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의 역모를 저지하다 (5)

군사들이 담을 넘어 도망가는 남이를 덮치어 포박하였다

by 두류산

5장


승지 한계순과 겸사복장 거평군 이복, 환관 신운이 겸사복들과 궁궐을 지키던 위사(衛士) 1백여 명을 거느리고 남이의 집을 에워쌌다. 환관 신운이 문을 두드려 명패(命牌)를 가지고 남이를 불렀다. 명패는 왕이 3품 이상의 당상관을 궁궐로 부를 때 사용하던 나무로 만든 패(牌)였다.

한 밤중에 대문을 크게 두드리는 소리에 행랑에 있던 종들이 나와서 보니 승지와 함께 온 환관이 붉은 칠을 한 나무에 명(命) 자를 쓴 패를 보여주며 주인을 급히 나오라고 했다. 승지와 환관의 뒤에 갑옷을 입은 여러 명의 무장이 함께 온 것을 보니 예삿일로 보이지 않았다. 사내종이 남이에게 달려가 이런 상황을 고했다.


남이가 첩기(妾妓) 탁문아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가 놀라 일어나서 바로 칼과 활을 들고 방을 뛰쳐나갔다. 곧 방으로 급히 돌아와서 의관을 챙겨 입고 갓을 쓰고 방을 나서며 탁문아와 사내종에게 당부했다

"내가 집에 없다고 하라.”

남이는 급히 말을 던지고는 담을 넘었다.

탁문아가 놀라 안채에서 자고 있는 남이의 어미에게 달려가서 고했다.

"남 판서가 칼과 활을 가지고 달려 나갔습니다.”

잠결에 놀라 일어난 남이의 어미는 탁문아를 진정시켰다.

"걱정할 것 없다. 이 자식은 어려서부터 활과 칼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집을 에워싸고 있던 군사들이 담을 뛰어넘는 검은 물체를 보았다.

"수상한 놈이다. 잡아라!”

남이가 칼을 뽑아 대항하려는 것을 군사들이 함께 덮치어 포박하여 궁궐로 압송했다.

남이의 어미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군사들이 남이를 잡아갔다는 전갈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군사들을 따라잡으려고 달려가다가 종들이 말려 겨우 멈추었다.


예종은 종친들과 대신들도 모두 궁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영순군 이부가 들어와서 남이의 일을 듣고 곧바로 임금께 아뢰었다.

"7, 8일 전에 남이가 신이 궁궐에 숙직하고 있는 곳에 와서 종친이 입직하는 것은 예전의 예(例)대로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주상께서 나와 귀성군과 하성군이 졸곡(卒哭) 전까지 번갈아 숙직하도록 명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남이가, 낮에는 어떻게 하는가 하고 묻기에, 낮에도 계속해서 입직을 하되, 일이 있으면 나간다고 대답하였더니, 남이가 말할 것이 있는 듯 머뭇머뭇하다가 나갔습니다.”


임금이 영순군의 말을 듣고 주먹으로 탁상을 쳤다.

"이것은 남이가 형편을 엿본 것이다. ”

졸곡은 곡(哭)을 그친다(卒)는 뜻으로, 졸곡 이후에는 수시로 하던 곡을 아침과 저녁에만 하게 된다. 졸곡제는 상복을 입은 자들이 점차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전환점이 되는 상례 절차이다.


궁궐은 긴장과 초조함으로 남이를 붙잡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남이를 체포하여 압송했다는 보고를 받자, 왕과 대신들은 비로소 안도하였다. 예종은 즉각 의금부에 명하였다.

"친국(親鞫, 임금이 직접 행하는 국문)을 준비하라. 수강궁 후원에서 역적 남이를 친국할 것이니라.”

남이는 한 밤중에 포승줄에 묶여 창덕궁 동쪽에 있는 수강궁에 끌려왔다. 수많은 횃불은 수강궁 후원을 환하게 밝혔다.


예종은 대신들과 함께 수강궁의 후원 별전(別殿)에 나아가 남이를 직접 심문하였다.

"네가 요사이 누구를 만나고,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느냐?”

남이는 거사가 탄로 났다는 것을 알았으나 일단 모든 사실을 부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이 신정보를 만나 북방의 일을 의논하였고, 다른 말을 한 것은 없습니다.”

임금은 유자광이 고한 말을 선뜻 꺼내지 않고 다시 남이에게 물었다.

"어제와 오늘 중에 네가 또 누구를 만났느냐?”


남이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기억을 더듬는 듯이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오늘 이지정의 집에 가서 바둑을 두다가 북방에 일이 있으면 나라에서 나를 장수로 삼을 것인데 누가 부장(副將)을 맡을 만한가 하고 물으니, 이지정이 말하기를, 여러 장수들 중에 외방에 있는 장수들을 제외하면 민서가 좋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지정의 집을 나와, 민서의 집에 가서 지난해 역적 이시애와의 싸움과 북방의 소식과 형편을 말했습니다. 민서가 혜성의 출현을 말하기에 신은 성변(星變)이 이와 같으니 어찌 근심이 없겠는가 하고 말하고는, 술을 마시고 나왔습니다.”


임금이 남이를 다그쳤다.

"더는 만난 사람이 없는 게냐?”

남이가 임금의 말에 망연히 있다가 이어서 말했다.

"민서의 집을 나와, 유자광의 집에 들렀습니다. 서로 이야기하다가 책상에서 사서(史書)를 가져다가 혜성이 나타난 것에 대한 해석을 한 구절 보았을 뿐이고 다른 의논을 한 것은 없었습니다.”


