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서재필, #040 미국인으로서 서재필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2

by 연결고리


청년 시절 읽기



#040 미국인으로서 서재필



서재필은 의학을 공부하던 시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일입니다. 서재필에게는 갑신정변 후 6년 만의 사건이었고,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였습니다.


그가 시민권을 얻을 때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아마도 훗날 갑신정변 주역 중 한 사람이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법원에서 행한 선서 ― “이후 조선 국왕에 대한 충성을 완전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포기한다.” ― 와 같은 선서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서재필은 이제 더 이상 서재필이 아닌 미국인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으로 살아가게 됩니다.1)


서재필이 한국인 서재필로 살아간 생애는 그의 인생 중 3분의 1도 안 되며, 그는 죽을 때까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고 철저히 미국인으로 남습니다.2)


서재필이 미국 시민권을 받지 않고 한국인 서재필로서 독립운동을 지속하거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나 광복 후라도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했다면, 또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고국에서 생을 마감했다면 그의 업적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원론적인 입장에서는 그래야 하는 것이 민족의 관점에서 옳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국적을 탈바꿈하는 기회주의자들이 혹시라도 서재필의 상황을 빗대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사 속 ‘개인’의 관점에서 서재필이 겪은 시련을 고려한다면 그가 미국인으로의 삶을 선택한 상황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패한 정부를 개혁하기 위해 힘썼으나 그 부패한 정부가 자신을 쫓아내고, 재산과 가족 모두를 빼앗았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목숨을 걸고 민족운동을 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보통의 심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오히려 부패한 정부에 복수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글쎄요, 두 가지 상황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흥행할까요? 부패한 정부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다시 부패한 정부를 찾아가 힘겹게 개혁하는 것과 부패한 정부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복수의 칼을 들고 부패한 정부를 통쾌하게 혼내주는 것 중에서 말입니다.


아무리 우리나라지만 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외세의 상황 때문에 당시의 정부를 지켜야 할 것처럼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 정부는 신분제도를 유지하며 청에 의존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서재필이 민족을 배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살 된 아들이 굶어 죽고, 가족이 몰살된다면 복수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하게 될 테니까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할 당시 서재필은 고국에 돌아가 독립운동에 가담할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영효가 다시 미국에 와서 서재필에게 귀국 요청을 할 때 이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망명할 당시 그는 과거의 아픔을 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전부였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중국인 배척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색인종으로 홀로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국 시민권이 더욱 필요했을 것입니다.


갑신정변 이후 나라에 버림받은 그를 받아준 것은 미국이었고, 그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대가 없이 후원해 준 사람과 의학사 학위를 받도록 도운 사람, 그리고 그와 결혼해 준 사람은 모두 미국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서재필의 미국 시민권 취득 행동을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겪은 상황에 대한 공감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민족을 배신하지 않는 것은 당위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 개인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상황은 그런 당위적인 명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재필이 고국을 잊고 산다고 해서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재필은 미국인이 되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상황에서 다시 고국을 개혁시키겠다는 도전에 참여했으니 그의 삶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재필에 대한 논란은 미국 국적 취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 국적 취득 후 그가 철저히 미국인으로서 행동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개혁을 위해 11년 만에 귀국한 서재필은 철저히 미국인으로 행세했고, 정부에 거절당해 고국을 떠날 때도 미국인으로서 출국합니다. 그래서 국내 개혁 세력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재필이 개혁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다시 떠날 버릴 때 개혁에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실망했고, 그를 외국인이라며 비판하게 됩니다.3)


그가 철저한 미국인으로 행세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3.1운동의 기운이 미국에 전해져 그곳에서 민족운동이 일어나자 서재필을 중심으로 한국인들의 회의가 개최됩니다. 그곳에서 의장에 취임한 서재필은 의장 선출 연설에서 “미국 시민권자인 자신은 미국의 국익과 법률에 저촉될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헌법의 경미한 위반에도 곧 의장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언급하는데 그 회의에 참가했던 한 대표는 서재필은 “100퍼센트 충성스러운 미국인”이라고 인정하며 그 요청을 수긍하는 일도 있었습니다.4)


광복 후 미군의 요청에 의해 최고 고문직으로 귀국할 때에도 자신은 “미국 시민이며 또한 미국시민으로서 머무를 생각"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5)


그러면서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었지만 서재필은 한국 국적을 끝까지 취득하지 않습니다. 한국과 관련된 일은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적극 도왔지만, 다시 한국인 되기는 완강히 거부했던 서재필의 행적에 대해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쉬운 점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 각자가 평가해보기를 바랍니다.


1)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29-30쪽
주진오, 「‘서재필 신화’ 왜곡된 진실들」, 시사저널, 1994.4.28
2) 주진오, 「‘서재필 신화’ 왜곡된 진실들」, 시사저널, 1994.4.28
3) 박성진, 「서재필과 이승만의 만남과 갈등 ―개화기, 독립운동기, 해방정국기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67,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9, 604쪽
4) 박성진, 「서재필과 이승만의 만남과 갈등 ―개화기, 독립운동기, 해방정국기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67,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9, 609쪽
5)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67쪽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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