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서재필, #037 갑신정변에 참여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2

by 연결고리


청년 시절 읽기



#037 갑신정변에 참여



개화정책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지만 청년 서재필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조선 정부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청은 화폐를 대량 발행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물가상승을 유발하므로 김옥균은 청의 제안에 반대하고 차관 도입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김옥균은 일본에 건너가 일본은행으로부터 17만원을 빌립니다. 이자도 높았지만, 원금 미반환시 금광 채굴권이나 세관의 세금징수권을 넘겨주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차관의 도입은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옥균 자신이 처한 국내의 정치적 입지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돈을 빌립니다. 그러자 민비는 김옥균에게 다시 300만원의 자금을 빌리게 합니다.


사실 민비의 요구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그만한 돈을 댈 여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김옥균의 정치적 지위를 불신하였기 때문에 추가 차관 도입은 실패합니다. 그리고 급진개화파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지게 됩니다.1)


서재필이 군사유학 중일 때 차관교섭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김옥균은 군사유학생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는데, 이때 김옥균은 그들에게 조선은 청의 속국에서 벗어나 서양의 나라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만남이 젊은 청년들에게 독립의 의지를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했습니다.


서재필이 일본에서 군사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884년 7월, 고종은 이들의 모습에 호의를 보였고, 고종은 이들 군사유학생을 교관으로 활용할 생각을 합니다. 그리하여 서재필은 귀국 다음 달 국왕의 허가를 받아 ‘임시’ 사관학교인 조련국을 설립합니다.2) 하지만 이것은 실제 사관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청군과 민씨 세력이 이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민씨 세력의 중심이었던 민영익은 이미 교관 역할을 할 수 있는 군사유학생들이 있었지만, 이들을 무시하고 청군 교관을 초빙합니다. 이 때문에 군사유학생들은 군관으로서의 직위를 상실하고 갑신정변이 발발한 우정국(우체업무를 관장)의 하위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청년 서재필은 일본 유학 시절 김옥균이 말한 청의 속국 상황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급진개화파는 ‘청으로부터 독립’, 그리고 ‘민씨 수구 세력 제거’를 개혁의 목표로 내세우게 됩니다.3)


개혁이 지지부진했던 1884년 5월, 베트남 문제를 두고 청프전쟁의 조짐이 보이자 청은 서울에 주둔 중인 청군 3,000명의 절반을 철수시키게 되는데 급진개화파들은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을 하고 거사 준비를 시작합니다.


김옥균의 입장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1차 계획을 단행하려 했으나 그 당시 오경석의 죽음으로 거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갑신정변 자체는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준비된 거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청프전쟁이 있기 전까지 김옥균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개혁을 추진했고, 그해 8월 드디어 청프전쟁이 발발하자 급진개화파는 무력에 의한 정변 단행을 결정하게 됩니다.4) 이것은 서재필 귀국 후 겨우 한 달 만에 결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갑신정변 주도 세력 중 21세로 가장 젊었던 청년 서재필이 짧은 기간 내에 당시의 정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만큼 성숙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급진개화파는 정변에 필요한 군사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먼저는 박영효를 중심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신식 군대 500명을 양성하였고, 함경도 북청에서도 신식 군대 500명을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군사유학을 떠난 청년들과 정변을 위한 비밀결사에 가담한 장교들 있었는데 이들을 모두 합치면 1,000명이 조금 넘는 세력이었습니다. 애초에 김옥균은 일본측의 개입없이, 오히려 일본측의 방해를 우려하면서 완전히 독자적인 세력으로 주체적인 정변을 진행하려고 했습니다.5)


하지만 민씨 수구파 세력은 개화파의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박영효가 키운 신식 군대의 지휘권을 빼앗았고, 함경도 북청에서 군대를 양성한 지휘관을 파면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소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개화파에 가담했던 환관을 매수하여 고종과 개화파를 끊임없이 이간질시켰습니다. 그래서 개화파가 정변을 위해 함경도 북청에서 양성한 신식 군대를 서울로 불러들이는 일을 성공시켰을 때에도 상경한 470명의 군인 중 무려 400명의 군대를 다시 함경도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민씨 수구파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개화파 내에 배신자가 생기고 신식 군대 지휘관이 정변에서 발을 빼려고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자 개화파는 큰 타격을 입습니다.6)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정변이 과감하게 실행된 것은 서재필 스스로 인정했듯이 정변 세력들이 “나라를 위해서는 생사를 돌보지 않는 피 끓는 청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7)


군사력의 부족을 느낀 급진개화파는 일본의 군인까지 빌리면서 그해 12월, 드디어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갑신정변으로 수립된 내각은 청년 정권이라고 불릴 정도로 내각을 차지한 인물의 3분의 2이상이 20~30대 청년이었습니다.


청 조공 폐지, 양반신분제도 폐지, 문벌 폐지, 재정개혁, 교육·상업·경찰·군사 제도의 개혁 등 이들이 주장한 개혁 정강은 말 그대로 ‘혁신적’이었습니다.8)


만약 이들의 정변이 성공했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요? 시행착오는 있었겠지만 급진개화파가 나라에 갖는 강직한 마음을 고려할 때 나라는 좀 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당시 서재필은 군사유학생들의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왕을 호위하고 민씨 수구파를 처단하는 일을 맡습니다. 우정총국에서 정변이 발생하고 수구파가 처단될 때 친청 세력의 중심인물 민영익도 칼에 맞습니다.


정변 세력은 고종을 경우궁으로 옮깁니다. 경우궁은 창덕궁 옆에 있던 건물로 청군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변 다음날 고종이 창덕궁으로의 환궁을 요구하자 정변 세력은 특별한 계획 없이 이를 수락합니다. 당시 정변 세력의 군사력으로 넓은 창덕궁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결정은 정변 실패의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9)


어떻게 이리 허무하게 일이 진행된 것일까요? 당시 서재필은 고종의 감시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고종은 식기 밑에 숨겨져 들어온 밀서를 보고 환궁을 요구합니다. 이를 파악하지 못한 서재필의 결정적인 실수에 일본 공사와 김옥균의 섣부른 결정이 더해져 고종은 넓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급진개화파에게 더 불리한 일이 발생합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 공사에게 급하게 훈령을 하달했는데 그 내용은 정변에 절대로 가담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갑신정변을 부추겼으면서도 이제 거기서 발을 빼내려는 간사한 행동이었습니다.


정변 3일째 되던 날 청군의 군사작전이 시작되자 김옥균은 눈물을 흘리며 고종에게 인천으로 가자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고종은 살생을 하지 말라는 자신의 요구를 짓밟고 수구파 세력을 처단한 개화파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한순간에 반역 죄인이 되고 맙니다.10)


1)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3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40-343쪽
2)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3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60-361쪽
「서재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3)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3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61쪽
4) 신용하, 「오경석의 개화사상과 개화활동」, 『역사학보』107, 역사학회, 1985, 182-183쪽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3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85-386쪽
5)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3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80-387쪽
6)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3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81-384·389-390쪽
7)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23쪽
8)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1, 인물과사상사, 2007, 334쪽
9)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1, 인물과사상사, 2007, 332-333쪽
10)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1, 인물과사상사, 2007, 335-336쪽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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