유자광은 대신들의 뒷자리에 서서 남이의 심문 과정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남이가 자신의 집에 들렀다고 말하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남이는 자신과 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자광은 입이 바싹 말랐다. 남이가 자신을 위협한 말이 귓전에 생생했다.

‘내가 한 말은 오로지 너하고만 의논했다. 네가 다른 마음을 품고 고할지라도 내가 부인하면 너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예종은 남이에게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자, 재상들에게 명하여 남이를 국문하게 하였다. 여러 재상들이 나서서 남이를 국문하였으나, 남이는 오히려 자신이 왜 끌려왔는지 알려달라고 악을 쓰며 소리쳤다.

유자광은 뒤에서 국문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조여 왔다. 초겨울 새벽의 찬 기운이 몸을 파고들어 한기마저 들었다.


임금은 새벽이 다가오도록 남이가 아무 잘못을 저지른 바가 없다고 계속 주장하자 당황하였다. 임금은 드디어 승지에게 명하였다.

"유자광을 불러 남이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직접 말을 하게 하라.”


남이는 비로소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유자광의 고변 때문임을 알았다. 남이는 묶인 채로 머리를 흔들며 힘을 다해 부르짖었다.

"전하, 유자광은 본래 신에게 불평을 가졌기 때문에 신을 무고한 것입니다. 신은 충성스러운 선비로 평생에 충신 악비(岳飛)를 자처하며 살아왔는데, 어찌 불충(不忠)을 저지르겠습니까?”


악비는 남송(南宋) 시대의 무인으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대항해 싸워,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악비는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모략을 당해 억울하게 죽었다. 금나라에 대해 주전파(主戰派)인 악비는 주화파(主和派) 재상 진회(秦檜)가 중상을 하여 반란죄로 국문을 받게 되었다. 국문을 받으면서 악비는 자신의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새긴 문신을 내보이며 결백을 주장했고, 추국관도 악비의 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에 진회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니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고, 결국 악비는 서른아홉 살의 나이에 죄 없이 참수되었다. 남이는 자신의 결백을 악비의 사례를 들어 강변한 것이었다.


남이는 악비를 들먹이며 자신은 충절을 아는 사람인데, 유자광이 거짓으로 꾸미어 무고하는 것이라고 힘을 다하여 소리쳐 주장하였다. 남이의 거친 반발에 임금은 물론 종친들과 대신들이 모두 유자광을 쳐다보았다. 유자광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때 민서가 포박이 된 채로 국문 장에 끌려왔다. 민서의 집에 들렀다는 남이의 진술에, 민서는 도성 안팎의 경계를 살피는 순장(巡將)의 임무를 하다가 체포되어 국문 장에 압송되어 왔다. 예종은 남이가 집에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민서를 직접 심문하였다.


민서는 묶인 채로 꿇어 엎드려 떨리는 목소리로 임금에게 고했다.

"남이가 어제 신의 집을 찾아와서 지난해 역적 이시애와의 싸움을 말하고 또 북방의 형편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신(臣)도 북방에 성을 쌓지 않은 곳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어서 오랑캐를 방어하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남이도 그것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다가, 이어서 말하기를 요즈음 하늘에서 혜성이 나타났으니, 간신이 반드시 일어날 것인데, 그러면 내가 먼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듣고 놀라 말하기를, 간신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니, 남이는 곧바로 한명회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어찌하여 이를 임금에게 아뢰지 아니하는가 하고 물으니, 남이는 그들이 도모하는 짓을 자세히 살핀 뒤에 아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남이는 ‘지금 한 말은 내가 홀로 너와 더불어 의논했다. 이 같은 말은 세 사람이 모여도 발설할 수 없다.’ 하고서 술을 마시고 집을 떠났습니다.”


예종은 민서에게 소리쳤다.

"이토록 무엄한 이야기를 왜 진작 고변하지 않았는가?”

민서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변명하였다.

"신이 즉시 보고를 드리려 했으나, 생각해보니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고, 또 순장(巡將)의 직분으로 행차가 급박하여 미처 보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임금은 남이를 내려다보고 소리쳤다.

"민서의 말이 정녕 사실이냐?”

남이는 꿇어 엎드려 있는 민서를 한번 흘끗 보며 임금의 물음에 답하였다.

"민서의 말이 맞습니다. 신이 민서와 더불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상당군 한명회가 일찍이 신의 집에 와서, 적자(嫡子)를 세우는 일을 말하기에 신은 그가 난(亂)을 꾀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 형의 아들이 어리다고 왕위에 올랐으니 적통(嫡統)이 아닌 약점이 있었다. 남이의 주장은 세조의 첫째 아들인 고(故) 의경세자의 아들인 월산군과 자산군이 정통 계승자인 적자(嫡子)이니 왕을 바꾸어야 한다고 한명회가 말했다는 것이었다. 한명회는 훗날 성종이 되는 자산군의 장인이었으니 그럴듯한 주장이었다.


남이의 진술을 듣고 임금과 종친, 그리고 대신들은 일제히 한명회를 쳐다보았다. 한명회는 남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깜짝 놀라 앞으로 나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남이의 집에 가서 남이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청컨대 직접 남이에게 따져볼 수 있게 하소서!”


예종은 노신(老臣)이 극구 부인하는 것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이는 모두 남이가 꾸민 말이니 따져 볼일이 못된다. 경은 자리에 들어가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명회는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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