끌려온 문효량을 직접 심문하였다.

"네가 남이와 더불어 무엇을 꾀하였느냐? 네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를 폐와 간을 보는 듯이 하고 있으니, 사실을 소상하게 말하라!”

문효량이 부들부들 떨며 대답하였다.

"신(臣)은 지난 10월 초에 겸사복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남이도 겸사복장으로서 숙직하였습니다. 밤에 신이 남이의 침소에 들어가니, 남이가 《고려사》를 읽다가 신에게 이르기를, 혜성이 지금도 있느냐 하기에 신이 아직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남이가 말하기를, 천변(天變)은 헛되지 아니하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없어지지 아니하는가 하면서, 신에게 이르기를, 이제 천변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난(亂)을 꾀하는 간신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놀라서, 간신이 누구냐고 물으니 남이가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계속해서 물어보니, 남이가 말하기를, 한명회가 어린 임금을 끼고 권세를 전횡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탄식하였습니다.”


예종은 문효량의 자백이 민서와 이수붕이 말한 내용과 일치하므로 소상히 이야기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문효량은 ‘남이가 말하기를’하며 급히 말을 이었다.

"남이가 말하기를, ‘내가 나라의 은혜를 후하게 입었고 너도 해외(海外) 사람으로 궁궐을 경호하는 겸사복에 이르렀으니, 나라의 은혜 갚기를 도모할 마음이 있는가?’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내가 본래 공이 없는데도 겸사복이 되었으니, 은혜를 갚을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하고, 남이에게 ‘이는 작은 일이 아닌데, 누구와 더불어 하려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남이는 ‘강순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나라의 후한 은혜를 받았으나 나는 늙었고 자네는 굳세고 씩씩하니, 난을 평정하는 일은 자네가 마땅히 맡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강순이 반드시 이 일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예종은 강순이 있는 쪽을 한번 쳐다보고, 문효량에게 계속 말하라고 재촉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신이 근무를 마치고 남이의 집에 들렀는데, 남이가 말하기를, ‘만약 우리의 일을 비밀히 못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니, 비록 처자(妻子)라 할지라도 조심하여서 더불어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한명회 일당들이 어느 때에 거사를 하겠는가?’ 하니, 남이가 말하기를, ‘산릉에 나아가는 날에 거사하려고 한다.’ 하였습니다.

예종은 문효량의 실토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임금은 심문을 멈추고, 추국관에게 문효량을 계속 심문하라고 명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남이가 문효량을 해외(海外) 사람으로 일컬었다 하여, 일부 역사가는 그를 여진에서 귀화한 향화인(向化人)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제주도 출신임을 일컬은 것이었다. 문효량이 남이의 역모사건 이외에도 실록에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세조에게 상소를 올려 스스로 자신을 크게 써달라고 추천한 일이었다. 세조 13년 10월 21일, ‘제주(濟州) 사람 문효량이 상서(上書)하여 자천(自薦) 하니, 겸사복으로 명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추국관이 문효량에게 소리쳤다.

"숨김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계속 말하라!”

"신이 남이에게 말하기를, 미리 성상께 보고 드리지 아니하면 때에 임하여 갑자기 어떻게 사태에 대응하겠는가 하니, 남이가 때에 임하여 먼저 우두머리들을 없앤 뒤에 말씀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무슨 까닭으로 바로 보고 드리지 아니하는가 하니, 남이가, 증거가 나타나지 아니하였는데 무슨 근거로 보고 드리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거사하는 기일을 알면서 어찌하여 증거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가 하니, 남이가 말하기를, 기일을 비록 정하였을지라도 저들이 만약 숨기면 증거를 밝힐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겸사복 문효량이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니, 추국관이 버럭 호통을 쳤다.

"허튼수작을 부릴 생각 말고, 빠짐없이 사실대로 말하라!”


문효랑은 움찔하였다.

"얼마 전에 신이 겸사복장의 방에 가니, 남이가 김국광이 병조판서 직(職)이 떨어진 것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어찌 주상이 그의 비리를 알고서 병조판서 직을 내려놓게 하였는가 하였습니다. 그날 신이 남이의 집에 가서, 만약 주상께 보고 드리지 아니하다가 일이 드러나면 변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속히 먼저 말씀드려라 하니, 남이가 말하기를, 알아서 할 터이니, 삼가 누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주상께서 아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보고 드리지 아니하였습니다.”


문호량은 이 대목에서 무언가를 감추는 듯 말을 더듬었다. 예종은 추국관에게 즉각 명했다.

"숨김없이 실토하도록 형문(刑問, 매를 때려 캐물음)을 하라.”

추국관이 임금의 명을 받고 나졸에게 지시했다.

"곤장 50대를 매우 쳐라!”

문호량은 매를 맞다가 있는 힘을 짜내어 말했다.

"남이가 말하기를......”

추국관이 형을 집행하는 나졸에게 외쳤다.

"곤장을 멈추어라!”


문효량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남이가 말하기를, 산릉에 나아갈 때 중간에 먼저 두목 격인 한명회 등을 없애고, 다음으로 영순군과 귀성군을 처리하고, 그리고 임금의 가마를 덮쳐서, 스스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고 하였습니다.”

예종은 문효량의 말에 벼락이 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임금이 숨을 가다듬고 물었다.

"재상 중에 더불어 도모한 자는 누구냐?”

"강순입니다."


예종이 바로 명하여 강순을 포박하고 목에 나무칼을 채우게 하였다. 강순은 나무칼을 쓰고 꿇어 엎드려 통곡하였다. 임금은 강순에게 모든 사실이 드러났으니 바른대로 말하라고 소리쳤다.

"과인과 대행 왕은 너를 대접함이 극히 후하였다. 친히 묻는 것이니, 네가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 이실직고하라!”

강순은 울며 대답했다.

"신이 처음에 갑사로 시작하여 외람되게 성은을 입어 공신이 되고, 벼슬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품계인 일품에 이르렀습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모반을 하겠습니까?”

예종은 전쟁터를 누비던 늙은 공신이 울며 부인하는 말을 듣고 목에 씌운 나무칼을 풀게 하였다.

"과인이 어찌 경을 의심하겠는가? 경은 두려워하지 말라.”

keyword
이전 05화남이의 역모를 저지하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