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서재필, #039 정변의 실패와 미국 망명 생활

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2

by 연결고리


청년 시절 읽기



#039 정변의 실패와 미국 망명 생활



반역 죄인이 된 정변 세력에게는 피의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재필, 김옥균, 박영효는 일본 공사를 따라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개화파의 비조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유홍기는 갑신정변의 실패 소식을 듣고 생사불명이 되고, 그의 부인은 옥사합니다. 갑신오적 중 일본으로 망명하지 않고 유일하게 국왕을 호위하던 청년은 청군에 잡혀 살해되고, 그의 아내는 자결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손자를 독살시킨 후 자결합니다.1) 김옥균의 집은 성난 군중에 의해 불타고, 김옥균의 가족은 관직에서 쫓겨나게 되며, 그의 아버지는 교수형을 당합니다.2)


서재필 가족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부모와 아내, 형과 동생은 자살하거나 사형을 당하고, 그의 두 살 난 아들은 돕는 사람이 없어 굶어 죽습니다.3)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는 배에서 서재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고통 속에 죽을 가족에 대한 걱정? 정변 참여에 대한 후회? 정변 실패 원인에 대한 원망? 민씨 수구파에 대한 분노? 나라에 대한 배신감?


그들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자신들보다 거대한 세력을 상대로 정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도전은 실패했고, 가족·재산·지위 모든 것을 한순간에 상실합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망명을 떠나는 젊은이들은 이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들이 겪은 아픔의 크기는 쉽게 가늠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그저 가족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자책감으로 평생 마음의 짐을 짊어질 것이라고 단순히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일본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망명 생활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갑신정변 중 일본 정부는 개화당과 거리를 두려고 했기 때문에 일본에 도착한 개화파들은 일본 정부의 홀대를 받습니다. 게다가 조선 정부는 자객을 보내거나 일본 정부에 반역 죄인들의 송환을 요구했기 때문에 서재필 일행은 일본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옥균을 제외하고, 서재필·박영효 등은 결국 더 멀리 미국으로 망명을 떠납니다.


갑신정변 다음 해, 22세의 청년 서재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도 삶은 순탄하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고급 아파트를 빌려 지역 유력자들과 교류하면서 물질적 원조를 받기도 했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기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왕의 부마로서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았던 박영효는 리더였던 김옥균이 없는 상황에서 콧대 높은 행동을 계속했고, 이를 참을 수 없었던 청년 서재필은 그를 떠나 결국 샌프란시스코에 홀로 남게 됩니다.4)


박영효의 잘못된 행동은 회의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게 했겠지만,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서재필 역시 평소와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사를 함께한 이들이었으나 갑신정변이라는 공동목표가 실패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힘을 합하기보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점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여유도 없이 홀로 남겨진 22세의 청년은 이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그는 이국땅에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했고, 밤에는 기독교 청년회(YMCA)가 운영하는 야학을 다녔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홀로 삶을 개척하는 것은 위험하면서도 외롭고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고, 언제쯤 안정을 찾게 될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청년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옵니다. 그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 도움을 받았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자신의 학비를 책임져 줄 ‘구호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서재필이 공부에 뜻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동부의 펜실베니아로 간다면 여비와 향후 모든 학비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제 청년은 익숙해지기 시작한 곳을 떠나야 하는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게 되었고, 청년은 이 제안을 승낙합니다.


그가 이런 기회를 얻은 것은 그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갑신정변 실패라는 고통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 관계자가 서재필을 후원자에게 소개해 준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의를 보인 그의 삶이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후원자를 따라 이주한 서재필은 이제 넉넉한 환경 속에서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없는 엘리트 교육을 누립니다. 당시 그는 자신이 다니는 사립학교의 교장 집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기숙했는데, 그 집에 함께 생활했던 교장의 장인은 은퇴한 법관이었기 때문에 서재필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당시 조선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사상을 익히게 됩니다.5)


앞에서도 말했듯이 업적이라는 것은 혼자의 노력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망뿐이었던 청년 서재필에게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는 역사에 기록될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고, 그 도움은 그의 노력으로 절대 얻어질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재필의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들로 포기하고 싶어지는 때가 생깁니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능력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역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꿈을 갖고 도전하는 청년이라면 ‘대가 없는 도움’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나약하게 누군가의 힘을 빌려 성공하려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용기’그 도움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원만하게 졸업한 서재필에게 후원자는 어려운 제안을 하나 합니다. 그것은 7년간 훈련을 받고 조선에 선교하러 간다면 대학과 신학교에 다닐 학비를 모두 지원하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서재필이 사기꾼 같은 기질이 있었다면 아마도 ‘일단 7년 동안 살고 보자’는 생각에 그 제안을 수락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20대 중반의 서재필은 솔직하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역적이 된 서재필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후원자는 서재필에게 실망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끊습니다. 그날 서재필은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짧았던 안정기가 끝나고 고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6)


서재필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노력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두 번째 후원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서재필이 묶었던 교장 댁을 방문한 교수였는데, 그가 서재필의 처지를 듣고 박물관장으로 일하는 자신의 친구에게 서재필을 소개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박물관장은 육군 군의 사령부 도서관장에게 서재필을 소개합니다. 그 덕분에 서재필은 동양 의학서적의 목록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고, 그 월급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7)


그런데 그 교수는 왜 서재필을 추천해주었을까요? 단순히 처지가 딱해서 추천했을까요? 서재필의 상황에 대해 교장은 자신을 방문한 그 교수에게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아마도 교회에서 첫 번째 후원자를 소개해 준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교장 역시 청년 서재필의 평소 사람 됨됨이에 근거하여 자신을 방문한 교수에게 서재필을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에 교수는 자신의 친구인 박물관장에게 서재필을 추천했을 것이고, 같은 이유로 박물관장도 육군 군의 사령부 도서관장에게까지 추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시대의 역경에 도전하는 청년이라면 이처럼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자 하는 순수한 '진심'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청년이 느릿느릿 남들 눈치나 보며 여기저기 기웃거린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그 청년이 인생의 한 방을 노리면서 이익을 좇아 여기저기 붙으며 행동하는 기회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면 누구든 그 청년을 나서서 도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을 얻는 청년이 되기 바랍니다. 서재필은 청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한 ‘열심’이 있었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또 다른 후원자의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서재필은 의학 도서를 정리하는 사이에 관련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데 이를 계기로 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육군 군의 도서관장은 서재필이 의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 주었고, 그 덕분에 서재필은 29세의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서양 의학사 학위를 취득합니다.8)


반역죄인으로서 도망치듯 망명한 22세의 실패한 청년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겨우 7년 만에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것이니 청년의 도전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어냅니다.



1) 강준만, 『한국근대사산책』1, 인물과사상사, 2007, 339쪽
2) 조혁연, 「남겨진 가족들,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다」, 충북일보, 2014.1.23
3)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24쪽
4)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25쪽
김봉진, 「서재필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 상극」, 『한국문화』4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8.6, 11쪽
5)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26-27쪽
김봉진, 「서재필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 상극」, 『한국문화』4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8.6, 12쪽
6)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28쪽
김봉진, 「서재필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 상극」, 『한국문화』4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8.6, 12쪽
7) 서재필기념회, 『선구자 서재필』, 기파랑, 2011, 28-29쪽
8) 이종찬, 「서재필의 생애와 사상-근대적 공중위생론의 대중적 전파자」, 『의사학』6, 대한의사학회, 1997, 215쪽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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