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2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정변의 실패 원인을 두고 청년 정권의 미숙함을 지적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정변 실패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고, 미숙함으로 실패했다는 역사적 평가는 옳은 지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실패 원인을 말하기 전에 나라를 걱정하는 ‘청년’들로 하여금 정변을 일으키도록 만들고, 그 때문에 장래가 촉망받는 훌륭한 청년들을 국가의 반역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당시 왕과 기득권층의 책임을 먼저 지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그 청년들이 해외를 탐방하고 돌아와 건의한 수많은 개혁안을 묵살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권 유지를 위해 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버린 당시의 민씨 수구세력은 확실히 나라를 병들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언급 없이 ‘갑신정변의 결과 청의 간섭이 더 심해졌다’는 무미건조한 평가가 역사책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청년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청의 간섭이 심화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 모든 책임은 나라를 사랑해서 자기 인생을 내놓았던 그 청년들의 몫이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청군의 교관을 끌어들여 자주적인 군대 조성 노력을 수포로 돌렸던 수구파 세력을 고려할 때 갑신정변과 상관없이 청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커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프랑스에게 베트남을 빼앗긴 청은 조선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갑신정변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싶습니다.
자주적 개혁안을 묵살하고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힘쓴 수구파 세력들의 행태가 청년 인재들을 갑신정변으로 내몰았고, 청년 개화파의 노력만으로는 나라를 구하지 못할 만큼 당시 조선 정부는 부패하였다. 정변이 실패하고 청년 개화파들은 국가의 반역죄인이 되어 쫓겨났고, 정변 이후에도 수구파의 청 의존적인 태도는 바뀌지 않았으므로 청의 내정간섭은 더욱 심화되었다.
청년 정변 세력에 대해 ‘세력이 부족했고’, ‘준비 시간이 부족했고’, ‘외세를 끌어들이고’, ‘계획이 치밀하지 못했고’, ‘판단이 미숙했고’ 등의 많은 약점을 언급합니다.
이 말은 ‘상황과 조건이 충분할 때만 정변을 일으키라’는 것이고, ‘청년 때는 그런 조건이 갖춰지기 어려우니 정변을 하지 말라’는 것이며, 결론적으로는 ‘기득권층에 반항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을 따르면 사회가 더 발전하게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당시에는 ‘실패’한 사건으로 인식됐겠지만, 역사는 그들의 선구적인 목표대로 흘러갔습니다.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역량의 미숙함 때문에 정변은 실패합니다. 하지만 미숙한 청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불의를 참지 못하고 도전하는 ‘용기’이고, 그것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아마 장년은 정변 상황에 따른 손익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이런 상황에서 일을 쉽게 도모하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김옥균이 군사력을 키우려는 과정에서 위험을 느끼고 정변에서 발을 뺀 것이 바로 '장년'이었으니, 청년의 순수한 도전은 그것이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역사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만약 뛰어난 역량에 용기까지 갖춘 청년 인재들이 ‘정변’이 아닌 ‘개혁 활동’에 자기들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면 그 당시 사회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까요?
지금의 정치인이나 기득권층은 이점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의 세력이 미약하다고, 기존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고, 기성세대들을 비판한다고 청년의 요구를 억누른다면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할 것이고, 이것이 누적되면 갑신정변만큼의 사회적 손실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청년이 공익을 위해 건의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기득권의 권력과 이익에 손해를 주어 기득권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수용해야 합니다. 역사가 말하지만 청년의 불만이 표출된 순간 기득권이 자신의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협력’하는 것이 사회적 손실을 줄이고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입니다. 갑신정변과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청년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청년 여러분이 장년이 되었을 때 청년 시절 느꼈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청년이라고 다 같은 청년은 아닐 것입니다. 서재필과 같은 청년이 있는 반면, 군사유학생의 활동을 반대하고 청의 교관을 초빙한 민영익 같은 청년도 있습니다.
민영익은 민비의 권력을 등에 업고 출세한 인물로 김옥균은 민영익을 포섭하기 위해 힘씁니다. 그러나 민영익은 미국에 사신단으로 파견된 후 개화당을 반대하게 되는데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나라에 불충’하는 사람으로 매도하고 청에 의존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갑신정변 때 칼을 맞았으나 치료를 받고 살아납니다. 그리고 조선 정부가 청의 노골적인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러시아에 접근하는 정책을 펼칠 때 민영익은 이에 반대하고 이 상황을 위안스카이에게 밀고합니다. 이 때문에 위안스카이는 국왕을 폐위하고 고종의 조카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청년은 나라를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하여 반역 죄인이 된 반면, 어떤 청년은 권세가로서 나라를 팔아먹기까지 자기 잇속을 챙겼습니다. 이 중 어떤 청년이 될 것인가는 우리들 자신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